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전남대학교 여름은 몹시도 수상쩍고 참담했다. 대학 본부는 총장 직선제 폐지를 내용으로 한 학칙 개정안을 공포했는가 하면 검찰에 의해 정보전산원과 몇몇 교수 연구실이 압수 수색되는 굴욕 끝에 1순위와 2순위 당선자가 약식 기소되었다.

지난 6월 하순 어느 날, 우리 학교 개교 6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역사관 개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전의 개관식이 돌연 오후로 변경되고는 그 대신 지역대학 활성화 방안 보고회가 열렸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이 보고회에 참석하고는 곧 퇴임할 총장과 1순위 당선자를 만나 대화를 가졌다고 한다. 아마도 직선제 폐지와 관련해서 결단을 내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이고 두 사람은 직선제 폐지를 반대하는 학내 분위기를 전달한 모양이다. 그리고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교과부는 이 수사가 내부자 제보에 의한 것이요 결코 직선제 폐지를 몰아붙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그간의 상황 전개로 보건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성격상 직선제 폐지와 선거로 인한 검찰 수사를 일단 구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총장 직선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학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1988년에 전국에서 전남대학교가 맨 처음 도입했다. 임명제를 대체한 직선제는 이후 대학 민주주의의 상징 코드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국립대 선진화 방안이랍시고 국립대 법인화, 총장 직선제 폐지, 성과급적 연봉제 등을 밀어붙였는데 특히 서울대가 법인이 되고난 뒤에는 유독 직선제 폐지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그동안 교수들은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에 앞장서는 이주호 교과부 장관 탄핵 서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민교협, 국교련 등이 중심이 되어 교과부의 집요한 시도에 강하게 저항해 왔다. 작년에 전국의 교대와 강원대, 충북대, 군산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행재정적 불이익이라는 위협에 항복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목포대를 제외한 국립대들이 속속 백기를 들기에 이르렀다. 교과부의 위협은 간단하다. ‘구조조정 중점 추진 대학 평가’에서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를 두고 100점 만점 가운데에 5점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평가 항목이 있지만 각 대학의 평가 점수가 엇비슷한 상황에서 이 5점짜리 평가가 부실대학으로 선정되는 결정타 구실을 할 가능성이 컸다.

올해 들어 대학 본부는 전체 구성원을 상대로 총장 직선제와 관련해 고민하고 있음을 내비치면서 지혜를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대학 대의기구인 평의원회는 이 요청에 부응해서 직선제 유지와 폐지를 둘러싼 전자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70% 구성원이 직선제의 유지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임기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8대 총장은 직선제 폐지를 내용으로 한 학칙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것도 전자투표 결과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에 폐지안을 발의한 것은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역린의 결단을 내리는 아픔을 이해해 달라”는 총장의 표현은 한갓 수사에 불과하다. 총장 선거에 임하면서 ‘소통’과 ‘평의원회 존중’을 약속하지 않은 후보는 없었다. 그런데 절대 다수 교수의 판단이 잘못이라는 총장의 오만은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학칙이 개정되자면 거쳐야 할 여러 단계도 제대로 밟지 않았다. 규정심의위원회는 파행으로 끝났고, 평의원회는 반대했고, 학장단의 거부로 학무회는 열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물러나는 총장이 발의한 학칙 개정안을 총장직무대리가 공포했다. 18대 총장과 보직 교수들은 이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학칙 개정은 으레 평의원회를 거쳤으면서 유독 이번 사안을 두고서는 평의원회가 심의기구이지 의결기구가 아니라는 형식 논리를 펴는 것은 정치판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이 대학 운영의 비효율성을 들어 직선제 폐지를 발의하는 것은 하나의 자기 부정이다. 이 총장은 직선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선거에 임했어야 했다. 대학 본부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정작 학생들은 본부 현관에서 학칙 개정 무효를 외치며 연좌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이 옳았다.

물론 총장 직선제가 유일무이하고 그 어떤 비판도 허락하지 않는 최종적이고도  개폐(改廢) 불가능의 제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선제에 문제가 있다면 대학 구성원들이 의견을 모아 스스로 고쳐나가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지 교과부의 강박에 굴복해서 폐지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전남대를 끝으로 모든 대학들이 항복한 지금 득의의 미소를 짓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아니나 다를까 교과부는 민첩하게도 국립대들이 그토록 전전긍긍했던 구조조정 중점 추진 대학 발표를 올해는 하지 않겠노라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과부가 병적으로 집착한 직선제 폐지가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목표를 이루었고 대학 민주주의와 대학 공공성은 한없이 후퇴했다.

지난 5월의 19대 총장 선거가 검찰 수사 대상이 되고 결국 총장 임용 제청이 되지 않은 것은 문제를 보다 복잡하게 만든다. 총장 직선제 유지를 원하면서도 선거 문화 갱신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너무 뼈아프다. 대학 바깥에서 직선제 폐지의 근거로 드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정돈된다. 그 하나는 향응 접대나 연구실 방문과 같은 선거 관행이요, 다른 하나는 논공행상식 보직 인선으로 인한 잡음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우리 스스로 진작에 청산했어야 했다. 대학 구성원 가운데에서는 총장 선거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특수성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도리는 없다. 시골 촌로가 막걸리와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받고 50배 과태료 폭탄을 맞는 마당에 대학의 비전을 소상하게 듣느라 일식집에서 양주 대접 받는 것을 대학의 특수성으로 양해해 달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보직 인선의 문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대학의 치부이다. 선거 운동을 도운 이가 주요 보직을 맡는 관행을 대학 안팎에서 그토록 비판해 왔건만 우리는 이것을 척결해내지 못했다. 아직도 뜻이 맞는 이들끼리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대학을 뜻이 맞는 삼촌, 이모, 고모와 함께 운영하는 동네 수퍼마켓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로서 절대로 앞에 나서게 해서는 안 된다. 교수 사회의 보직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전공이 보직인 교수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전체 교수 생활 가운데 일정 연한 이내에서만 보직을 맡도록 하는 ‘보직 총량제’라도 도입해야 할 판이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회전문 인사’니 ‘순장조’라는 말이 있는데 대학 보직 인선을 두고도 동일한 표현을 써야하는 이 무참함을 어쩔 것인가. 진작 내던져 버렸어야 할 잘못된 선거 관행과 보직 인선은 내버리질 못했고, 끝까지 지켜내야 할 총장 직선제는 지켜내지 못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서경 천도론이 실현되지 못해 이후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역사가 되지 못한 것을 두고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 불렀다. 이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올 여름 직선제 폐지 소동은 ‘전남대 역사상 육십 년래 제일대 사건’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이제 막 간행된 ??전남대학교 60년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 동상으로 서 있는 얀 후스(Jan Hus)는 프라하 대학 총장 시절 교회권력에 맞서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강의하도록 했다. 그는 나중에 화형 당했고 지금도 프라하 대학을 대표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걸핏하면 재임 중의 일로 구속되고, 압수 수색 당하고, 자살하는 것이 한국의 대학 총장이다.

이번 재선거에서는 그동안의 선거 문화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19대 총장 재선거에 나선 분들에게 지난번 학칙 개정을 무효화 하고 총장 직선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밝혀주길 요구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릇된 대학 정책에 맞서 “그건 아니올시다”라고 말할 결기와 강단이 있는 총장을 우리 손으로 선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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