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논란, ‘교육지표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다

교육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의 국·검·인정’ 구분을 지난 3일 확정 고시했다. 학계와 시민들의 반대에도 결국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은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됐다. 이를 두고 국정화 체제에서 역사교육이 이루어졌던 유신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37년 전, 유신독재 아래에서의 대학 교육 현실의 부당함을 폭로했던 ‘교육지표 사건’을 다시 돌아본다.

 

 

국정화는 현대판 교육지표사건
“대학인으로서 우리의 양심과 양식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교육의 실패는 교육계 안팎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 일치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에 그러한 실패를 집약한 본보기인바,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재정경위 및 선포절차 자체가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이 글은 1978년 우리 대학 교수들이 발표한 ‘우리들의 교육지표’ 성명서의 일부다. 현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37년 전인 1978년 6월 7일 송기숙 명예교수(국어국문)를 포함한 11명의 교수들은 유신체제 아래의 대학교육을 비판하며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참여한 교수 11명은 모두 해직 됐으며, 중앙정보부 전남지부로 연행됐다. 광주 대학생들은 분노했고 시위로 이어졌다. 이것이 ‘교육지표사건’이다.

실제 70~80년 대 대학에서는 학생처에 상담 지도관이 있었다. 이들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교수들도 학생들과의 면담 내용을 이들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송 교수는 ‘교육지표사건’ 공판에서 “교수들이 보초를 서며 학생들을 감시해야만 했다. 이것이 과연 교수가 할 짓인가?”라며 당시 상황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교육지표 선언에 참여했던 이홍길 명예교수(사학)는 “민주적인 교육을 실시하라는 내용의 성명서 하나를 발표하기까지 해직과 정치적 보복을 각오해야 했던 시대였다”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계획은 교육지표 사건이 벌어졌던 70년 유신정권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유신정권의 시작과 함께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은 독재정권과 교육과의 연관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박정희 유신 정권은 ‘국민교육헌장’을 모든 교과서의 첫머리에 인쇄했고, 모든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외우게 했다. 신일섭 교수(호남대)는 “대통령이 국가 교육 이념을 정한다는 것은 국가주의의 시작이다”며 “국민교육헌장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묘히 국민들을 통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주철진 씨(전자컴퓨터공학·11)는 “역사는 학자들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다”며 “국정화 체제의 역사 교과서는 정부의 편향된 교과서일 것이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우리 대학의 목소리

지난 5일 사학과 학부생, 대학원생, 강사 148명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선언문을 발표하기 위해 ‘우리의 교육지표 기념비’ 앞에 모였다. 이날 사람들은 역사 관련 서적을 길에 놓고 노란 풍선을 다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노란 풍선에 각각 국정화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적었다. 이후 캠퍼스 안을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외치며 행진했다.

신의철 사학과 회장(사학·12)은 “국정화는 학문과 교육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자, 우리 사회가 발전시켜온 민주주의 가치와 질서를 훼손하는 시대착오적인 폭력행위이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에서도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우리 대학 사학과 교수 19명은 지난 달 15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및 국정 교과서 제작 참여 거부 선언서’를 발표했다. 지난 27일 총(여)학생회는 총 56개 과, 단과대, 총(여)학생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서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민주적인 교육을 위해 교수들이 나섰던 교육지표 사건.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김병인 교수(사학)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보면 정부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정책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준다”며 “지금 정권은 박정희 없는 박정희 시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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