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은 우리를 휩쓸 듯 지나갔다. G20의 실체를 아는 이는 별로 없지만, G20이라는 어휘만은 우리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실체는 없고 껍데기만 기억에 남았다. 그 기억을 구성한 강력한 힘, 그것이 바로 공익광고이다. 우리는 공익광고를 통해 수없이 “G20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합니다”라는 문장을 주입받았다. 이 문장은 G20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G20을 “성공”이나 “기원”이라는 긍정적인 어휘와 만나게 하고자 하는 ‘누구’의, ‘어떤’ 의지만을 전달받았다.

그렇다면 여기에 공익이란 무엇일까하는 문제의식을 가질만하다. 과연 ‘누구’의 성공이며 ‘어떤’ 기원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우리는 공익광고의 본래적 의도에 대해 의례적인 회의를 품게 된다. 공익광고의 중심이 대중이 아닌 관(정부)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품어왔던 의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공익광고, 가령 G20과 관련된 공익광고는 정부가 주도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부가 ‘공공’에 대한 다른 환상에 빠져있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광고들을 보면 정부는 공공연하게 국가적 행사에 전체 시민이 당연히 호응하고, 기뻐해야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공공’의 환상, 즉 그들만의 신민을 호명하는 환상에 빠져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상 G20은 일반 시민들의 일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위기에 빠진 세계 금융 자본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G20과 관련된 공익광고들은 오히려 실제 ‘공공’인 시민들을 환상의 ‘공공’으로부터 분리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기원’은 커녕, 실제 자신의 처지와 환상적인 선진국 국민으로 호명된 자기 자신 사이에서 혼란만 느끼는 것이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그와 더불어 국가의 호명과 환상도 끝이 날 것인가. 이 환상은 다시금 광저우 아시안 게임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G20에서 호명했던 그 공공의 환상은 이렇듯 항상 우리 주위를 휩싸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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