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최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루벤스, 바로크 걸작전’ 앞에 붙는 수식어다. 애써 궁리하지 않아도 광주에서 나고 자란 세월을 뒤돌아보면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뜨거운 여름태양을 꾸역꾸역 참으며, 접근성 떨어지기로 유명한 광주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다행히도 이러한 나의 수고를 무시하지 않고 미술관 내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잘 흘러나왔다. 하지만 웬걸, 이 쾌적한 온도는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작품(작품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먼 길 찾아온 시민을 위해 화환이라도 걸어 놓을 줄 알았는데, 정작 전시장 내부는 어둡기만 했다. 이 역시 작품보존을 위한 조도(照度)라고 했다. ‘수백억 원 대의 작품가와 수 억 원대의 보험료에 걸맞게 그래야겠지’라고 생각할 무렵, 도슨트의 설명이 들려왔다.

   “전시장 내부를 어둡게 해 놓은 것은 물론, 작품보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관람객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제작되고 감상되던 시기는, 아시겠지만 지금처럼 전기를 사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이 작품을 그리고 보던 때의 환경을 재현하는 차원에서도 이러한 조도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 네덜란드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에서 전시를 관람하시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과연 내가 17세기의 네덜란드 어느 저택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전시장 바닥의 나무마루와 앤틱한 느낌의 작품들은 나의 시대감각을 쉽사리 희석시켜버렸다.

   전시의 시작은 ‘비엔나아카데미뮤지엄’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번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아카데미뮤지엄의 공통주최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소개를 빼놓을 수는 없었겠지만, 뮤지엄에 대한 도슨트의 설명은 꽤나 진부했다. 다만, 다행히도 한 가지가 귀에 들어왔다. “여러분, 히틀러가 화가지망생이었던 거 아시죠? 히틀러가 화가가 되기 위해 입학하려 했던 곳이 바로 이 비엔나아카데미뮤지엄입니다. 하지만 결국 두 번이나 낙방을 하고 말지요” 바로크 시대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화풍에 어울리지 않게 히틀러와의 인연이라니, 다소 난해한 조합이었지만 그 난해한 만큼이나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도슨트를 따라 이동한 전시실은 2층 과 3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2층에는 풍속화, 동물화,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가, 3층에는 역사화와 루벤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었다. 작품이 제작된 기반에 걸맞게, 무역과 풍요 그리고 그러한 삶으로부터의 현기증, 허무감 같은 감정들이 자주 엿보였다. 그 중에서도 얀 웨이닉스의 ‘하얀 공작새’란 작품이 가장 눈에 띄었다.

   2층 전시실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큰 크기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우선 크기에서부터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림 중앙을 차지한 커다란 하얀 공작새는 주변의 어둡고 칙칙한 그림 속 배경은 물론 어두운 전시실 내부에 비추어서도 더욱 하얗게 보여, 여러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공작새는 살아있는 상태를 그린 게 아니었다. 비단 공작새만이 아니라 토끼, 청둥오리도 죽은 채로 그려져 있었다. 도슨트는 이 작품이 사냥을 통해 얻은 것들을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 없던 시절에 기념과 과시를 위해 이러한 작품들을 그렸다고 한다.

 

▲ 얀 웨이닉스의 ‘하얀 공작새’

   이를테면, 17세기의 UCC라고나 할까.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방은 십자교통의 중심이라서 무역이 번성했고 그러한 풍요로움이 바로크 시대의 작품 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여러 번 전란에 휩싸이며 지배자가 자주 바뀌는 혼란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한 풍요와 그러한 혼란, 그 두 가지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2층과 3층을 통틀어 전시장 내외를 휩쓸고 있었다. 그 시대가 그러했듯이.

   이번 전시에는 총 75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시장에 들어 설 때만 하더라도 나는 작품수가 적은 것 아닌가 하고 불평했었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 음미하며 감상하다보니 훌쩍 2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니 어둠 속에 익숙했던 두 눈에 피곤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정작 피곤함을 느낀 건 내 감수성이 아니었을까. 전시장 경계 하나를 두고 17세기와 21세기를 왕래한 듯한 이 느낌이, 전시 관람의 일회성을 부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비엔날레를 생각하며, 진정으로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경계에 서 있는 내가, 아니 광주 그리고 광주의 가을이 더욱 청명하고 흥분되어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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