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이 겨울방학을 전후로 캠퍼스에서는 조용한 세대교체가 진행된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그것이다. 졸업식과 입학식은 새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본격적인 대학의 시작은 수강신청에서 부터이다. 수강신청은 대학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왜냐하면 수강신청은 미지의 대학생활 만큼이나 미지의 과목에 대해서도 막연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대학은 17개 대학과 11개 대학원에 다양한 전공과 관련된 수많은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다. 개설된 수 많은 수강과목의 선택에는 현명한 판단과 더불어 용기가 필요하다. 왜 현명한 판단과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이시대가 원융회통(圓融會通)의 통섭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통섭(consilience)은 서로 다른 요소 또는 이론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단위로 거듭남의 과정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즉, 통합이 물리적인(physical) 합침이라면 융합은 화학적(chemical) 합침이고, 통섭은 생물학적(biological) 합침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통섭이론은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 학문 간의 분절로 인한 소통부재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0세기까지는 학문 간의 경계가 뚜렷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인위적으로 분류한 학문체계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특히 학문영역에서 인접학문과의 소통 부재는 인접학문과 경계 짓기, 전공 간 경계 짓기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학문분절 현상은 학문의 심화 발전이라는 순기능적 측면도 있지만, 결국 인접학문과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역기능도 초래했다. 21세기의 통섭시대에서는 전문성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간의 유기적인 통섭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한 영역에 유능한 전문가보다 멀티 커뮤니케이션 스킬(multi-communication skill)을 가진 인재를 추구하고 있다. 수학을 모르는 인문계 학생에게 논리적 사고가 어렵듯이 문학과 사회를 배우지 않은 이공계 학생에게는 다양한 논쟁에 대한 유연성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접 학문 간의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으며, 일상적인 삶에서도 통섭적 사고는 인간생활의 일대 변혁을 상징하는 아이패드(iPad)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이번 학기에도 수강신청에 있어서 학생들의 많은 불만들이 표출되었다. 과목당 부족한 여석, 수강신청 사이트 접속 속도, 편법적인 수강신청자로 인한 공정성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듣고자하는 교과목을 추가로 개설하는 것에 대한 인력, 예산 및 공간의 문제로 분명히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와 더불어 동시에 고민해야 할 점은 수강과목을 선택할 때 선행되어야 할 통섭적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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