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연극 ‘버스를 기다리며’ 다르게 보기

▲ 연극 '버스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1  다양한 인간군상 속에 숨겨진 삶의 깊이

                                                                                                                                       서충섭 수습기자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나와 배우들은 같은 호흡을 한다. 그들이 들이마시고 뱉은 공기를 다시 내가 들이마신다. 배우들의 손에 이끌려 함께 무대로 나서기도 하고 배우들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땀줄기까지도 연극의 일부다.

   연극이 시작되자 객석 사이에서 나타난 배우 황민형씨는 더 이상 인간 황민형이 아닌 아직 어린 아들을 위해 다시 취업하고자 서울역을 방황하며 228번 버스만을 줄기차게 기다리는 ‘남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가족’이란 존재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석궁의 훼방도, 놀다 가라며 팔을 부여잡는 미소와 영자의 유혹도 뿌리치게 하는, 남일이라는 배를 위한 등대다. 비틀거리며 걸어나온 배우 오설균, 아니 ‘진짜’ 소주를 들이키며 걸죽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는 석궁은 사고로 더 이상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실업 가장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인물을 비출 때에도 무대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는 그는 그 순간만큼은 볼품없는 노숙자 석궁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설움을 가슴에 품고 구걸을 하는 동호, 교태젖은 매춘부와 깍듯한 스튜어디스라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소, 어떤 때는 한이 서린 늙은 작부로, 또 어떤 때는 능청맞게 중년 여성의 어리숙함을 보여주는 영자. 모두 조명빛 아래 새로운 사람들로 태어난다. 버스를 기다리며 그들이 느끼는 고독과 그리움, 사랑과 절망 그리고 희망으로 점철된 1시간 30분간의 짧고도 긴 인생을 끝으로 그들은 얼굴에 썼던 투명한 가면을 벗고 우리들 곁의 인간으로 돌아온다.

   조명이 바뀌자 무대 위의 인간군상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돌아오는 모습은 정녕 묘한 분위기를 낳는다. 이것이 연극의 매력일까. 고정된 영상만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인생들을 통해 나 자신의 인생 또한 살펴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들이 기다리던 버스는 어떤 의미였고 과연 버스는 도착했을까. 내 인생의 버스는 어디쯤 운행하고 있을까. 



                                            #2 시간여행을 떠나 버스를 세워보세요

                                                                                                                                        김봉민 수습기자

   6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열리는 광주 소극장 연극축제의 현장을 다녀왔다. 7월 1일 현재 남은 공연은 ‘버스를 기다리며’란 공연 하나뿐이다. 그 공연을 보기위해 전남대 사거리에 위치한 ‘시디 아트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1층의 작은 공간, 계단식 좌석에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앉은뱅이 등받이 의자, 단상이 없는 허름한 무대에서 연극공연을 한다.

   불이 꺼지고 관객석에서 한 남자(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상경한 ‘남일’)가 가방에 품에 안은 채 허둥지둥하고 스피커에선 용산 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괴음소리와 함께 연극은 시작된다. 노숙자가 등장하고 관객과 소통하기위해 관객에게 술을 건네고 진짜 술임에 놀라는 관객에게 비꼬는 한마디를 던진다. 매춘부 여성이 등장하고 내 뒤에 숨는다. 난 순간 변태가 되고 관객들은 소통하려는 배우들에게 마음을 열고 즐기기 시작한다.

   228번 버스를 기다리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는 이 연극에선 짧지만 굵게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자아를 찾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숙자 ‘석궁’, 서로 짜고 매춘영업을 하는 ‘영자’와 ‘미소’, 엄마에게 버림받아 앵벌이를 하는 ‘동호’, 이들은 IMF 폭풍의 피해자들이다.

   시작은 2008년의 용산 역이었으나 이들이 2000년 2월의 마지막 날을 산다. 아리송한 말을 하고 떠나는 ‘석궁’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의 죽음으로 시간은 갑자기 4년이 흘러버린 2004년의 2월이다. 그리곤 잠시 후 무대엔 커튼이 내려온다. 2008년 4월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 시작된 연극은 어느 순간 2000년 2월로 다시 2004년 2월로 시간여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버스 정류장 앞을 그냥 지나쳐 가는 버스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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