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경제적 성과가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을 나누는 지배적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에 올인(all-in)하겠다는 정치적 슬로건은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2학년은 이미 늦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고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생들도 생존 또는 성공을 위한 경쟁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한 신문의 국제여론조사결과 인용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69%는 성공의 최고증표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이 같은 수치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수치라고 한다.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현상들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성공에 대한 보상이, 그것이 심리적인 것 일수도 있지만 특히 경제적인 것일 경우, 크면 클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게 되며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결과는 효율적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생각해보라.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명예는 물론 두둑한 경제적 보상까지 보장받는다. 한 선수는 공공연하게 출연하고 싶은 광고의 종류까지 얘기할 정도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경제적 보상이라는 인센티브에 반응하여 금메달 경쟁에 뛰어들고 더 많은 금메달을 조국의 품에 안길 것으로 기대해볼만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이윤이라는 인센티브에 이끌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원을 사용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유능한 노동자들은 기업의 선택을 받고 보상을 받으며 보상이 클수록 노동자들은 더욱 경쟁을 할 것이고 효율성도 강화될 것이다. 복지나 소득 재분배와 같은, 일견 고귀해 보이는 목적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개인의 인센티브를 왜곡시켜 효율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일등만 기억한다고 불평하지 말지어다. 효율적이므로. 만약 일등과 이등에 대한 보상의 격차가 크지 않거나 일등에게 돌아갈 보상의 일부를 떼어 이등에게 준다면 누가 일등이 되려고 올인하겠는가? 일부 선진국 국민들은 성공의 증표를 금전에 연결하는 비율이 고작 30% 전후에 불과하다고 하니 그런 나라들은 곧 경제성장이 정체되어 우리나라에게 추월당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하거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필자가 현실을 과장․왜곡하거나 논리를 비약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과 효율성을 맹신하다보면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더러운 세상이 아닌 효율적인 세상이 될 수 있다. 시장은 개인의 인센티브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인센티브 뿐 아니라 배려나 질서와 같은 비경제적인 인센티브에도 반응한다. 국가권력만 개인의 인센티브를 왜곡시키거나 경쟁을 저해하겠는가. 작은 동네의 졸부조차도 행세하려고 드는데 경제권력이 시장을 구경만 하고 있겠는가. 필자는 이등이나 삼등도 기억하고 배려하며 비경제적인 인센티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비경제적인 인센티브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인센티브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있으며, 시장에 대한 맹신보다는 정부기능과의 적절한 조화에 의해 더 바람직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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