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정의할 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란 표현을 빌려 쓰곤 한다. 인간만이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참여한다는 생각에서다. ‘사회’와 ‘무리’는 엄연히 다르다. 여러 방식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겠으나 무리는 주목적이 생존이기에 ‘싸움’이란 방식으로 유지되고(싸움에서 이긴 자의 결정에 따른다), 사회는 생존만을 위한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로 의사결정을 한다.

위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간일 수 없다. 하지만 정치는 욕을 먹는다. ‘정치적’이란 말은 종종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더 나아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 까지 이르고 있다. 원인은 정치가 정치가 아닌, 싸움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많은 국민의 맹목적 사랑이 다소 아쉽긴 했으나 서울 시장 후보로 거론된 가운데 안 교수가 보여준 모습은 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어디 여론조사에서 50%의 지지율을 얻고, 출마하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 기존 정치권의 싸움하는 모습에 환멸은 느낀 국민들은 최소한 싸움하지 않은 안 교수의 모습에 지지를 보내고, 정치적 동물이 되었다.

학내 정치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학생들이 학내 정치에 관심이 적다고 말하는 것은 학생들을 무시하는 것이라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히 학생들은 학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원인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과 똑같다. 정치가 싸움이 되었기 때문.

전설 총학생회와 더전대(The전대)의 학생총회에 대한 ‘언쟁’으로 학내가 시끄럽다. 아니 어쩌면 그들만의 ‘싸움’일 수 있다. 그 내용의 잘잘못보다 이 현상 자체를 비판하고 싶다. 기성 정치를 닮지 않겠다고 수도 없이 외치던 자들이라 더 실망스럽다. 서로 대자보를 붙이고, “나는 어쨌고, 너는 저쨌네”하는 것이 영락없는 기성 정치판이다.

일단 6천 여 명의 학생들이 9월 27일 학생총회를 여는 것에 서명했으니 당일 학생총회는 열려야 할 것이다. 이제 그 자리에서 ‘싸움’을 할 것인지 ‘정치’를 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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