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정확한 개념 사용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핵 심이다. 2022년 2월 발생한 사건은 “우크라이나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많은 단어로 지칭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명칭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동등한 무력 사용의 주체로 설정한 단어는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사건의 핵심은 러시아의 독립 주권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이고 따라서 가장 정확한 명칭은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침공의 주체인 러시아, 침공의 대상인 우크라이나, 침공 시점인 2022년이 명확히 표현되어야 한다.

침공 주체인 러시아의 무력 사용은 “어떠한 무력 위협이나 무력 행사”를 금지한 유엔 헌장에 위배되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방어적 무력 사용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자위권의 사용으로 합법이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대한 공격, 민간인 살해 및 고문 등 다양한 국제인 도법, 국제형사법 및 국제인권법을 위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침공 시점이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는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름(크림) 지역에 대한 침공, 같은 해 5월 돈바스 지역에 대한 침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II.
이 사건의 국제정치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째, 러시아의 침공은 2차 대전 이후 인류가 힘겹게 만들어 놓은 규칙에 기반을 둔(rules-based) 국제 질서에 대한 명백하고 무모한 위반이고 도전이다. 흔히 국제정치가 힘이 지배하는 정글이라고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2차 대전 이후 무력과 강압으로 다른 주권국의 영토를 복속시킨 것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름 반도 병합이 대표적이다. 그런 러시아가 이번에는 돈바스 지역의 “제노사이드”를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침범했고, “나치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정부 교체를 시도하고 있으며, 핵 시설에 대한 공격 및 핵 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더 나아가 3,00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 부상자와 사망자, 집속탄과 진공폭탄 등 비인도적 무기의 사용 등 국제인도법에서 명백히 금지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화학 무기 사용을 위한 명분도 하나씩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전쟁으로 국경을 넘은 난민이 350만 명, 국내 이주민이 650만 명 등 현재까 지 천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이 모든 상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갈등 해결의 방편으로 전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둘째, 러시아의 침공은 21세기 현재 국제정치의 다양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우선 가장 주목받는 모습은 핵과 강력한 재래식 무기 보유국으로서 러시아의 일 방적 침공과 통제되지 않는 비인도적인 무력 사용이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 하고 러시아는 무력 침공을 자행했고, 전쟁을 반대하는 국내 여론과 시민사회, 언론까지 철저히 억압하고 있다. 유럽과 국제사회가 높은 수준으로 의존하고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광물 등 자연 자원을 무기로 제재에 대응하고 있으며, 안보리에서는 거부권 행사를 통해 유의미한 결의안 도출을 막고 있다. 제재에 동참한 우리 정부를 향해서 주한 러시아 대사는 “깊은 유감”을 표시했고, 더 나아가 우리의 독자적 선택을 “강력한 외부 영향”으로 폄훼했다. 이는 모두 강력한 폭력 수단과 자연 자원을 갖춘 러시아의 전횡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제정치의 민낯이다. 더 나아가 국내적으로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보인 국내외의 잔혹함은 국 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추악함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도 잘 보여준다.

셋째, 하지만 다행히도 국제정치는 이런 모습만 보이고 있지는 않다. 우선 러시아의 침공과 강력하고 잔인한 무력에 대항해 비장하게 싸우고 버텨내는 우크 라이나의 놀라운 저항이 있다. 또한 안보리의 무능을 대신해 국제사회는 유엔 긴급 특별총회를 소집했고, 러시아 규탄 결의안은 당사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하고는 북한, 시리아, 에리트레아, 3개국만의 반대로 압도적으로 통과했다. 중국을 포함한 35개국의 기권을 제외한 145개국의 찬성은 국제사회가 이 사건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2차 대전 이후 인류가 마련한 다양한 법과 제도도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국제사 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 법과 기구들은 러시아의 침공과 잔혹성에 대한 책임 을 물을 준비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30여 국가가 취한 경제 제재는 이제까지 러시아 수준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제재 중 가장 수위가 높은 대응이다. 중립국 스위스가 제재에 동참하고, 나토 회원국이 아닌 스웨덴, 핀란드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선 모습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물론 현재 제재도 미흡한 부분이 있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나토에 비행금지구역의 설정이나 폴란드의 전투기 지원까지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의 대응은 러시아의 불법적 무력 사용 에 대해 국제사회가 취할 수 있는 합법적 조치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조치가 효과를 보이기 위해 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러시아의 수출 규제와 유가 상승에 따른 고통과 혼란도 국제사회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높은 비용이다.

III.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시작은 우리 안에 우크라이나를 찾아 이들을 돕는 일 일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우크라이나인이 3,800여 명이고, 이 중 유학이나 어학 연수로 대학에 있는 학생이 200여 명이다. 이들은 24시간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이고, 때론 부모님이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도시로 갔거나 국경을 건너 송금이 어려워 경제 적 지원이 끊겼거나 곧 끊길 상태이다.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이들에게 특별 장학금을 지급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돌볼 책임이 있다. 특히 지역사회에 고려인 마 을이 있는 전남대의 경우 이들과 연대해 우크라이나 에 도움을 줄 기회가 넓게 열려 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법정을 본 후, 독일은 유대인만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 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만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명백 한 도전이다.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로 인해 핵, 재래식 무기, 자원보유국으로서 러시아는 당분간 침공을 계속할 것이고, 안타깝지만 우크라이나의 피해와 참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어쩌면 돈바스 지역을 포함한 일부 영토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은 국제 연대를 통한 저항이고, 인류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뤄 놓은 국제법과 제도, 규범은 더딜지라도 분명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김헌준(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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