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청년이 뜬금 없이 재래시장을 찾다

7월 마지막 주 토요일.

여름의 정점에 서 있는 그 후텁지근한 저녁에, 나는 대인시장으로 향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천상 요즘의 20대인 내가 재래시장을 찾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대형마트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나이 지긋한 상인 분들의 눈길을 받으며 걷는다는 게 그저 두렵고 어색할 뿐이었다. 게다가 혼자서 재래시장에 와보는 것은 태어나서 이 날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참으며 터벅터벅 걸었다.

그 목적이란 대인시장 인근에 생긴 특별한 문화공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눈등으로 읽어 넘겼던 신문에서 언젠가, 이 곳 어딘가에 광주 최초의 대안공간이 생긴다는 정보를 읽었던 것이다. 이름 하여 '매개공간 미나里'라고 했던가.

 



시장을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건만, 미나里를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메모해놨던 정보들은 단번에 쓸모가 없었다. 1시간 넘게 헤맨 끝에 나는 웅성웅성하는 소리를 귀에 잡아넣으며 겨우 미나里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미나里는 큰 길에서 작은 골목으로 더 들어가야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계림주차장이라는 간판은 있었지만 그 폭은 겨우 2m남짓으로, 밖에서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눈에 띠는 거라고는 그저 주차장으로 쓰이는 빈 공터뿐.

그러나 운이 좋았다. 아니, 내가 운 좋은 날을 골랐다. 그 날은 미나里에서 열리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라, 입구 쪽에서 새롭게 이정표를 만들고 포스터를 붙이고,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다면 아마 나는 찾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매개공간 미나里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주말에 "매미시장"이란 이름의 행사가 열린다. 그 날은 미나里가 생기고 열리는 3번째 매미시장으로, 타이틀은 "토요일 밤의 열기"였다. '買美시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미술품 벼룩시장이 열리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여러 작가들의 퍼포먼스와 지역민들의 파티가 이어진다.

미나里가 대인시장 곁에 둥지를 튼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장'이 가지는 교류와 만남의 특성에 걸맞게, 감성과 정보 그리고 삶의 교류를 위해 미나里는 대인시장 곁에 마주 선 것이다. 그 의도에 걸맞게 그 날의 매미시장에는 예술인들만이 아니라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코흘리개 3살 꼬마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게.

 


#광주 최초의 대안공간, 미나里

어렵게 찾는 미나里는 생각보다 조촐했다. 전시공간은 벽돌이 노출된 게 흡사 공사장 같았고, 지붕은 슬레이트 지붕이라서 비가 새지는 않으려나 걱정됐다. 천장에 달린 건 일반적인 갤러리에서 사용되는 할로겐조명이 아니라 화장실에서나 쓸 법한 백열전구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촐함들은 초라하기 보다는 빈티지룩에 가까웠다. 전시공간이라는 특색과 그 곳을 채운 미술품들의 주술일지는 모르겠으나 매개공간 미나里의 전시공간은 대안과 독립의 그릇에 알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전시 공간



전시공간 밖으로 나오자 주차장에는 그 날의 행사 준비가 한참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퍼포먼스 작가, 리허설을 하는 사회자, 부산에서 온 DJ, 동남아 각지에서 온 작가들, 진행STAFF들과 구경을 나온 주민들이 한 데 뒤섞여, 바로 옆의 대인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자아냈다. 단순하게 예산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공연석과 관람석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 어찌 보면 대안공간의 필수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늘이 어두워지고 시작된 행사는 '안정'이란 이름의 작가의 퍼포먼스로 시작되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고요함을 가로지르며 메트로놈이 딸깍거리고, 음악이 흐르자 작가는 투명한 잔에 담긴 녹색음료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운 좋게 나도 한 잔 받을 수 있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맛이 썩 좋지 않았다. 콘 아이스크림의 과자를 음료로 만든 듯한 이상한 맛이었다. '이걸 언제 다 마시지..'라고 난처해할 무렵,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컵 바닥에 적힌 '虛'라는 글자였다. 힘들게(?) 음료를 다 마시고 나니, '虛'는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퍼포먼스를 마친 뒤 간단하게 코멘트를 했다. '이것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먹을수록 더 허기가 지는, 아귀 같은 욕망과 외로움을 상징한다.'라고.


▲ 허다솜 양이 전통인도춤을 추고 있다.


퍼포먼스 뒤에는 동남아에서 광주를 찾아온 작가들의 인사와 한국인이지만 5살 때부터 인도에서 자라고, 인도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했다는 허다솜 양의 전통인도춤이 이어졌다. 그 뒤로는 Jazz팀, 타악 퍼포먼스 팀의 연주가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며 '매미 Screen Report'가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안톤 숄츠라는 독일인은 굉장히 눈에 띠었다. 현재 조선대에서 강의하고 있다고 소개는 되었지만, 그의 유창한 한국어실력은 매미시장에 온 마을어른들의 놀라움과 탄성을 자아냈다. 그는 아시아 각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주며, 아시아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줄줄 풀어냈다. Screen Report 끝에는 부산에서 왔다는 DJ들의 음악에 맞춰 파티가 열렸고, 그렇게 그 날의 밤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기대와 실망, 그리고 희망

처음에 미나里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때, 내심 기대했던 것은 서울의 쌈지스페이스와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분야에나 주류와 비주류, 자본과 비자본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유독 돈에 약한 것이 예술분야다. 서울의 대안공간들은 처음엔 독립과 소통, 대안의 헝그리정신으로부터 출발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을 얻었고, 점차 상업적으로 변해버려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제2의 주류세력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점에 비추어보면 매개공간 미나里의 지금 같은 풋풋하고도 순수한 조촐함은,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 희망이 생긴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생긴 대안공간이 상업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정신을 품고 태어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향-문화수도라는 이름의 광주에 새로운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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