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모든 생명이 가장 푸르르게 번창하는 시기. 당신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캠퍼스를 걷다가 봉지에 펼쳐진 흰 천막을 보고 다가간다. 이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하나의 건물이 나타났으니 호기심이 생길 만하다. 천막을 젖혀 들어가니 내부는 아무도 없이 사진과 향이 놓여있다. “5·18 추모 분향소라….” 당신은 생각에 잠긴다. 그래, 가는 거라고.

‘전일빌딩245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전일빌딩 앞에 서 있는 당신이 들어서자 직원이 안내 책자를 보여준다. “총 10층으로 구성되어있고, 5, 6, 7층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관람하세요. 옥상도 개방돼 있어 전망도 관람하실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전한 당신은 발걸음을 멈춘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편하게 관람해선 안 되지.’ 당신은 비상계단을 통해 층을 오른다. 광주의 특산물을 고르는 다양한 게임들이 보인다. 화면에 센서가 부착돼 특정 구조물을 올려두면 설명한다. 당신은 도서관에 들어간다. 복층구조로, 편하게 쉴 수 있게 설계돼 있다. 5·18을 소개하는 부스, 짧은 영상엔 5·18의 참사가 기록돼 있다. 주변 조각품들이 생생하게 상황을 전달한다. 시민들이 전시한 갤러리는 그림과 조각품, 참여를 통한 제작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관점을 부각한다. 그때 뜻밖에 당신에게 소녀가 다가온다.

“뭐 해.” 한결같은 인사다. “안녕.” 당신도 소녀에게 화답한다. “여긴 어쩐 일이야?” “난 5·18 민주유공자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활동하고 있어.” 내게 물어본 건 잊은 듯 설명을 시작한다. “내 할아버지는 5월 27일,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전사했어.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날이었지. 당시 어린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돕겠다고 나서다 잡혀갔고.” 소녀가 당신을 바라본다. “어렵게 풀려난 아버지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어.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한 때에 불과했지. 추풍낙엽 후의 벗은 나무를 바라보듯.” 오늘은 소녀의 말이 유난히 길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에게 적절하게 보상하지 않은 세상을 원망하던 아버지는 바뀌었어. 물어봤지. 이제 억울하지 않냐고.” “그랬더니?” “생각해보니, 이미 세상은 민주화가 일어났더래. 당신은 깨달았던 거지. 당신이 숭고히 지키려 했던 것이 이루어진 세상에서 당신의 아픔은 더욱 값진 것이라고.” 소녀가 생글 웃는다. 순수하게 맑은 웃음. “난 아버지가 당신을 밝히는 것을 돕고자 전시회를 시작했어. 봐, 아버지가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가 입었던 옷에 흘린 핏자국.” “네 아버지는 괜찮으셔?” “정정해.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긴 하지만.” 소녀가 싱긋 웃는다.

당신은 관람을, 소녀는 행사를 다시 진행한다. 당신은 소녀의 말을 곱씹는다. 소녀의 아버지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볼 때 측은하기보다 감탄하길 바랐다. 소녀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삼일절을 떠올린다.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대한민국이 독립을 외친 경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아직 아프고 아픈 역사이지만 언젠가 소망을 실현한 날로 기억되지 않을까. 신념을 가지고 불의에 맞선 우리의 영웅들은 슬퍼하기보다 축제의 장을 원하지 않을까. 당신은 희망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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