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내 생에 이런 날이 안 올 줄 알았다. 또, 오지 않았으면 했다. 어느새 나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고, 나는 금남로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촛불이다.

   나는 1백만 개 촛불 중 일개 촛불에 불과하다. 뜨겁다. 자꾸만 흘러내린다. 내 몸을 태워서라도 이 나라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 붉게, 더 뜨겁게 달아오르자. 영차영차!

   나를 들고 있는 이 사람, 평범한 여대생이다. 지금 대통령을 뽑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 손에 뜨거운 내 살이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행진한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등록금을 해결하기 힘든 이 여학생은 비교적 사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 관심만큼 분노도 깊어 보인다. 무분별한 신자유주의를 경계하고 무한경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취업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단다. 자유롭게. 내일 모레 있을 시험도 제쳐두고 거리로 나온 이 여학생. 친근하다.

   나와 같은 촛불을 든 사람들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회사원, 외국인……. 오늘처럼 영광스러운 날이 있을까. 나를 그저 정전 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데 쓴다는 게 너무나 고맙고 영광스럽다. 나는 오늘 밤이면 다 타들어가겠지만 내 살들은 진실에 붙어있을 테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다. 해질 무렵이 되면 나를 들고 거리로 나오더라도 다시 내일의 해가 뜨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면 한다. 꼭 나를 드는 것만이 이명박인지, 2MB인지 하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나를 들었던 여대생은 학생 기자다. 내 주인은 수많은 촛불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면 학생 기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촛불의 주인인 소리꾼은 소리로써 소통하면 되고, 교수님은 학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으로써 소통하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나는 더 빛이 난다. 밤엔 나를 열심히 들다가도 내일 아침이 되면 픽 쓰러지고,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에 합류한다면 나를 우롱하는 거다. 부디 나의 눈물이 내일 아침에도,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의미 있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촛불을 든 수많은 촛불의 주인들에게 붉은 심장 비슷한 색을 내어 타오를 것을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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