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무식한 백성이 글을 쉽게 배워, 글로 자유스럽게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 우리는 한글로 자아를 성숙, 발전시키면서,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색에 국립국어원이 부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한글의 창제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세종대왕이 무성음 ㅍ과 ㅌ 그리고 유성음 ㅂ과 ㄷ을 창안한 탁견을 부정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국어원은 받침 ㅂ과 ㅍ을 ㅂ으로, 그리고 ㄷ, ㅅ, ㅌ을 ㅅ으로 획일화하는 규정을 제정했다. 예를 들어 ‘Europe’을 유럽으로 표기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European’을 발음할 때는 ㅂ이 ㅍ으로 바뀌는 혼란이 일어난다.

게다가 국어사전에 커피(coffee)로 표기되어 있고,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외국인과 대화할 때는 의도적으로 신경을 써서 ‘카피’나 ‘코피’로 말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는 자아성숙과 발전에 쏟아야할 귀중한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잘못 표기된 영어를 원음으로 하루빨리 바꿔야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국제사회에 서는 학생들을 바보로 전락시키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 혼용이냐의 양자택일로 아무 결실 없는 논쟁만 하다가 우리 학문과 역사의 핵심을 이루는 한문을 모르는 불행한 세대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 논쟁을 합리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한글을 전용하면서도 한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중국어 교육으로 우리의 한문고전과 생활한자를 이해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필자는 중국어를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침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세종대왕 시대에 불가능했던 중국어 교육이 지금은 가능할 뿐 아니라 중국어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언어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우리 영문학 연구가 일본학자의 잘못된 번역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먼 메일러의 소설, ??The Naked and the Dead??가 일본인의 번역, “나자(裸者)와 사자(死者)”로 표기되고 있다. 첫 단어를 중요시하는 미국소설(글)에서 ‘The Naked’는 발가벗은 사람이 아니라 공을 세우려고 안달하는 편집병에 걸린 장군과 직업군인이다. 정확한 번역은 “편집병자와 사자” 또는 “편집병자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중국어 교육을 통해 한문을 익힌다면, 이런 잘못된 번역은 결코 수용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필자의 바람이다.

우리가 한글의 창제정신을 계승하려면, 보편성이 결여한 규정을 고수하려고 하기보다는 한글의 창조적 활용방안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 관심이 우리 삶과 성격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이 관심이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각성시켜, 우리의 일상의식을 개방, 도전, 진취, 협동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관심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 논리적, 합리적인가를 검토해볼 수 있으며, 마음을 크게 감동시키는 순수한 우리말의 응원과 도전 구호를 창안할 수 있다. 또한 무의미한 한자 사용을 삼갈 수 있으며, 외국인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요컨대 이 관심이 우리가 자아를 창조적으로 성숙,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다. 우리가 이 토대를 튼튼하게 구축하려고 최선을 다한다면, 한글의 창제정신은 더욱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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