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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서 18년간 중국의 역사, 경제 연구세상을 품에 안은 전남대인 44. 대만 실천대학 국제경영학과 양영자 교수(중어중문학·89)
신원경 기자  |  salang-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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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10  10: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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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호흡하는 대만의 외국인 교수…“다름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삶 배워”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보내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교수. 지도학생들과 4년 동안 동고동락하는 교수. 지도학생의 연애상담부터 진로고민까지 내 일처럼 진지하게 공감해주는 교수. 우리나라에도 그런 교수가 있을까. 대만에는 있다. 우리 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대만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만 실천대학 국제경영학과에서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인 양영자 동문(중어중문학·89)이다.

중국에 대한 궁금증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중문과에 입학했다. 딱히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다. 학교를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러다 2학년 방학,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다. 그리고 영어와 중국어의 필요성을 몸소 느꼈다.

“외국 그게 뭐라고 눈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영어와 중국어를 그때부터 공부했다. 그리고 또 다시 방학이 되면 몽골로,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양 동문은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첫 외국 경험이 나쁘지 않아서였다. 양 동문의 친한 친구가 대만에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만도 자주 찾는 편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양 동문은 1993년 대전엑스포 자원활동가로 활동했다. 당시 양 동문이 맡은 역할은 통역이었다.

“중국어 통역을 맡았는데 대부분 나는 영어를 쓰고 있었다. 중국어 전공인 내가 중국어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처음 내가 부끄러웠다.”

이것이 양 동문이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된 이유다. 양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1994년 중국에 도착한 그는 1년간 중국 북경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양 동문은 중국에서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어를 빨리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은 언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면서 정작 가서는 한국인 친구들과만 어울리며 그 나라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중국어를 열심히 활용하려 노력했다. 또한 일부러 현지인들과 어울렸다.”

중국어 연수 과정을 마친 양 동문은 대만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중국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양 동문은 “중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양 동문은 “상대적으로 대만에서는 중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었다”며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강력히 주장하는 대만이 연구 장소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대만의 외국인 교수가 되기까지
양 동문은 1995년, 대만에 있는 중국문화대학 중국대륙연구소에 들어갔다. 그는 2년간 중국학을 전공해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보통 3~4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석사과정을 양 동문은 2년 만에 해냈다. 하지만 중국 연구에 대한 갈증은 석사학위 후에도 계속됐다.

“‘아직도 모자라다’는 생각에 공부를 계속했다.”

1997년 양 동문은 대만 중국문화대학 중산학술연구소에서 중국학을 넘어 중국 경제에 대해 연구했다. 중국 경제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서는 중국의 정치, 문학에 관련한 공부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받고 대만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에게도 언어에 대한 장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박사과정은 석사보다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8년이라는 시간동안 양 동문은 수업을 알아듣기 위해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는 일이 없었다. 공부하다 날을 세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같은 자세로 공부하던 양 동문에게 목 디스크와 허리디스크가 함께 찾아왔다. 하루에 4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물리치료를 받던 도중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물리치료와 학업의 병행 속에서 온 몸이 지쳐있던 때, 어느 꽃가게를 지나게 됐다. 그 꽃가게 안에는 꽃도 있었고 꽃의 향기를 맡으며 웃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을 보는데 갑자기 ‘행복’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치며 눈물이 나더라. 모르겠다. 내 처지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양 동문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 때 말이다. 양 동문은 단순히 중국 연구에 대한 갈증으로 버텨왔던 10년 넘는 세월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복해지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새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이어졌다. 양 동문은 졸업을 앞둔 상태에서 대만의 흥국대학교 경영학과로부터 교수 자리를 두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2004년 그는 흥국대학교 국제경영학과 조교수로 갔고, 이후 2005년 양 동문은 외국인 교수 중에서 최초로 학과장을 역임했다. 2006년, 양 동문은 대만의 실천대학 국제경영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까지 ‘친근한’ 외국인 교수로 학생들과 호흡하고 있다.

지도학생들과의 동화
18년이라는 세월동안 타국에서 공부만 하는 딸이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교수 생활 3년차에 접어들 무렵 양 동문의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로 운명을 달리했다. 손에 잡힌 일은 끝장을 보는 성품의 양 동문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양 동문 인생의 최대 고비이자 “내가 굳이 이렇게 살 필요가 있었나”라는 회의감을 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양 동문은 아버지를 보낸 후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10년간 그와 함께 방을 쓰며 공부하던 친구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양 동문은 갑자기 닥쳐온 크나큰 슬픔과 지독한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세상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정신적 여유 없이 달려왔던 유학생활에서 양 동문은 다시금 그 꽃가게를 떠올렸다. 그리고 양 동문의 제자들이 그의 희망이자 ‘꽃’으로 떠올랐다.

대만의 대학은 담임제다. 한 교수가 60명 정도의 아이들을 4년간 맡게 되는데 교수는 그 아이들의 생활부분에서부터 학업부분까지 모두 옆에서 지켜본다. 양 동문은 지도학생 중 누구와 누가 교제를 하고 있고, 그들이 언제 헤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심지어 학생이 키우는 개 이름까지 알 정도다. 그만큼 친구처럼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다.

처음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 양 동문은 많이 울었다. 첫 제자들임과 동시에 그들과 많은 정을 나눴기 때문이다.

“정주지 말자, 말자 하면서도 ‘껌딱지’처럼 내 옆에 붙어있는 제자들을 보면 그들과 동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른 문화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양 동문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현재도 대만에서 청춘 20대들과 소통하고 있다.

양영자 동문은 ▲1989~1993년 전남대학교 중문과(전공)/영문과(부전공) ▲1994~1995년 중국 북경어학원 연수 ▲1995~1997년 대만 중국문화대학 중국대륙연구소 석사 ▲1997~2004년 대만 중국문화대학 중산학술연구소 박사 ▲2004~2006년 대만 흥국관리학원 국제경영학과 전임 조교수 ▲2005~2006년 대만 흥국관리학원 국제경영학과 학과장 역임 ▲2006~현재 대만 실천대학 국제경영학과 전임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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