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것 보니 가을이 왔나보다. 여름을 이렇게 보내기 아쉬워서 찾은 마지막 여름피서를 나는 영화관에서 보내기로 정하였다. 이번 여름의 유일한 공포영화 ‘고사’를 보면서.

 
공포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터라, 올해 공포영화가 오직 ‘고사’뿐이라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그 만큼 오싹한 무서움을 기대하며 영화를 보았다.

 


‘고사’의 배경은 ‘학교’이다. 학교의 스피커에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이상한 문제들이 주어진다. 주어진 문제를 풀지 못할 시 학생들은 한명씩 차례로 잔인하게 죽어간다. 영화를 보면서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서 공포가 극대화되면서 범인이 누구일지 문제를 같이 맞혀보며 추리할 수 있었고,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 되는 것을 보면서 공포영화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맛보았다.

하지만 다른 영화에서 충분히 활용되었던 ‘학교’라는 배경의 식상함과 이범수 외엔 눈에 띄는 연기력을 볼 수 없어서일까? 아무래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은 이미 약발이 다한 것 같다. ‘여고괴담’, ‘분신사바’, ‘스승의 은혜’ 등 많은 공포영화들을 봤던지라, 무엇인가 익숙한 줄거리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로 공포영화만의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지만, 영화에서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저 그런 공포영화로 단정 지을 수만은 없었다. 감독은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해 배경을 ‘학교’로 하여 이야기를 구성했다기 보다는 '학교'라는 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선 ‘이범수’라는 인물에 주목을 해봐야한다. 극 중에서 이범수는 항상 학생들 편에 서서 꾸지람보다는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학생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선생님이다. 소박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주던 그의 얼굴 뒤에는 돈을 받고 학부모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모습을 가진 이중적인 인물로 나온다.

극에서는 돈을 건넨 학부모들의 자식들이 차례대로 죽어간다. 나는 여기에서 의문이 생겼다. 돈을 요구하고 받고 거래하는 사람들은 정작 어른들인데 학생들이 왜 죽어야 되는지, 학생들은 부모의 기대를 부흥하기 위해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생각하다기 보다는 점수, 등수라는 숫자에 집착하며 공부를 하는 불쌍한 존재이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어른들인데 왜 학생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영화에서 전교 1등인 학생은 죽어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미안해 근데 난 잘못이 없어. 그저 부모님의 과도한 욕심때문이었어”
결국, 어른들의 욕심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문득 서울시 교육청의 국제중 설립 뉴스가 떠올랐다.


인재양성과 조기유학을 잡을 것이라는 명분아래 교육정책을 내놓았지만 국제중에 진학하기 위한 기준은 영어공인점수와 각종 경시대회수상 등의 경력 등을 내세웠다. 벌써부터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하며 국제중 진학조건에 맞게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많은 경험들을 통해 인성을 키우고 가치관을 정립시켜야할 어린 초등학생들이 공부에만 매달리게 되고 그것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누가 보상을 해줄 것인가.

학생들을 위해서 만들어져야할 교육정책이 정작 학생들은 배제된 듯하다. 국제중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입시지옥이라는 말과 같이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학생이든 학부모든 모두들 혈안이 되어있다. 자신의 목표와 꿈을 위해서 배워야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어른들이 고착시켜버린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학생들의 교실이 바로 공포영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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