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한칸이던 세종학당 번듯하게 키운 22년 열정…“더 크게 이룬 교사의 꿈”

타슈켄트,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곳은 러시아 아래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다. 타슈켄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덕대 학생들이 그리고 간 세종대왕, 가수 빅뱅, 하회탈 등의 그림벽화가 나온다. 그 그림벽화 앞에서 한글공부를 다짐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 이곳 세종학당에서 허선행 동문을 만났다.

고려인 동포 교육, 더 큰 교사의 꿈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어디서나 우연으로 찾아오듯 허 동문이 우즈베키스탄으로 오게 된 것도 우연한 기회였다.

대학교 4학년 한 강의 시간에 임채완 교수(정치외교)가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한글 교육,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50만명 중 27∼30만명이 고려인일 만큼, 소련 지역에서 고려인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북한 방언을 쓸 뿐, 한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안타까웠던 임 교수는 학생들에게 “소련의 120여개 민족 중 모국어 구사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민족이 고려인이더라. 혹시 너희들 중에 이곳 한글학교에서 고려인들을 가르쳐 볼 사람 없느냐”고 물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허 동문은 대학을 졸업하면 줄곧 꿈꿔오던 교사를 할 수 있는 길이 탄탄대로로 펼쳐질 테니 지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임 교수의 제안도 교사의 일이었다.

“그래, 고려인 동포를 교육하는 것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교사와 같다. 어쩌면 고려인 동포를 안아 주는 것이 더 크게 꿈을 이루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허 동문은 1992년, 소련행 비행기를 타고 광주를 떠났다.

도움으로 커진 세종학당
열악한 환경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허 동문이 직접 와서 본 세종학당(당시 세종한글학교)은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다. 현재 세종학당은 5개의 교실, 화장실, 교장실, 교무실, 컴퓨터실, 도서관까지 갖췄지만 그 때는 교실은 하나 뿐, 화장실도 재래식이었고 닭장, 돼지우리와 한데 섞여 있었다. 칠판은 물론 교과서도 없었다.

그런데 1995년이 되니, 타슈켄트 세종학당 설립과 함께 다른 지역에도 세웠던 4개의 한글학교들이 운영상 어려움을 문제로 문을 닫게 됐다. 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만 희망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허 동문은 필사적으로 이곳저곳의 도움을 받으며 타슈켄트 세종학당을 발전시켜 나간다.

한 번은 최영하 주 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이 대사관에 취업한 세종학당 졸업생들을 보면서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한국교육원보다 세종학당 학생들의 실력이 뛰어난 비결이 무엇이냐”며 세종학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당 주변에서 키우는 가축들의 냄새가 풍기는 것을 보고 “어떻게 시골학교만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냐”고 놀라며 30인치 TV를 기증했다. 외부인에게 처음으로 세종학당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세종학당을 돕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전남도의회는 물론 경기도, 경남도의회 등에서 교실 기증을 도왔다.

“예전에는 손님들이 온다 하면 무조건 어서오세요하며 반겼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에게 어떤 단체가 더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며 허울뿐인 도움을 줄 단체들은 거절하기도 한다.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물론 물질적인 어려움 말고도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2000년도 초반, 갑자기 10여명의 경찰이 들이닥쳐 학생들과 교사를 교실 한 곳에 몰아넣으며 억압한 적이 있었다.

“교장인 나를 한 시간 후에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교회를 금지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세종학당이 교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어쩌지, 정말 문을 닫아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세종학당 학생 한 명이 “내무부 쪽에 친척이 있다”며 이리저리 연락을 하더니 이내 “경찰서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어리둥절했지만 그렇게 ‘영원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에게 교회가 아닌 한글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아빠, 허 동문
22년 동안 세종학당에서 공부한 수많은 학생들 모두가 소중하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박뮬라,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에 세종학당에 발을 들인 학생이다.

뮬라는 새아버지를 맞으며 방황하던 시기에 세종학당에 왔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허 동문은 뮬라에게 장학금을 주며 무료로 다니게끔 했다. 한국어 습득 능력이 특출 났던 뮬라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로 유학을 와 G20이 열리던 때 통역을 하기도 했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이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허 동문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아빠께’로 시작하는 그 편지를 수십 번이나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게 했다.

이렇게 늘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같은 아빠가 계셨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상상해보기도 합니다…아빠께서 많은 학생들의 길을 비춰주는 것처럼 사랑과 희망을 비추는 사람이 될게요.”

올해 목표는 기숙사 건설
훌륭한 졸업생을 배출해 낸 것은 물론 세종학당 교과서 발행, 후원금으로 장학금 제도 마련까지. 완전한 한글교육기간으로 자리 잡은 세종학당을 키운 허 동문이지만 아직도 세종학당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가 다짐하는 올해 목표는 “한글을 배우고 싶지만, 시골에 살아 한글을 배우지 못하는 고려인 동포들을 위해 기숙사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많은 한국 대학들과 협력을 체결하는 것이다.

세종학당에 다니는 학생들의 부모 대부분은 방문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이 자녀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자녀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 뿐이다. 학생들도 한국 유학을 원하고 있다. “학교 인지도가 높지 않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장학금을 주는 학교와 협력하고 싶다”는 허 동문의 노력에 현재 인덕대, 한성대, 상명대, 남부대와 협력을 맺고 있다.

그래서 세종학당 학생들도 허 동문의 열망과 맞춰 더 열심히 공부한다. 허 동문이 늘 강조하는 운영철학을 마음에 새기면서 말이다.

“빵은 먹으면 없어지는데 한국어란 빵은 잘 만들어 먹으면 평생 없어지지 않는다. 한국어란 빵을 함께 잘 만들어 보자.”

타슈켄트=나보배 기자

허선행 동문은 ▲1992-현재 타슈켄트 세종학당 학당장 ▲1994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감사장 ▲1996 전라남도 도의회 의장 감사패 ▲2004 대한민국 부총리겸교육인적자원부 감사장 ▲2007 제1회 세계한인의 날 국민포장 수상, 타슈켄트 세종한글학교 종합한국어 집필 ▲2010 대통령 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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