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삭(繫索)

프롤로그.

  빨간 국물 속에 하얀 무, 미더덕 그리고 동태 따위가 둥둥 떠 있다. 귓속에서는 언젠가 아버지가 저를 향해 썩은 동태 눈깔 같다 했던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동태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국물만 겨우 떠먹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숟가락을 집어던지며 버럭 화를 낸다.
  “먹어도 안 죽으니까 다 쳐 먹어!”
  움찔 놀란 아이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꾸역꾸역 동태를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넘어가지 않고 입안에서 뱅글뱅글 돌아다니는 그것을, 물을 마셔가며 겨우 삼켰다. 또 한 조각 먹으려는데,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가 버렸다. ‘우웩, 우우엑.’, 방금 겨우 삼켰던 동태가 도로 넘어오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밀어내고,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저, 토했어요.”
  밥상 앞에서 더러운 이야기 한다고 맞을까 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러나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정하게 대꾸했을 뿐이다.
  “물 뿌려서 치우지 뭐하냐!”
  “네가 너무 많이 쳐 먹어서 그래!”
  아이는 이제 동태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덜그럭대며 시끄럽게 굴어대던 그것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자물쇠를 부숴버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혀끝까지 치밀어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끝내 그것을 내뱉지 못하고 잠자코 부엌으로 나갔을 뿐이었다. ‘네가 너무 많이 쳐 먹어서 그래!’ 무심한 그 목소리에 눈물만 자꾸 나왔다. 자신의 생모에게로 가면 차라리 나을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눈물을 훔친다.
  “그래도 여기보다 나은 곳은 없을 거야, 그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바가지 한 가득 물을 퍼 담는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여기보다 못한 곳은 없을 거야. 그렇게 바꾸고 싶은 마음에 도리질을 치며, 찬물을 끼얹는다.

1.

  울음소리에 귀가 아파왔다. 눈앞의 아이가 자지러질듯이 울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그 아이의 종아리는 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그 종아리 위로, 제 멍든 종아리가 겹쳐지는 것만 같다. 사이렌처럼 울려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잘못했어요. 엉엉엉. 다신 안 그럴게요, 언니.”
  “너 그렇게 약속하고도 또 그랬잖아. 근데 안 그런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차갑게 내뱉는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이젠 정말 안 그럴게요, 언니. 진짜로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헛된 맹세에 절대 속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아이를 마주하면서 똑같은 내용의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아이는 벌써 몇 번째나 그렇게 말해놓고 또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지금 당장의 매를 피하기 위한 거짓 맹세. 아이는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배가 아프다느니, 머리가 아프다느니 거짓말을 해댈 것이다. 이미 아이나 저나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니 이제 자신이 내뱉을 말도 알고 있으리라.
  “난 너 때리는 거 재미있어. 그러니까 네가 남의 물건 훔치면 난 좋아. 그러면 너 또 때릴 수 있잖아? 어디 한 번 또 훔쳐봐.”
  아이를 상대로 잔인한 협박을 지껄인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써 먹은 수법.
  왜, 왜 그러는 것일까. 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자신에게는 희망이자 탈출구가 된 이 시설이, 제 눈 앞의 아이에게는 감옥이 되고 있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포기해버린 아버지의 손에서 풀려나 이 보육시설로 들어올 때, 얽어진 마음에 다시 꽃 핀 것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되레 자신이 아이에게 준 것은 밧줄이었을까. 밧줄이 되어 아이를 옭아매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아이는 왜 이다지도 아버지의 밧줄에 매어있던 자신과 닮아 있는가.

2.

  “저 아이가 외로움을 많이 타.”
  아버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조근 조근 새어머니를 향해 말한다. 그걸 문 밖에서 듣고 있는 그녀 자신은 들으면서도 믿으려 들지를 않는다.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이 텔레파시라도 보낸 것처럼 훤히 다 들려온다. 아버지가 저렇게 말하기도 하던가. 아니면 그 목소리가 새어머니를 향한 것이기에 저런 것인가.
  “누가 옆에 있어야 잠도 자고, 사람에게 안기는 것 좋아하고, 못 안기면 팔짱이라도 껴야 하는 아이라.”
  그제야 잔뜩 굳어진 채 서 있던 자신의 어깨가 긴장을 놓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부정해본다.
  ‘아니다, 아버지의 말은 틀렸다. 아버지의 말은 다 틀렸다. 이제 나는 누가 옆에 없어도 잘 자고, 팔짱 끼기는커녕 누군가가 팔짱 껴 오는 것조차 싫어한다. 그러니 안기는 것 따위 좋아할 리도 없다. 아버지의 말은, 모두 다 틀렸다…. 당신의 말은… 조금도 맞지 않아.’
  그리 중얼거리는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가엾게 여겨 손을 뻗으려다가 가만 멈춘다.
  “그러니 다정하게 안아주고, 따스하게 손 잡아주고.”
  거기까지 듣고 자신은 귀를 닫는다. 이제 그녀의 발아래 서 있는 자신은 멍청하니 서서 딴 생각에 잠기려 애를 쓴다. 그녀가 즐겨 흥얼거리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불러본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고 마는 잡념. 벌써 이렇게나 자라, 이렇게나 변해 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그 어린 때 그대로인줄 아는지…. 아직도 아버지 품을 좋아하고, 아버지가 없을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그대로인줄 아는지…. 이제 더 이상은 아버지 품을 좋아하지 않는, 오히려 두려워하는 자신을 모르는지….
  “누가 옆에 있어야 자고, 사람에게 안기는 것 좋아하고, 못 안기면 팔짱이라도 껴야 하는 아이라. 그러니 다정하게 안아주고, 따스하게 손 잡아주고.”
  아버지는 그런 다정한 목소리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지고 있었다면 제게 그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을 리 없다.
  “아버지는 그런 목소리 내지를 못해. 아버지는 그런 말을 몰라. 아버지는….”
  수차례 정신을 놓고 되뇌더니, 방문 앞에서 서서히 돌아선다. 눈물로 울렁이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제 망상이었다는 것을.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왜 깨어나지를 못해!”
  다그치듯 소리치지만, 저 아래 까만 눈을 하고 있는 자신은 듣지 못한다.
  “자꾸 왜 그렇게 바보처럼 굴어?”
  아무리 그래도 제 넋두리 따위, 알아듣지를 못한다.

  이제 자신은 목을 큼큼 가다듬어 아무렇지 않은 듯,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삼킨다. 자꾸 삼키고 또 삼켜본다. 목이 따끔거려왔다. 자신이 이제 제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틀어진 것은 아주 오래 전이었고,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충분히 면역이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자꾸 괜찮다 되뇐다. 그러나 아직 괜찮지 않은 그 마음이 온 밤을 시끄럽게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잠드는 그 순간까지, 단 한 가지만을 주문처럼 외고 또 외웠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절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런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또 울었던가. 이건 꿈일 뿐이야. 그런 소원 따위 아무도 이뤄주지 않아. 겨우 잠든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그렇게 제 자신을 채근했던가. 그 훤히 보이는 꿈을 보며, 그녀는 이제 이런 꿈은 싫다고 진저리를 쳤다. 자각몽(自覺夢)은 그 어떤 꿈보다도 더 비참했다. 이것이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건, 너무나도 괴로웠다. 꿈속에서조차 꿈을 꾸어야하는 자신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3.

  ‘끔찍했다.’, 로 끝나는 그 형편없는 것을 마치 내다 버리듯이 보내버렸다.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그것은 시간에 쫓겨 마지못해 내 손을 떠났다. 우체국에 찾아가 그 좁고 길쭉한 주둥이로 봉투를 집어넣을 때는 마치 그것이 쓰레기통이라도 되는 듯 느껴졌다. 물론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만큼은 다행히도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읽기 싫다고 몸부림 쳤을지도 모를 그 심사위원들에게 나는 억지를 써서 꾸역꾸역 부쳐 보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우체통의 주둥이에 밀어 넣었던 그 순간부터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어떤 것을 향한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침대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이불 속에서 뜨겁고 메마른 호흡만 뱉어낼 뿐이었다. 숨이 찼다. 건조함에 목은 따끔거렸다. 그러나 그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올 수 없었다. 가운데 손가락 한편, 조그맣고 단단하게 박힌 굳은살들이 아려왔다. 그 인(印)과 같은 살덩어리를 칼로 도려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마저도…. 내 팔다리는 힘을 잃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 거렸다.
  나는 당신과의 이야기로 몇 편의 소설을 썼다. 닮지 않은 척 꾸며대지만, 닮아있는 그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너무 진부하다고 했다.
  “너무 흔한 이야기야. 이런 건 이제 소설거리가 못 돼.”
  또 어떤 사람은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어 있고 작위적이라고도 했다.
  “어떻게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비극일 수가 있냐? 어떻게 그렇게 절망으로만 점철(點綴)될 수가 있어?”
  내게 따져 묻기도 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에는 굴곡이 있다, 한 마디로 그런 말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진흙투성이 웅덩이 속에만 가라앉아 있느냐. 거기서 기어 나와서, 더러는 오르막길도 오르게 되고, 더러는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며 탄탄한 평지를 걷기도 하고, 그리고…. 그리고 덧붙여지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지만, 이렇게 사실성이 떨어져서야 되겠느냐는 말이었다.
  왜 그들은 나의 삶에게 진부하다고 이야기하는가. 왜 작위적이라 하는가. 그것은 나의 탓이 아니다. 내가 진부하게 살고 싶어서, 내가 작위적으로 살고자 해서 그리 되었는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들은 내 삶이 아니라 그저 소설에 대해 그리 얘기했을 뿐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자격지심을 떨쳐냈다.
  그리고 이제 지긋지긋한 후회가, 내 심장 어느 부근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에누리가 없었다. 벌레는 여실히 제 몸을 드러내놓고 제 먹을 만큼의 양을 갉아내어 내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벌레를 끄집어낼 재간이 없었다. 배가 고프면 어김없이 가느다란 다리 여럿을 달고, 느릿느릿 얌통머리 없이 내 심장 위를 걸어 다닐 그것들을 증오했다. 어쩌면 그것들은 저희들이 가진 양심의 크기만큼이나 무게감도 없을까. 살뜰히 발라가며 내 심장을 갉아먹을 후회의 벌레들에게 혐오의 찬사를!
  그러나 이제와 후회해서 어찌할까. 이미 그들은 활자화된 내 삶을 읽었고, 그것이 작위적이라 내게 타박했다. 그래, 내 인생은 작위적이다. 아, 그 한마디로 압축되고야 마는 그 웃기지도 않은 비극. 그것이 내 자리였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의 자리. 오로지 사실 뿐이었으나, 온전히 거짓이 되고 마는 나는 산 증인이면서 죽은 위증이었다. 위증하지 않겠다고 수십 번을 거듭 맹세하고 선서문을 읊어도, 사람들은 나의 증언에 매번 저것은 위증입니다! 명명백백한 증거를 들이밀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었다. 그 날조된, 그러나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래요. 위증일지도 모릅니다. 대신 살려만 주십시오.’, 라고 빌면서 비굴한 무릎을 꿇을 수밖에.

  그래요. 작위적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그런 게 아니지요. 아니고말고요.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여부야 있겠습니까요.

  그러나 나는 당신과의 이야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당신에 대한 감정을 조금도 정리하지 못했다. 당신은 나의 이야기 속에서 잔혹하게 학대 당해야만 한다.

4.

  가끔 문신처럼 단단히 뿌리박고 서 있는 중지의 굳은살들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은 적이 있었다. 이제 나는 굳은살이 아릴만큼의 긴 글은, 필기구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의 나는 원고지에 글을 쓸 때는 또박또박 경필로 써야 한다는 선생님의 엄명에 꾹꾹 힘을 주어 글자를 새겼다. 한 장을 쓰고 그 뒷장을 넘겨보면, 오돌토돌 남겨진 연필 자국. 선명하게 새겨진 그 자국에 손가락을 가져가 울뚝불뚝한 촉감을 느껴보곤 했다. 그 원고지는 이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대신 새겨진 것은 중지의 굳은살뿐이다.
그것은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을 담고 있다는 손금의 존재만큼이나 우스꽝스럽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것들을 어디에 써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잊고 있을 적마다 발악이라도 하듯 아려왔던 굳은 살. 그 때마다 굳은 살보다는 손금에 박힌 기구한 내 운명이 가여워 긴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쓸모없는 만큼, 꼭 그만큼 나에게 깊숙이 박혀있었던. 그것은 꼭 젓가락이나 송곳을 뜨겁게 달궈 새겨 놓은 것 마냥 아주 짙고 굵은 낙인이 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매번 각각 손에 펜조차 쥘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의 곤란을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칼을 들이밀어 굳은살을 긁어내고 깎아냈지만, 여전히 그 위용은 그대로였다. 그 손금이 지겨워 다른 운명을 개척한답시고, 더 길고, 더 굵게 칼등으로 긁어댔지만 남는 건 상처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더 짙어지는 손금의 고랑은 그대로 쇠고랑이 되어 내 운명을 잡아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발목을 낚아채는 쇠고랑이 아니라, 목을 잡아채는 밧줄이었나. 그래서 토하던 울음도 켁켁대고 쑥 들어가 버렸던가. 거울에는 오로지 호흡조차 버거워 시뻘게진 얼굴뿐이다. 손금, 그것은 언제든지 나의 생과 사를 자재(自在)할 수 있는 심판대였다. 그래서 나는 손금을 쳐다볼 때마다 늘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의 목숨은 매번, 아버지의 손에 달려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질기고 질긴 밧줄이 있었다. 나의 엄마. 그 징글징글한 존재 덕에 아버지는 꼭 웃는 것처럼 울고, 우는 것처럼 웃었다. 아버지를 죽음과 같은 절망에 빠뜨리고서 그리고 또 죽음보다 더한 증오로 살게 한 그녀. 그녀는 야속하게도 구원의 밧줄도 아니었고, 죽음의 밧줄도 되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도저도 아닌 밧줄의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 밧줄을 나에게로 옮겨왔다. 그것은 아버지가 또 다른 연인을 맞이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밧줄은 놀랍게도 그 전염성이 높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손에 졸려 논바닥에 패대기쳐지던 나는, 차라리 그의 손에 졸려 죽기를 바랐다. 지긋지긋한 밧줄의 속박은, 나에게도 버티기 어려운 것이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나를 낭떠러지에서 떠밀었을 때, 나를 살아남게 해 줄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밧줄은 내 손을 매어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목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조금의 틈도 없이 조악(粗惡)하게 내 목을 틀어 맸다. 그 밧줄은 조금씩 더 힘을 주어 나를 그 낭떠러지에서 끌어 올렸지만, 그것은 살아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고 죽어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밧줄은 잔인하고 혹박(酷薄)해서 내 숨통을 쥐고 흔들었지만, 그러나 밧줄은 또 그만큼 나약하고 섬약(纖弱)해서 나를 차마 죽이지 못했다.
  엄마에게도 아버지가 밧줄이었을까. 그래서 엄마는 밧줄을 칼로 끊어내고 달아났을까. 그러나 나에게는 칼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밧줄이 저절로 삭아 나를 어서 떨어뜨려 주기를 바랐다. 아니면 아버지의 밧줄이 확실히 더 졸려주기를….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영락없는 밧줄이었다. 내 목을 쥐고 흔들어대는 그의 악력(握力)에 자꾸 멀미가 나서 틈만 나면 토사물을 확인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거울을 보라고 가르쳤다. ‘그럼 아버지는 나에게서 그녀를 보는 건가요.’ 입 끝에 맴도는 물음들은 끝내 삼켜버렸다. ‘나를 향한 증오는, 정녕 나를 향한 것인가요. 아니면 그녀를 향한 것인가요.’ 이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아버지는, 그렇다고 애정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 것도 줄 게 없어진 아버지는 불편했다. 같은 방 안에 있어도, 우리는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차라리 때리고 맞는 게 더 다정할까.

5. 

  “여긴 내 집이니까, 너는 네 집으로 가라.”  
  가끔 아버지는 감당할 수 없는 농을 건넸다. 그것이 농인 줄 잘 알면서도, 뭐라 대꾸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매번 아버지의 농이 진담인 것만 같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달아날 때마다 붙잡혀 왔으니 진심은 결코 아니리라. 차라리 진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은 그 말을 듣고 주춤주춤 눈치를 보며 마루까지 나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찌 하나 가만히 볼 뿐이었다. ‘오냐, 무엇이든 해 봐라. 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거다.’ 아버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루에 선 채 벌벌 떨기만 했었다.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크디큰 형벌이었다.
  나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텅 빈 눈동자를 하고 앉아 있었다. 아무 것도 제대로 쳐다보고 있지 않은 눈동자를, 아버지는 또 병신 같다느니 썩은 동태 눈깔 같다고 했다. 방에 틀어박혀 아버지가 부를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이름을 부르면 자다가도 번쩍 눈을 떴다. 하루하루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한폭탄은 너무 자주 터졌다. 아버지는 잘못을 저지르길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급식비를 냈다. 그걸 알게 된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학교에 갔다. 가끔 이유 없이 또 아버지의 돈을 훔쳤다. 몇 번이 거듭되자, 새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에게 그 일로 상담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교에서 돈이 없어지자, 그것은 온전히 내가 한 짓이 되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증거도 없고, 나에게는 가진 돈도 없었는데 선생님은 다 알고 있다고 어서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 최후의 보루를 잃었다. 그 얄팍한 애정의 두께를 실감한 나는 보육시설을 들어서면서 말갛게 웃었었다. 이제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6.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거듭 맹세하는 아이를 돌려보낸 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채 청산하지 못하고 빚으로 남아있었던, 그렇게 아주 깊은 곳에 침잠해있던 그 앙금들이 슬금슬금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악몽을 꾸었다. 그 어느 날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저를 발가벗겨 기둥에 묶어두고 제 몸을 촛불로 지져댔다. 다시 정신없이 화면이 바뀌어, 그 어느 날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제 목을 조르며 제발 그냥 죽어달라고 말했다. 또 다시 어느 샌가 화면이 바뀌어, 아버지는 또 그럴 거냐고 다그쳤다. 파르르 떨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지만, 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며 다시 매질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는 너를 때리는 게 즐겁다.’, 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표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죄책감을 느꼈는지, 희열을 느꼈는지 아니면 그냥 아무 감정 없었던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진저리를 치며 눈을 떴다.
  알고 있었다. 늘 그랬듯 달아나고 싶었다. 그 기억을 피해, 그 기억을 준 그를 피해, 그를 그렇게 만든 곳을 피해. 아주 멀리, 더욱 더 멀리. 제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까지,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그가 찾아올 수 없는 곳까지. 그러나 달아날 자신이 없었다. 또 다시 붙잡혀 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제 날갯죽지에 날개가 솟아 저절로 떠오르기를 바랐다. 날 수 없는 아버지는 저를 잡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솟아올라 영원히 내려오지 않기를.

  사흘 밤을 뒤척이다가 결국 책상 앞에 앉는다. 편지를 쓴다. 마음속에 담긴 그 악랄하고 끈질긴 것들을, 티끌 하나도 없이 모두 다 긁어모아서 쓸 수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 오늘 당신의 둘도 없는 딸로써 편지를 드립니다. 그동안 차마 하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들. 그것들을 비로소 당신께 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 당신을 향한 치졸한 분(忿)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잠시 멈추어 본다. 다시 시끄럽게 다글거리며 들끓기 시작하는 그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그랬다. 그를 향한 감정은 원망이고 분이었다. 그리고 점점 쌓여만 가는 그 흉악한 감정들을 더 이상 마음에 그대로 담아둘 자신이 없었다. 그 원망으로 해어질 마음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또 꿈을 꿨다. 끝없이 잇달아 있는 길고 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저를 따스하게 품어주고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오래도록 안아 주마’, 수 십 번 저를 향해 다짐해 주었다.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 나를 겁내지 마라. 언제나 네 곁에 있단다.’, 따스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또 해 달라고 수 백 번을 재촉하면, 수 백 번이고 수 천 번이고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여주었다.

7.

  새벽 2시. 몇 번인가 망설이던 끝에 조심스럽게 펜을 내려놓았다. 8쪽짜리 편지 한 통을 마무리 짓기 위해, 장장 30쪽을 썼다가 버렸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또 몇 번인가 소리 내어 읽어보다가 서글픈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 울음소리를 누가 들을까 제 입을 틀어막으며 겨우겨우 글자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눈물에 원망들이 방울져, 갈 곳을 모르고 그대로 편지지 위로 흘렀다. 그러나 감정은 걸러지지 않고 더 깊어만 진다.
  그 해 가을, 그 아버지의 아이는 차마 그 깊고 짙은 것들을 떨치지 못해 새벽이 하얗게 새도록 슬피 울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잠을 이뤘을까, 못 이뤘을까. 아이가 아버지 모르게 울고 있다는 것을 그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을까.
  그 날 이른 아침, 다섯 시인지 여섯 시인지 모를 그 무렵에 아마도 마지막일 꿈을 꾸었다. 결국 제 손으로 그 편지를 부쳐, 아버지가 읽게 되는 꿈을. 아버지는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아버지가 늘 앉아있던 큰방 아랫목에는 제가 쓴 편지 한 통만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웃었던가, 말았던가. 원망을 덜었던가, 아니면 죄책감을 더했던가. 꿈에서 깨어나 한참을 앉아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로부터 원망을 받게 될까 두려워졌다. 그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다. 속이 뒤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꾸 지난밤에 지껄인 저의 잔인한 협박이 메아리쳐왔다.

  이제 나는 진부한 나의 삶 대신, 무엇을 써야 하는가. 그 답도 알 수가 없는데, 자꾸 머릿속에는 혼란만 쌓여갔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손바닥에 새겨진 밧줄을 보며, 다시 한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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