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인 김대중은 호남의 한을 풀어준 정치인이었다. 차별과 소외로 얼룩져가는 지역구도의 한국사에서 억압받던 정치인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역사적인 진보였다. 그 후 그는 거짓과 타협하지 않는 이 나라에 씨앗을 품는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 호남의 많은 분들이 그 분의 실패와 그 분의 아픔에 공감하였고 그 분의 슬픔과 그 분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었다. 정치인 김대중은 반복되는 낙선의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투사였으며 군부독재의 탄압과 암살시도와 극단적인 폭압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는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다. 그는 돈으로 노벨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꾼들의 모략에도 의연했으며 북한에 퍼주기 정치를 폈다는 악의적인 비난에도 담대하게 맞섰다. 북한 개발의 선재적인 효과와 점진적인 개발을 통해 닫힌 문을 열어간다는 그분의 햇볕정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민족의 분열과 갈등을 원하는 부류들의 정치적인 술수를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늘 아래 너무나도 당연하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려왔었다. 우리는 국민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대통령들을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정치인 노무현에게는 죄를 졌고 정치인 김대중에게는 빚을 졌다.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상징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우리는 그 분을 역사 속으로 보내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시대적인 흐름과 역사적인 맥락을 파악하며 우리를 이끌던 선구자였고 독재에 저항하며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정치인이었으며 권력의 중심에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보복하지 않고 포용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던 대한민국의 큰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수를 용서하는 일이 쉬운 일로 생각한다. 또한 상처는 시간이 흘러가면 낫고 아픔은 망각이 약이라고들 한다. 진실로 그러한가? 글이나 말과 같이 우리는 쉽게 용서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위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경쟁이 내면화되어 친구를 라이벌로 생각해야 하는 사회, 결혼이 사랑이 아닌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사회, 대학이 자기발전을 위한 학문의 장이 아닌 직업인 양성소가 되어버린 사회, 종교가 기업화되어 신도를 부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회, 부모와 자식이 갈등하며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분열하는 사회이다. 아픈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인정하자. 왜곡된 현실은 바뀌어야 하며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아야 한다. 시작은 바로 인식의 전환을 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흉터를 남기며 아픔은 잊을 수 없는 앙금을 새겨준다. 그럼 무엇이 용서를 하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노력이다. 대의를 위해 인간적인 보복욕구와 개인의 분노를 참았던 분들이야말로 어른이며 위인이다. 우리는 오늘 시대의 큰 어른을 역사 속으로 보내야 한다. 편안하게 보내드리지 못하는 현실이 억울하고 분하다. 그분들을 시대 속에서 살리는 일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 되었다. 그분들이 옆에 없다고 해서 그분들이 사라진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분들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가 살아있고 목표가 남아있다. 이제 우리의 몫은 분명하다.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켰던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며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우리가 이어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행했던 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거목들의 그늘 아래 나태했던 죄인들의 반성이며 고개 숙일 줄 아는 어른들을 타박했던 우리 자신들의 속죄이다. 존경하는 어르신들을 보내야하는 2009년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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