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에서 29일까지 4박5일간 광주캠퍼스 경영대학과 여수캠퍼스 문화사회과학대학의 주관으로 일본산업탐방을 다녀왔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던가. 경제대국 일본을 느껴보기 위해 짐을 꾸렸다.

   25일 아침 일본으로 출발하는 날 여수캠퍼스 문화사회과학대학과 인력양성사업단(DCAD)에서 온 학생들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로터리에서 집결했다. 각 학과 학생들이 모인 관계로 아직은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채 부산항으로 출발했다. 부산항의 날씨는 흐렸다. 부산항에 먼저 도착해 있던 광주캠퍼스 경영대학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루했던 입국수속을 마친 후 16,875톤의 크기를 자랑하는 부관훼리호에 올라탔다. 선내에는 숙박을 할 수 있도록 침구가 갖추어져 있었고 면세점, 식당, 노래방 등 여러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앞으로 일본 여행의 동반자가 될 조원들과 함께 친목을 다지면서 현해탄(玄海灘) 위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배는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해 있었다. 불친절했던 입국 수속 직원을 지나 난생 처음 일본 땅을 밟았다. 건물 밖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타고 첫 번째 탐방지인 도요타 자동차공장으로 향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답게 어셈블리 라인을 제외한 모든 공정이 자동화 되어 있었다.


▲ 도요타 공장 견학 기념 단체 사진


   성실한 직원들과 함께 도요타의 대표 모델 렉서스가 5시간이면 완성된다고 했다. 일할 맛 나는 쾌적한 작업 환경 또한 매력적이었다. 견학자들을 위한 2층 높이의 통로 덕분에 각 공정을 손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APU(아시아태평양대학) 으로 가기 위해 벳부로 이동했다. 산꼭대기에 위치하여 밑으로 내다보이는 태평양의 바람에 머리가 흩날렸다. 학생수의 절반이 외국인 학생으로서 다민족 글로벌 대학교였다.

   높은 취업률과 기업과의 산학 연계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구불구불한 구중산 산길 따라 온천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일본 전통 의상으로 기모노의 일종인 유카타를 입고 전통 음식과 온천을 체험했다. 사람들이 왜 ‘온천, 온천’ 하는지는 일본에 와서 온천을 해보면 알 것 같다.

   다음날 세계 최대의 칼데라 화산인 아소활화산으로 갔으나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유독가스 탓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음으로 일본의 유명 맥주 제조회사인 산토리 맥주공장을 방문하여 맥주의 제조공정 라인을 둘러보았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하듯이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물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공정을 마치고 난 뒤 나머지 부산물 및 폐기물들을 전부 재 자원화 한다는 설명에 기업들이 가져야 할 필수요건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음 방문지는 일본의 3대성 중의 하나인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쿠마모토성이었다. 성 주위에는 해자(垓子)라는 물길이 내어져 있어서 요새화 되어있었다. 입구에는 임진왜란의 선봉장이었다는 가토기요마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상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지라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묵직하게 세워져 있던 성 내부에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과거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조국에서 기대하는 나의 몫을 철저히 해내리라는 뜨거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저녁이 될 무렵 일본에서 규모가 있는 대형마트체인인 유메타운으로 시장조사를 갔다. 여행사에서 건네준 1500엔을 들고 아이쇼핑을 즐겼다. 우리나라 마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만큼 국내 마트와 매우 흡사하였다. 여행 일정의 변동으로 라멘과 우동의 명물 나가쓰 거리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마트 내에 있는 식사코너에서 일본 음식들을 맛보았다.

   이 날의 숙소는 후쿠오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시호크 호텔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같은 허름한 숙소에서 맛볼 수 있는 여행자로서의 로망은 접어둬야 했지만 고급 시설의 숙소를 이용 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렜다. 24층에서 후쿠오카 도심 한복판의 야경을 바라보며 일본에서의 2번째 밤이 깊어갔다.

▲ K-1 선수 세미슐트와 함께(가운데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세미슐트, 그 오른쪽이 기자)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1층에 있는 뷔폐 코너로 갔다. 우연의 일치로 그 곳에는 K-1을 쥐었다 놨다 하는 유명 k-1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지금 일본 유명 관광지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용기 내어 거구의 세미슐트에게 다가가 사진을 같이 찍자는 제의를 하고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추억 한 컷을 남긴 후 마지막 여행 일정지인 후쿠오카의 명물 캐널시티로 이동했다.

▲ 모두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식사를 하고 있다.

   캐널시티 지하 1층 지상 5층의 대규모 복합쇼핑플레이스이다. 1층 중앙에는 세계적인 비디오아트의 거장 故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본땅에서 한국인의 작품이 당당하게 걸려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 곳은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그런지 관광객을 위한 상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캐널시티 한 켠에 자리잡고 있던 서점에서는 한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배용준, 박용하, 안재욱 등 한류를 대표하는 스타들에 관한 잡지들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다.

   귀국하는 배의 탑승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모노세키 항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교수님과 함께 이 번 일본산업탐방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무사히 귀국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총체적 난국이라 칭하는데 큰 몫을 담당해주고 있는 일본. ‘가깝지만 먼나라’ 일본. 그네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어깨 너머로 바라보면서 실로 무서운 국민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흔히 일본인들을 두고 혼네(진정한 모습)와 다테마(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라 하여 겉으로는 좋아하는 듯 해도 실제 속내는 그와 다를 수 있다는, 겉과 속이 다른 민족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남을 의식하고 살면서 이러한 점이 결국 철저하고 깔끔한 생활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지나친 이중성으로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러한 국민성이 지금 세계 강대국 일본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일본의 중학교 사회과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독도 영유권 명기 사건을 보더라도 명기 결정의 불과 몇 일전 한일간 정상회담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이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서 독도의 영유권 표기는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일 지나지 않아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소식. 그들의 국민성을 간과한 외교 전략의 허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정부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강경책을 펼치고 있다. 이 번 사건을 과거에 이런 일이 발생 했을 때처럼 순간적 대응으로 끝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되고 확실한 선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 일본의 노림수는 한국 사회의 국론 분열과 양국간 분쟁으로 인한 긴장감의 고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성을 미루어 볼 때 일본이 충분히 전략적으로 이용 할 만한 점이다. 단순한 외교적 활동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친 치밀한 전략으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산업탐방을 통해 느낀 큰 소득은 일본인들의 사소한 생활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국민성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 하나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판가름 난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독도 사건도 정부의 대응에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이 난국의 극복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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