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시민보고회가 지난달 28일 금남로에서 열렸다.

국가 기록부터 민중 일기까지…“광주 시민 꾸준한 기록 축적 공헌”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유네스코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현지시각 5월 23일 제 10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를 개최하고,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최종 심의, 등재를 결정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의 김영진 위원장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5·18정신을 온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자축했다. 이번 등재의 의미와 과정, 등록된 기록물들에 대해 알아봤다.

▲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5·18
이번 등재의 가장 큰 의미는 세계가 5·18민중항쟁(이하 5·18)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 나간채 5·18연구소장(사회학·사회운동론)은 “1997년 국가기념일로 5월 18일이 지정된 것은 5·18이 지역의 범위를 넘어 국가적 자산이 되었음을 의미했다면 이번 2011년 등재는 국가를 넘어 전 인류의 세계사적 문화유산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5·18 기록물이 지금까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문화유산(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 참조)과는 달리 현대기록물이라는 점도 눈에 띤다. 이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형사재판기록, 필리핀 민중혁명 음향 녹음 수집품,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인권 기록 등과 같은 인권사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민중들의 기록(일기, 성명문)과 증언, 기자들의 사진들을 기록물에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이 아닌 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겨있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추진위원회 안종철 추진단장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진상규명·책임자처벌·명예회복·피해보상·기념사업 등을 추진하였고, 이 기록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축적되었다”며 “이것들이 이번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 1980년 5월 18일 한 시민의 일기.

▲추진위원회 꾸려져 등재 활동…보수 단체 훼방도
최초 등재활동의 시작은 김영진 의원에서 시작됐다. 김 의원은 5·18 관련 단체(기념재단, 유족회, 구속자회, 부상자회, 5월 어머니집)와 광주시 및 광주시교육청, 5·18연구소가 있는 주요대학총장(우리 대학, 조선대, 광주대)들과 만나 등재 추진의 필요성을 알렸다. 결국 김의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안종철 전 국가인권위원회 본부장을 추진단장으로 하여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유네스코에는 지난해 3월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유네스코는 같은 해 11월 등재심사소위원회, 지난 2월 등재심사위원회를 통해 심사를 했고, 결국 지난달 22일 맨체스터에서 국제자문위원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등재를 결정했다.

등재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있었다. 지난해 10월과 지난 4월 일부 보수단체에서 등재 반대 운동을 진행한 것. 이들은 “북한 특수군 600여명이 광주에 와서 시민을 죽였다”이라고 주장하며 ‘광주사태, 함부로 등재 말라’는 성명을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 제출했다. 추진위원회는 김황식 총리에게 ‘5·18은 법적으로 이미 종결되었고, 책임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종결되어 처벌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제출, 이를 유네스코에 전달하게 하는 외교적 노력 등을 기울여 이번 성과를 이루는 데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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