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항상 행복할 수 없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환경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거나 절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 또한 많은 시련을 직면했습니다. 정신적, 물질적, 경제적인 문제들로 시달렸고 사는 것이 힘든 짐으로만 느껴졌습니다. 이런 고민으로 끙끙대고 있는 저에게 먼저 다가와 주신 분이 있으셨습니다.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저희 어머니십니다. 어머니께서는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씩 조언해주시면서 저의 친구이자 조언자, 버팀목, 정말 없어서는 안될 저만의 ‘멘토’가 되셨죠. 하지만 저의 어머니에 대해 친근한 어머니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려 했다면 저는 애당초 ‘엄마를 부탁해’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면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걸리면 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소아마비. 이것이 저희 어머니의 병명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병 때문에 몸이 불편하십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생계를 유지하고 우리 가족을 이끌어오셨습니다. 적은 수입이지만 저희 가족의 의식주를 마련하는 것에 크나큰 도움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실까요? 어머니께서 20대 때, 자신의 환경을 인정하시고 방이라는 작은 공간에 고립시키기보다는 독립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 무렵, 무료로 기술을 가르치던 기숙학원을 찾아가 신체적 조건에 가능한 기술을 배우셨습니다. 그 후, 많은 고난과 눈물겨운 세월을 보내셨고 20년 전, 가게를 차리셔서 지금까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신체적인 걸림돌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2배 이상의 시련을 겪으시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 문제들이 부끄러운 것들이 되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왔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제가 가장 어머니께 가장 본받고 싶은 점은 인내라는 특성입니다. 아버지께서도 약간의 신체적 결함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결혼 후,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손실감, 괴리감이 엄청나셨습니다. 자신의 환경을 인정하기 싫으시고 부정하고 싶으셨던 것 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아버지를 옭아매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보살피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마음에 새겨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쉽게 안정을 되찾지 못하셨지만 어머니께서는 싫다는 내색 없이 항상 웃으시면서 아버지를 계속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요즘은 아버지께서 많이 가정적이 되셨고 가부장적인 권위로 가정을 이끄시기 보단 친근하게 다가오십니다. 어머니께서 포기하셨더라면 아버지께서는 무너지셨을 테지만 현재 올바른 사고로 생각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면 옛날 기억은 사라져 버리고 웃음이 나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문구가 문득 생각납니다. 그처럼 많은 어머니께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아오시지만 제게는 더욱 특별한 어머니 이십니다. 어머니의 성향이 달랐더라면 지금의 저 그리고 우리 가족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성향이 달랐더라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하여튼, 앞으로도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가장 큰 재산인 의지와 끈기를 되새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 동안 어머니께서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던 문화적 혜택이나 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많은 추억을 남겨 드리고 싶습니다.

“엄마, 하늘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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