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풍경(soundscape)이란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경관을 뜻하는 접미어 ‘scape’의 복합어로, 귀로 파악하는 풍경을 의미한다.다.1960년대 북아메리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생태학 운동을 배경으로, 캐나다 현대음악의 거장인 머레이 셰이퍼(R. Murray Schafer)가 창시한 용어다. <전대신문>은 우리 대학의 자연, 학생활동, 역사 등의 주제로 다양한 소리를 수집해 1602호(3월 18일)부터 연중 기획 보도 중이다.

한 해 중 우리 대학에서 가장 소리풍경이 풍성한 때는 언제일까? 아마 대부분 ‘용봉대동풀이’를 떠올릴 것이다. 용봉대동풀이 기간이면 축제를 찾은 인파의 소리, 입을 즐겁게 하는 먹거리 소리, 귀와 눈을 흥겹게 하는 다양한 공연 소리와 오락을 즐기는 왁자지껄한 소리로 캠퍼스가 들썩인다. 매년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소리풍경을 만들었던 우리 대학축제 소리의 역사를 살펴보자.

◆ 우린 ‘개교기념식으로 만난 사이’

개교한 이래 우리 대학은 매년 6월이면 개교기념식을 열었는데 이는 오늘날 축제의 기원이 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봉대동풀이는 6월에 열렸으며 개교기념 행사를 같이 진행했다. 흥겨운 소리로 가득한 오늘날 축제의 모습과 달리 당시 열렸던 개교기념식은 조촐한 기념식 위주로 구성돼 다소 정적인 모습이었다. 개교 기념 체육대회가 열려 선수로 참여한 일부 학생들이 축구나 농구, 배구 경기를 하는 소리나 학술경연대회에서 나오는 소리가 고작이었다.

‘용봉축전’이라는 명칭으로 진행된 개교 11주년 기념식에서는 축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전보다 많은 행사가 열려 비교적 ‘축제다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음악회가 열려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캠퍼스를 울리기도 했고, 문학발표회가 감성을 더했다. 특히 꽃 자전거와 꽃차 퍼레이드가 열렸던 개교 13주년 기념행사에서는 학생들이 꽃으로 장식한 통학차 4대와 자전거 70여대를 타고 시내를 돌며 교가를 부르는 소리, ‘본교 발전을 위해 애써 주신 시민에게 감사드린다’는 가두 인사 소리가 학교 주변에 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다수의 학생이 참여할만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지 않아 축제보다는 ‘개교기념식’에 어울리는 소리풍경이었다.

▲ 1984년 9월 용봉공화국 모의대통령 선거

◆ 축제의 완성은 ‘시끌벅적’한 소리!

오늘날과 같은 시끌벅적한 ‘축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1966년, 총학생회가 다수의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꾸려 개최한 ‘제1회 용봉축전’부터다. 당시 가장 호응이 컸던 행사는 법대에서 진행한 ‘모의 용봉공화국’이었는데, 모의 대통령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나온 학생들이 시대 풍자적인 공약을 세우고 유세하는 소리는 관객들의 큰 환호와 함께했다.

다음 해에 열린 용봉 축전은 개교 15주년을 기념하며 열흘 동안이나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다. 여학생들의 사뿐사뿐 걸음 소리가 들렸던 ‘강강수월래’, 치열한 경쟁 소리와 응원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던 ‘체육대회’, 숨겨진 끼를 발산하는 ‘노래자랑’ 소리,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 소리 등 흥겨운 소리가 학교를 가득 채웠다.

이후 열렸던 크로스컨트리대회, 줄다리기, 서클별 가장행렬 소리는 강의실과 전공 교재에 묻혀있었던 학생들의 에너지를 드러냈고, 포크댄스, 카니발, 연극제, 캠퍼스송 경연대회 소리는 청춘들의 감성을 드러내는 소리였다. 특히 가장 인기 있었던 창작곡 경연대회 ‘캠퍼스송 경연대회’는 개성 있는 노랫말과 선율로 풋풋한 대학축제 분위기를 연출했고 많은 관람객을 모아 활기찬 축제 소리를 만들었다.

◆ 항상 흥겨운 축제 소리? 그때그때 달라요~

축제라고 해서 항상 시끌벅적한 소리풍경이 연출된 건 아니었다. 보통 축제를 떠올리면 밝고 활기찬 소리를 함께 상상하지만, 행사에 따라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1975년 용봉축전에서 열린 ‘국악의 향연’ 행사는 학생과 시민을 비롯해 많은 관객이 함께했다. 하지만 같은 해 있었던 ‘학술 행사’는 한산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 1984년 6월 열린 용봉축전 마라톤 대회

또한, 80년대에 열린 용봉축전에서 진행한 마라톤대회에는 2,000여 명이 참여하며 달리기 소리가 캠퍼스에 가득했고, 200여 명이 참여한 닭잡기 행사에서는 닭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소리와 이를 피하려는 닭들의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가 섞여 역동적인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반대로 70년대에 열렸던 포크댄스는 교련학점 이수를 위해 억지로 참여한 학생들이 많았고 급기야 77년에는 참가자가 10여 명에 불과해 결국 다른 행사로 대체되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소리풍경의 변화도 있었다. 1964년에는 학생 데모로 인해 개교기념식이 평소보다 조용하게 진행됐다. 또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에는 6월에 축제가 열리지 못하고 가을에 열렸으며 이듬해에는 축제 없이 숙연한 분위기로 한 해를 보냈다. ‘용봉대동제’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1986년 축제에서는 교내 횃불 행진 중에 전투경찰과 대치하며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1991년 박승희 열사 분신 이후에는 시국 관련 학생집회 소리가 6월의 축제 소리를 대체했으며 축제는 가을로 미뤄졌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1학기에는 민주화를 향한 투쟁의 역사를 기리는 소리가, 2학기에는 선선한 가을바람 소리와 함께 축제를 즐기는 소리가 들리게 된 배경이 됐다.

▲ 2006년 봉지에서 진행된 용봉대동풀이 행사

◆ 다양한 구성원의 참여로 완성되는 ‘대동’ 소리

공동체를 뜻하는 ‘대동’ 가치의 실현은 축제 기간 각계각층, 남녀노소 모두의 소리가 들릴 때 가능하다. 90년대 들어 우리 대학축제 소리풍경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지역 주민과 외국인 학생이 축제를 즐기는 소리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광주시민 장기자랑, 지역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 무료 영화 상영은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부터 중장년층, 노년층의 목소리도 축제를 꾸밀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송편 빚기와 같은 문화 체험 행사, 각국 대표 학생들이 참여하는 장기 경연대회 등은 외국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축제에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흥미를 끌고 참여를 독려하는 행사는 용봉대동풀이의 소리를, 우리 대학의 가을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시대와 함께, 지역과 함께 해온 우리 대학축제 ‘용봉대동풀이’가 앞으로 더욱 소란스럽고 다양한 소리풍경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대동’의 의미를 통해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어떤 소리가 용봉대동풀이와 함께 했는지 다시 생각해보며 앞으로 용봉대동풀이에서 듣고 싶은 소리를 상상해보자.

▲ 2005년 9월 용봉대동풀이 모습

참고 자료: 『전남대학교 60년사』, <전대신문>, 「대학축제방문객 만족도 연구-2016년 ‘용봉대동풀이’를 중심으로」(류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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