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시 자애학원으로 발령받고 가는 새 선생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 고속도로에서 동물을 치는 교통사고를 겪는다. 암울한 장래를 암시하면서...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 ‘도가니’ 시작 장면이다. 2005년에 일어났던 이 일들은 공지영작가의 동명 소설을 황동혁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겨 세상에 나왔다. ‘도가니’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또는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하는 우리 고유어이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야구나 축구경기에서 일본을 이겼을 때 쓰는 온 국민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고 좋은 표현에서만 쓰일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광란의 도가니, 분노의 도가니, 슬픔의 도가니며 극중 무진 자애학원이라는 곳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너무나 태연하게 벌어지는 ‘광란의 도가니’라는 뜻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아동성폭행사건을 바탕으로 한 충격실화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한 감독의 결심에서 나왔다. 차마 글이나 화면에서 표현되지 못 했을 성추행, 폭행, 협박, 공갈, 회유 등은 참혹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많은 독재와 군부에 대한 투쟁, 5·18 민주화운동 등을 통하여 세계 최고 인권, 민주, 평화의 도시라고 자부했던 광주는‘도가니’에 표현된 그 안개 자욱 암울한 무진시였다. 그렇다. 바로 6년전 이 도시 광주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아동장애인 성폭행사건이었다. 날마다 쏟아지는 그 당시 자료며 재판 결과를 재조명하면서 경찰의 재수사, 아동성범죄 공소시효폐지 등 국민 여론이 술렁이고 있다. 다행히 최근 경찰청장은 ‘교과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련부서와 함께 전국 장애인 시설과 학교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으며, 조사결과 성폭행 등 인권 침해 사례가 적발되면 관계 당국에 적극 통보 및 추가조치 유도, 경찰이 조기 개입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고 ‘인화학교에 대한 관리 감독 부실이나 재단비리 등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여, 철저하게 사실을 파해 쳐서 죄 있는 사람은 반드시 처벌 하겠다’고 강조하였다.

영화 속 피해 장애학생을 쫒아가 옆 화장실 칸막이 위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교장의 철면피 같은 모습을 기억해야한다. 광주해바라기 아동센터 소장으로도 근무하고 있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동성폭력 사례회의를 주제하고, 이에 따른 향후 의료지원과 심리치료, 법률상담 등을 논의하는 데, 지면을 통하여 소개할 수 없는 추악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난다고 보고받고 있다. 이 기관에서만 친부, 오빠, 의부 등을 비롯한 친족 피해가 지난 6년간 통계에서 36% 달한다고 조사되었고 아동성폭행들이 한 달에 15례 정도 보고되고 있다. 힘없고 나약한 아동과 장애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법이 닿는 한 최고형을, 또한 도덕적으로도 가장 극심한 벌을 줘야한다.

향후, 온 국민이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적 안전망, 교육, 예방, 홍보, 법제도, 실행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하여 아동과 장애아 같은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까운 부모, 일반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윤리와 인권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본인 스스로도 이에 대한 노력을 하여 보호해주는 방어막이 돼야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청명하고 높은 가을하늘에 한가로이 떠 덩실대는 하얀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한 자애로운 무등산을 바라보며 다시는 ‘안개 자욱 암울한 도시’ 구성원이 되지 않도록 같이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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