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극장-10시 50분 본방>

  내가 망가진 상점, 토막 되어 누운 그늘, 기억이 흐리다 무병을 앓는 이가 나를 부른다 미안 뭉개진 귀, 짓눌린 혀, 부러진 이가 전하는 말은 언제나 아리송했을거야
  10시 50분쯤에 만나자고 말했는데, 그는 너무 성급해!
  부서진 뼈가 자음도 모음도 없이, 태초의 언어, 아니 울음, 혹은 당치않은 질겅거림으로 신음으로 어딘가, 우주 그늘에 개켜져 있어
  10시 52분, 늦었군!
  지지부진한 비유나 은유보다 강렬한 건 외침, 혹은 비명이었으므로 내가 그년 놈들에게 일러주는 건 언제나 앓는 소리다. 스산한 바람이 이는 날의 그럴싸한 나날에 나를 만나는 건 즐겁지 않은 일이지, 그래 좀 더 즐거운 날에 즐거운 방식으로.
  11시 이제 한창!

  가족이 모여 앉은 한낮의 놀이공원에서 내지르는 비명, 그것들은 모두 환호와 뒤섞여 어지럽다 비명 아닌 비명과 이명들 무병환자로부터 질겅질겅 새어 나온다 아직 나는 망가져 있고, 이 사이론 쉼 없이 단물만 질질 흘러나오는데 미스터리 극장, 나를 구원해
  10시 50분 안에 나를 구원해 이 정신 나간 무당들아


<미스터리 극장-때때로 재방송>


나는 더 뭉개졌다
빨갛게 달게 으스러진 수박 위로 파리들 점점 박힌다
씨앗은 점점 흩어져 구역질을 해대고, 나는 달게 끈적
였다 먹다 뱉은 오이가 손가락 밑에서 허튼 숨을
쉬다 만다 섹섹, 세엑세엑, 당신의 숨 아래 뭉크러지고
자빠진 빨간 수박 노란 오이

묻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돌,진, 하던 당신만의 밤
스으, 스으으으,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네 네 개의 검은
눈이
점점 흩어져 명멸하는 중.

나는 불쌍한 사람이야, 당신이 말했지. 아아, 제발 그 말만은!

당신은 더 이상 나를 더듬지 않고, 혀로 내 구석을 탐하지도 않는다
이빨 따윈 이제 쓸 생각도 없다
때때로 당신이 명멸하든 말든
나는 뭉개졌고 녹고 있어
점점, 반짝이는 점들이 당신의 불우한 낯으로
가고 있을까 당신 여기 잠들어 있을까
가장 치사한 탐미가 탐식자 호사가 미식가, 이 꽃처럼 붉은 개새끼야
극장 앞에 뭉개진 수박 좀 치워


<미스터리 극장-묻지마 예고>

종종 황홀은 말합니다
잠깐만 여길 보세요
곧 자정으로 향하는 유예시간입니다
방 안의 공기가 팽팽 부풀어 올라요
그저 살짝 건드렸는데 눈알을 부라리던 낯선 여자의 뒤통수처럼
죽은 듯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검은 봉지들이
바스락거리며 침을 삼키고 뒹굴, 그리고 들썩.
이렇게 골목을 지나가는 거에요
자자, 모든 건 절정으로 아라리 골목을
넘어갑니다 미스터리 극장의
비명은 뭉툭하죠 수건을 감은 퉁퉁한 홍두깨로
가리가리한 목덜미를 두드리는 소리
퍽, 황홀할 걸요
생의 가장 질척이는 부분은 선홍색 백일홍 무늬에요
고와라 골목마다 점점이 피어나겠군요
그러니 다시 한 번, 한 번 더 나른하게 뭉개진 머리를 눕히세요
누워서 그래서 다시, 내 손을 보세요 묻지 말고요 그래요

푸른 조명이 끝을 알릴 거에요 백일홍도 백일이 지나면 지지요
찢어진 무릎은 검은 봉지에 담으세요 골목으로 나와요
분리수거 할 시간입니다

낄낄 나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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