처음 헌혈을 시작한 이유는 봉사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입시 준비로 바쁜 고등학교 3학년에게 30분을 투자해 4시간의 봉사 시간을 얻을 수 있는 헌혈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피를 뽑는 것이 두려웠지만 봉사 시간을 얻기로 마음먹고 헌혈의집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친절이 나를 반겼다. “헌혈에 참여해줘서 고마워요” “어지럽거나 불편하지는 않아요?” “조금 더 앉아서 쉬다가 갈래요?”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전자 문진과 대면 문진을 진행한 뒤 헌혈을 하고 문밖으로 나설 때까지 수십 번 걱정과 감사의 말을 들었다. 헌혈을 봉사 시간의 수단으로 여겼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헌혈은 생각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친절한 간호사들의 안내에 따라 편하게 누워 채혈을 하는 것이 다였다. 30분 정도만을 투자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더 이상 봉사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졌음에도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다.

헌혈의집을 취재하며 만난 시민들에게 헌혈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모두 “돕기 위해” 헌혈을 한다고 답했다. 한 시민은 “30분의 시간과 천원 가량의 교통비만 지불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 헌혈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남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개인주의 문화 확산에 팬데믹이 더해져 이타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어쩌면 당연하게도 헌혈자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취재를 준비하며 헌혈을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굳이 왜?”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 등이었다. 나와 내 가족에게 필요하지 않으니 굳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막연히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나의 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혈액이 필요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헌혈자가 늘지 않는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피가 부족해, 돈이 있어도 피를 살 수 없게 된다. 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에 빈번히 발생했던 일이다.

헌혈은 결코 어렵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다. 이웃을 위해, 그리고 미래의 나와 내 가족을 위해 30분을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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