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들의 삶은 더 이상 소와 더불어 거닐거나, 돼지를 보며 복을 기원하거나, 또는 닭의 훼치는 소리와 더불어 아침을 맞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우리는 또한 숱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이솝우화』, 『동물농장』, 『금수회의록』 그리고 동물들이 등장하는 많은 전래동화들. 물론 동물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지어낸 것이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역시 인간들의 말을 흉내 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순전한 허구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김새, 습성, 또 일정한 지능과 같은 것은 그들만의 특유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리성을 위해 그들을 하나의 저능한 집단으로 간주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만의 개별성이 분명 존재한다.

 

2. 반평생을 같이 한 소와 태어 난지 얼마 안 되는 새끼 돼지들이 죽임 당하고 있다. 그들의 눈과 연한 살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병이 걸리고, 또 그 인간의 욕망을 지키기 위해 살처분 된다. 불도저 삽날 근처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이 생명들. 저를 보살펴 왔던 수의사의 손에 영문 모르고 죽어 쓰러지는 저 생명들. 죽음의 공포를 산 채로 고스란히 느끼면서 그들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무렇게나 구덩이에 던져지는 육신들. 흙 밑에 층층이 깔려 서로의 육체가 숨을 끊어 놓는 무기가 되는 이 시간. 이 모든 장면들은 말 그대로 지옥의 한 모습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동물’이라 지칭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눈빛이 모두 다른 ‘말’을 한다. 아우성이다.

 

3. 이들의 우화는 곧 우리의 우화일 것인가? 어린 시절 우리 꿈의 대상이고, 친구였던 이들의 죽음 앞에 서면, ‘살처분’이라는 살천스런 말이 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죽음과 더불어 우리 욕망의 죽음이 함께 목도되는 것은 아닌가? 결국 저들이 죽음으로써 아우성치는 것은 우리 욕망에 대한 고발이며, 이 세계 전체가 저질러온 그동안의 육식의 원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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