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이었습니다. 뒤뜰에 가설해둔 가지보 (철근 뼈대에 위를 비닐로 덮은 정자 같은 건물) 의 비닐지붕이 이 지방 특유의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해 갈기갈기 찢겨나간 뒤, 그 자리를 덮어 햇볕을 가려볼 양으로 등나무 두 그루를 사다가 양쪽 귀퉁이에 심었습니다. 놀랍게도 등나무는 심자마자 가느다란 가지들로 가지보의 철근을 서너 번씩 감고 오르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시에 성장을 멈추어버렸습니다. 잎이 노래지거나 마르지 않는 걸로 보아 죽을 염려는 없겠구나 했지만, 잘 길러서 빨리 볕을 가리고 싶은 마음에 연유를 알아보니 새로운 뿌리를 만들기 위해 성장을 멈춘 것이며 일단 뿌리가 튼튼해지면 그때 다시 위로 자라기 시작하는 아주 정상정인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한 일은 때마침 닥친 심한 가뭄에 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고, 너무 약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할 성 싶은 가지는 잘라주며, 바람을 너무 타지 않게 철사로 가지를 고정시켜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숨죽은 듯 지내던 등나무가 심은 지 두 달 반이 되자 활기를 되찾으면서 가지 끝마다 새잎을 힘차게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연한초록색 잎이 한없이 예뻐서 틈만 나면 문을 열고 나가 어루만져주고는 했지요.
  한 보름 후였을까 어느 날 아침 바로 그 새잎을 찾아 날아든 귀한 손님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등나무 잎사귀 사이 철근 위에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메뚜기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함께 저의 마음은 바로 수십 년 전 어릴 때로 돌아갔습니다. 벼가 막 익기 시작하는 고향 나주평야 한쪽 넓은 들판을 걸으면서 사방으로 뛰어 달아나는 메뚜기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득 정신이 들어 카메라를 찾아 들고 다시 조심스럽게 녀석에게 다가가면서는 그 사이 자리를 떠버렸으면 어쩌나 조바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녀석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면서 포즈까지 멋지게 취해주었습니다.
  뒤뜰에는 몇 가지 미물이 우리 내외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야외욕조를 받치는 갑판 아래에는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살면서 가끔 담을 넘어 옆집까지 왕래합니다. 여름이면 도마뱀들이 담장을 오르내리며 날벌레를 먹습니다. 가을에는 여치와 귀뚜라미가 더러 집안까지 찾아 들어 밤새 노래를 불러줍니다. 애써 가꾸는 채송화만 골라 먹어버린다고 집사람이 불평하는 달팽이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이번에 온 귀한 손님은 너무 뜻밖이었지요. 작년 여름 내내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데다가 사방이 집뿐인 주택가 한 복판에 나타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행여 놀랠세라 염려하면서도 자꾸만 조심스럽게 다가가봅니다. 앙증스러운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려니와, 혹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았나 걱정도 돼서지요. 이란에서는 반드시 손님에게 최고의 지위를 부여하고, 가장 달고 맛있는 과일을 대접하며, 가장 안락한 곳에 앉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을 녀석이 알기나 할까? ‘아무리 좋은 생선도 사흘 지나면 냄새난다’는 말뜻을 녀석이 알아차려버리면 어떡하나. 저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 속에 녀석과 한 울안에서 사는 재미를 맛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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