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큐 영화 <오월 애: 못다 한 오월 이야기> 시사회를 다녀왔다. 표제에서 보듯이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 가기 전부터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면서 그래도 견디며 보리라 작심하고 들어갔으나 예상을 뒤엎었다. 두 시간 동안 내 두 눈은 스크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몇 해 전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대규모 관중을 동원했던 <화려한 휴가> 시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 때 영화가 안성기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여 5・18전사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을 소재로 했다면, 이 작품은 훈련된 배우들이 아니라 이름 없는 시위대나 시민군 또는 일반 시민이었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꾸며졌다. 시사회 관객들도 그 때는 지역사회의 이름 있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들뜬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이번에는 그냥 이웃의 소박한 아주머니 아저씨들, 그리고 청소년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 사랑>이 주는 의미와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첫째는 이 영화가 5・18항쟁의 인식에 중요한 진전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항쟁의 표면에 등장했던 지도자나 대표적인 활동가를 중심으로 그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엘리트 중심의 항쟁인식을 넘어 이름도 없이 싸워 온 기층 민중이 겪어 온 삶의 애환을 실감있게 보여줌으로써 마침내 항쟁에 대한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출연한 증언자들의 성숙한 연기력이 인상적이었다. 비닐로 만든 비옷을 둘러쓰고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30년 전 그날을 독백하는 양동시장 참외장수 아주머니, ‘짱깨’라고 놀려대는 이웃에게도 미소를 잃지 않고 철가방에 자장면을 담아 오토바이로 숨 가쁘게 배달하는 중국식당 부부, 리어카를 몰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행상, 더렵혀진 구두를 바쁘게 솔질하여 빛내주는 구두병원 주인, 망월동 꽃집에서 잔잔한 웃음 속에 화분을 어루만지는 주인아저씨 등이 1980년 5월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의 연기는, 필자가 보기에는, 기성 배우들을 능가할 만큼 정제된 것 이었다. 여기에다 더 빛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척박한 생활 속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학살만행의 주역들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감행해왔고, 그리하여 마침내 1980년 5월 27일에 장렬하게 패배했던 광주항쟁을 20년의 싸움 끝에 승리한 항쟁으로 다시 살려냈다는데 있다.

또한 1980년 5월의 10일 동안에 겪어야 했던 분노와 한 맺힌 경험에 대한 증언은 더 큰 감동을 자아냈다. 이들이 말하는 80년 5월의 기억은 기막히고 참절한 것이었지만, 그 경험이 지난 30년의 험난한 인생 여정에서 차분하게 숙성되고 마음 속 깊이 배어들어, 보고 듣는 이들의 영혼에 더 깊지만 크게 출렁이기 보다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는 몸과 마음이 떨리고 아픈 기억 속에서 몸살을 앓으며 억압의 권력에 대항해 싸워왔다. 이 떨림과 아픔은 1968년 프랑스 낭트대학과 소르본느 대학의 5월, 1970년 미국 켄트대학과 예일대학의 5월, 그리고 1992년 방콕 타마사트 대학의 5월에서도 비슷하게 겪어왔다. 그러나 나는 광주 전남대학의 5월이 이들의 5월보다도 더 깊고 더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강인하게 싸워 온 세월이었고, 그리하여 그들보다 더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낸 명예를 잊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김태일 감독의 부인과 아들로 구성된 ‘상구네’라는 제작사가 만들어 냈다. 자금은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지원받았으며, 이미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작품임을 소개한다. 끝으로, 아직도 5・18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경북 출신 김태일 감독이 보여준 광주항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적인 예술혼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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