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5·18민주국민장 모습이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5·18민주국민장 모습이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그 정신이 헌법전문에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고인이 남긴 민주화의 숙제를 받들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영결식이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31일 5·18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후퇴하지 않도록 지켜봐 주길 바라네. 나의 영원한 친구여, 잘 가시게”라며 갑자기 떠나게 된 그를 향한 그리움을 표했다. 이어 “민주주의가 꽃피도록 노력한 그대의 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은 “이사장님이 가지 못한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 깨끗한 민주의 새벽을 완성할 것”을 약속했다.

정 이사장의 5·18 민주국민장은 엄숙한 분위기 속 진행됐다. 이는 박몽구 시인의 조시, 첫째 아들 정재헌 씨의 인사, 시민들의 헌화 등으로 이어졌다.

정 이사장은 1943년 광주에서 출생, 1962년 전남대 화학과 입학했다. 1964년 9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회장으로 일했으며 19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제적, 1980년 복학됐다. 그는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는 2021년 5월부터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지난달 29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 이사장은 영결식이 끝난 이날 오후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1-149)에 영면했다.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위해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위해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이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일대기를 말하고 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이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일대기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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