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택하는 학생.학부모의 태도에는 감동
뉴욕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늘에는 실망

설렘 보다 부담이 앞섰던 미국 대학 취재. 광활한 미국 땅에서 6박8일의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보니 6박8일이지만 한달도 넘게 미국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 부담감은 날려버리고 설렘만 갖고 미국 땅을 밟았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설렘과 부담 함께 안고!



첫 날부터 쉽지는 않았다. 공항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숙소에 가기까지는 400분이 넘게 걸렸다. 뉴욕 JKF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통역사가 아틀란타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비행기가 몇 차례나 지연되는 바람에, 그 친구를 기다리는 데 300분, 그 친구를 만나 택시를 잡고 숙소까지 가는 데 100분! 순조롭지 않은 첫걸음이었다.

20분을 넘게 기다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인도인처럼 보이는 택시기사는 몇 번이나 길을 잘 못 들어 3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정도를 돌아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줬다. 더 충격적인 것은 택시비 150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50불이면 한국에서 15만원에 달하는 돈이다. 15만원이면 3사람이 KTX를 타고 서울을 왕복할 수도 있는 비용인데!

어찌됐든, 긴긴 기다림과 충격 끝에 새벽 1시가 다 돼 숙소에 도착. 시차 적응이 안 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미국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이렇듯 우리의 미국 취재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겹게, ‘미국에 괜히 왔다’싶을 정도로 후회스럽게 시작됐다. 하지만 후회는 첫날 뿐! 미국은 내게, 결코 좋은 나라도, 나쁜 나라도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한 가지 배움을 줬으니까. 각각의 상황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배울 점과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을 골라왔다. 지난 7월 13일부터 21까지 짧은 시간동안 미국에서의 취재를 통해 느낀 몇 가지 것들을 짧게 적어 보았다.



나에게 맞는 대학을 ‘골라 간다!’

Wesleyan University, Amherst College, Middlebury College 취재를 통해 느낀 공통적인 것은 미국 학생과 학부모 모두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 성적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것들을 갖춰야 들어갈 수 있는가’하는 것 보다는 ‘이 학교가 내 아이에게,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입시 지옥인 한국에 사는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대학에는 Campus tour와 Information Session이 하루에도 두 차례 이상씩 열린다. 한국의 대학들처럼 수능이 끝난, 시간이 ‘남아도는’ 학생들을 억지로 끌어와 기념품을 주고 급식까지 먹여주면서 하는, ‘입시설명회’식의 Campus tour와 Information Session이 아니다. 그날그날, 예약 하지 않고도 시간 맞춰 학교에 찾아가면 그 학교의 학생이 직접 나와 함께 Campus tour를 하고, Information Session에는 그 학교의 입학처장과 같은 사람과 그 학교 학생이 함께 나와 대화를 나누고 Information Session에 참가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 된다.

이 때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몇 학점까지 들을 수 있는가’, ‘전공 선택은 몇 학년 때 하면 되는가’ 등의 구체적인 학사 일정에 관한 것들이나 실제로 ‘내가 그 대학에 가서 어떤 것들을 배울 수 있는가’하는 것들이었다. 보통의 Campus tour와 Information Session은 15명에서 20명 정도의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다녔는데, 적은 숫자라서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진행됐다.

항상 ‘이 대학에 들어가려면 내 내신성적이 몇 퍼센트 안에 들어야 할까’ 또는 ‘수능 점수가 몇 점이나 되어야 할까’를 마음 졸이며 듣는 입시설명회식의 한국의 대학들에 길들여진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부러운 점이었다. 한국은 어쩔 수 없는 ‘학벌사회’이기 때문이겠지. 학벌사회에서 벗어나고, 이런 방식을 택할 때 학생, 학부모, 대학 모두가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아, 푸르다! 푸르름과 함께 정리된 캠퍼스


Middlebury College 캠퍼스


‘미국 대학 캠퍼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 아닐까.

나는 영어 교과서에나 나온듯한 그림 같은 풍경들을 미국 대학들에서 수도 없이 봤다. 조금은 뜨거운 햇살이 ‘쨍쨍’해도 개의치 않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 책을 읽거나 이야기하는 모습이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자유’의 상징 같았다. 물론 미국은 땅이 넓어서 잔디밭을 끝없이 깔아도 남을 정도라서 그렇게 했을 테다. 땅이 좁은 한국의 여건상 잔디밭을 넓게 까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래서 넓은 잔디밭 보다 더 부러운 것은 대학의 ‘공간 활용’이었다. 학생 수가 3천명이 채 안되는 대학이었지만 우리 보다 더 넓은 캠퍼스에, 공간 활용도 잘 하고 있었다. 단과대학 별로 건물이 있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모임을 위한 공간도 따로 있었고 학교 안에 박물관, 미술관, 음악관, 영화관 등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많았다. 또 미국의 대학답게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것도 부러운 점이었다.

지금 전남대는 어떤 공간은 남아돌아서 골치고, 또 어떤 공간은 부족해서 골치다.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미국의 대학들에 그 해법이 있었다. 무조건 건물을 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공간을 다용도로 사용하는 것, 그리고 해년마다 재배정 하는 것. 공간이 넓어야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때다.

어쨌든! 햇살 좋은 날, 나도 전남대 캠퍼스에 여유롭게 누워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팁문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붐비는 뉴욕의 센트럴 터미널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팁(Tip)문화를 가지고 있다. 정해진 가격 외에, 손님에게 서비스를 해준 종업원들에게 일정의 서비스요금인 팁을 주는 것이다.

나도 그곳에서 셋이서 20불짜리 밥을 먹고 팁으로 3불을 주고나오거나 택시를 타면 꼭 10%에서 15%를 더 내곤 했다. 안 낼 돈을 낸다는 생각보다는 당연히 줘야 할 돈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이 됐다.

팁은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아니다. 반 강제, 의무다. 또한 여기에, 일정 금액 이상을 주도록 되어있다. 정해진 가격의 10%에서 15% 이상을 줘야만 한다. 예를 들어, 100불짜리 밥을 먹었다면 서비스를 해 준 종업원에게 15불의 팁을 줘야 한다는 것.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서는 보편화 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주는 것이 더 어색하다. 이른바 유흥주점 외에서는 주는 법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팁문화가 발달돼야 서비스 수준도 올라가지 않을까. 또한 서비스 수준이 올라감과 함께 고용주, 고용인 모두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팁은 고용주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고용인에게 주는 돈이므로, 고용인은 더 열심히,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을 테고, 고용주는 따로 임금을 더 지불할 필요가 없으므로 좋을 테다. 물론 팁문화의 폐해도 있지만 좋은 점만 보자면 이렇다. ‘팁문화’가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Newyork에 가면 Newyorker가 된다!

뉴욕 타임스퀘어

삐까뻔쩍한 네온사인 뒤에 숨겨진 쓰레기더미들

뉴요커? 뉴욕에는 정해진 스타일이 없다. 뉴욕에 가면 모두 뉴요커가 된다.
‘뉴요커’는 저마다의 개성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도 뉴욕에 가서 뉴요커가 됐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민소매에, 가슴이 푹 파인 티셔츠를 입고 짧은 미니스커트나 바지를 입는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모두가 제각각이다.

폭탄머리를 한 여자를 보고 놀란 가슴, 힙합보이를 보고 가라앉혔다. 생각보다 정돈돼있지 않은 뉴욕에, 개성도 제각각인 사람들은 썩 잘 어울렸다. 그 곳엔 흑인, 백인, 나와 같은 황인종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각각의 전통, 개성들이 모여 ‘뉴요커’라는 말을 생기게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그 곳에선 아무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또 자유롭게! 나도 아마 뉴욕에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그 자유를 조금 더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남을 의식하지 않을 자유, 의식을 피하지 않아도 될 자유, 뉴욕의 거리를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자유, 뉴욕의 햇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유!

내게는 뉴욕에 대한 환상이 그리 커다랗게 자리 잡고 않아서인지, 실망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게 진짜 지옥철이구나’할 정도로 오래된, 저승으로 가는 열차 같았던 뉴욕 지하철. 차이나타운 뒷골목. 명품관 거리 맞은편에 몰려 앉아있던 히피족. 이 모두가 뉴욕이고, 여기 있는 모두가 뉴요커다!




뉴요커에서 한국인으로의 회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뉴요커가 되는 순간, 한국인임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뉴요커가 될 수 있었기 때문. ‘뉴요커’를 벗어버린 건 순전히 내 의지에 의해서였다. 뉴욕에 있어도 내가 원치 않으면 뉴요커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뉴요커’를 단정할 수 없고 ‘뉴요커임’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 곳에선.

내가 미국에서 배워 온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 전남대와 미국에 있는 대학과는 상황과 조건이 너무나 다르기에.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배울 수 있는 거니까. 뭐든 가져오려하고, 배워오려 하면 그 만큼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고 왔다.

어쨌든 다시 찾게 될(?) 뉴욕 안녕, 미국 안녕! 참, 뉴욕에 흘리고 온 내 흔적들에게도 안부를 전해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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