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도서관의 어느 날 
        
  어릴 적부터 책과 담을 쌓았던 내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지 어느덧 2개월이 흘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도서관이 나의 파트타임 근무지이다. 책의 옆구리에 붙은 책의 주소인 코드를 보고 건물 밖 세상을 여행하고 온 책들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간혹 새 책에 주소를 배당해 놓은 코드를 옆구리에 살포시 붙여주는 임무가 주어지기도 한다. 인문계열 3층에 소유되지 않은 책들이 사이에 끼어 잘못 올라온 줄도 모르고 한 권의 책을 들고 한 층을 헤매는 시행착오를 겪고 0~600, 900번까지의 주소지를 익히는데 약3주가 걸렸다. 책 위치를 찾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자 어느 날부터 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책들의 세상에도 잘나가는 부류와 만지작거려졌다 제자리에 꽂히는 부류, 지문 흔적도 없이 먼지로 포장된 채 자리를 지키는 부류가 있다. 못나가서 서러운 아이들은 바깥세상에 다녀온 소위 잘나간다는 아이들 여기저기의 상처를 보고 다행이라며 합리화하는데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부류의 책과 함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도서관 방문자들은 책과 함께 나의 관심대상이 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사람의 부류를 크게 나누자면 장기체류자와 단기체류자로 볼 수 있다. 단기체류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필요한 책만 찾아 냉큼 떠나는 자들이다. 장기체류자들 중에서도 유형이 나누어진다. 책꽂이 한 칸 만큼의 책을 주위로 쌓아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한 후 깊은 단잠에 빠지는 잠자는 도서관의 공주(왕자)형, 이들을 깨우는 것은 멋진 백마탄 왕자님인가? 아니면 공주님인가? 당연히 아니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뱃속 알람시계가 이들을 벌떡 일어나게 한다. 주섬주섬 밥과 물물교환용으로 쓰일 돈을 챙겨 부스스한 모습으로 도서관을 나서는 모습은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또 마치 드라마에서나 본 듯 장면을 연출하는 이들이 있으니, 나는 이들을 낭만주의 형이라고 정의한다. 햇살이 드는 책꽂이에 기대어 알아먹을지 의문스러운 책을 들고서 맘껏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은 보고 있는 나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와 책상이 바로 옆에 있는데 다리 저림을 참고 왜 저렇게 서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나가곤 한다.
  교과서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도서관 체류자의 유형은 요즘 말로 열공형, 열심히 공부하는 유형이다. 책 정리에 집중하는 척하며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열공형은 매력 없는 대상이다. 열공형의 대부분은 일명 돌돌이 뿔테안경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한 아저씨들이기에 한창때인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서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에 책꽂이 사이로 보이는 모습에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그런 훈남(보고있으면 훈훈해지는 남자를 일컫는 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마음 한구석에 로망을 가진 채 나는 수많은 책들을 빌미로 도서관 방문객들을 바라본다.
  장기체류자중 최고봉은 도서관 직원들이다. 사서선생님과 공익근무요원이 있다. 일하는 장소가 도서관인 만큼 그들은 차분하고 나긋나긋하다. 나와 같은 처지의 근로 장학생들은 예의상 인사를 나눈 후 자기만의 세상으로 빠져들 준비로 주머니 속에 MP3 플레이어를 넣고 두 귀를 이어폰으로 막은 후 정해진 시간동안 임무를 완수한다. 같은 시간에 일하지만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따분한 임무완수 진행 중에 나의 눈을 반짝거리게 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들의 앞에 등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붉은 도서관의 근로자였다면 말이다. 첫눈에 봐도 일반인이 아닌 그들이 내 눈에 띄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연예인이란 것일까? 실망감을 안겨준 것이라면 유감스럽지만 그들은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그들은 내 앞에 나타나 나름 해맑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나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킬만한 인상으로 전해졌고 당황함에 움찔하는 나를 조절할 수 없었다. 당황한 눈빛을 보이기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책꽂이에 꽂을 책의 순서를 맞추는 작업에 집중했다. 마음이 진정되고 호기심에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그들 중 한명이 여전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내가 고개 숙일 틈도 주지 않고 들쑥날쑥한 치아가 보이게 씨익 웃으며 또 다시 인사를 건넸다. 민망함을 다시 주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나도 인사를 건넸다. 그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몸을 비틀며 수줍어했다.
  여전히 무서움에 휩싸인 채 나는 재빨리 책의 순서배열을 마치고 책을 정리하러 자리를 떠났다. 그것이 그들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그들에게 보인 나의 반응이 성숙치 못한 것 같아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원래 내가 일하는 시간이 아닌 때 도서관을 찾았다. 목요일 오후,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역시 그 중 한명이 나에게 예전과 같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고 이번에는 나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 날은 정리할 책이 많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서 사무실 안에 있는 시간이 유독 길었고 그들과 마주앉아 있는 시간이 덩달아 길어졌다. 서서 일하는 덕분에 다리가 아팠고 나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2명 중 붙임성이 좋은 한명이 나에게 “피곤해요?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해요”라고 말을 건넸다. 펭귄이 가득했던 사무실의 어색함을 깨는 그의 말에 “네”하며 조심스레 대답을 했고 그렇게 나의 긴장감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에나는 “어디 살아요?”하고 물었다.그는 “음음.. 멀리살아요”라고 답했고 “아..그렇구나”하고 말했다.
  짧은 대화 속에서 가벼운 미소가 오갔고 다른 질문을 더 해야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들이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경로가 궁금했던 내가 “여기 어떻게 왔어요?”라고 묻자 그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깼다. “버스타고 왔어요” 나의 질문에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내 의도와 다른 질문으로 이해한 그의 대답에 담긴 순수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가식, 어색함, 억지웃음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런 웃음을 나에게 선물해준 그에게 나는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고 가끔 떠올려주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뒤로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수 일이 지난 지금도 짧은 시간 안에 낯선 이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들었던 순수한 그를 떠올리고 있다.
  작은 세상 속 이야기이지만 붉은 도서관의 어느 날이 기억의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고 훗날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릴 때면 이 추억으로 인해 미소 지을 것이다.
  그 어느 날과 같이 붉은 도서관은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책과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을 맺어주는 따스한 곳으로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수필 부문 우수상 소감
내가 느낀 대로 몇 자 적은 것이 다른 이의 마음에 동요 일으켰다니…
  개교 56주년 기념 공연을 보기 위해 위로는 따가운 태양열을, 아래로는 모락모락 아스팔트의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공짜가 뭐라고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며 회의감에 젖어 있을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콘프로스트를 먹은 것 같았다. 그 전화는 전대신문 문예작품 현상공모 시상 소식이었다.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잊은 듯 하고 있던 차라 당선 소식에 얼떨떨했다. 담당자와 통화 도중에는 담담한척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하늘 위에 올라와 있는지 오래전이었다. 전화를 끊고 아무 말도 못하고 흐뭇한 미소만 띄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작품 중에 당선 된 것일까” 글을 쓰고 받은 상이라면 초등학교 과학의 날, 만들기에 소질이 없었기에 가장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훑어 읽은 후 맨 뒤쪽 요약된 부분에 있는 것을 보고 과학도서 독후감을 쓰고 장려상을 받은 기억뿐 인 내가 우수상을 받다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연말에 방송인들이 수상소감을 말하듯 이 사람 저사람 찾고 싶으나, 시청자였던 나도 지겨웠던 소감이었기에 간략히 말하겠다. 가장 먼저 내 작품의 주인공인 붉은 도서관 홍도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준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수상소감까지 쓰게 해주니 이 얼마나 기특한 녀석인가. 다음으로 작품의 조연들이 되어준 도서관 이용자들과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겨준 신비한 세계의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몇 자 적은 글이 당선되어 이렇게 소감을 쓰고 있는 것도 참 거창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 언제 또 올지 모를 기회이니 이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문득 이런 글귀가 떠오른다.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자는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하지 말라. 그려보면 다를 것이다. 난 단 한 번도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느낀 대로 몇 자 적은 것이 다른 이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다니 아직도 신기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혹시 있을지 모를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 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미영(산림자원조경학부·3)


수 필 심사평
응모작 절반은 수필 모양새 갖춰 반가워, 당선작 외에도 7-8편은 수준 높아 기대
  응모작의 반나마는 수필로서 모양새를 갖추고 나름대로 맛을 내고 있어 반가웠다. 많은 작품이 자신이 일상에서 겪은 일에 자신을 비추어 볼 줄 아는 힘이 있었다. 특히 <버스 안에서>, <흘러간 청춘에도 꿈은 있다>, <사랑을 외치다> 등은 소재를 붙잡는 힘이 돋보였다. 다만 경험을 넘어서 삶을 예리하게 꿰뚫는 눈빛이 조금만 더 반짝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반면에 <뒤끝형 인간>은 경험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피는 힘이 돋보였으나 뒤로 갈수록 심상이나 지식을 부리는 힘이 부쳤다. 자꾸 자신의 말을 수다스럽게 직접 드러내고 말아 아쉬웠다.
  수필도 문학적 글쓰기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뒤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이 글을 읽어가면서 스스로 감탄하여 따르도록 말을 부리거나 끝에 뚝 시치미를 떼어도 서늘한 감동이 살아야 제 맛이다.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는 이런 점에서 너무 말을 빨리 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제목처럼 목소리도 너무 높았다. 이외에도 <어느 노교수를 추억하며>, <시간이 흐르면, 사람도 변하고 풍경도 변하고> 등 많은 작품이 조금만 글쓰기에 손을 더 낸다면 기성 작품에 견주어도 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삶의 모습과 값어치를 깊고 넓게 헤아리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끝내 삶의 깊이를 찌르면서도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데 이른 작품은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음 선택으로, 일상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피고 새로운 각도에서 값어치를 헤아려보려 애쓰는 힘이 나름대로 더 두드러진 작품인 <붉은 도서관의 어느 날>을 우수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의 첫 부분은 좀 수다스럽고, 끝 부분은 없어도 될 사족을 달고 있어 망설였지만, 수필에서 소재와 말을 부리고 다루는 법을 높이 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르페디엠, 오늘을 붙잡아라>는 말을 부리고 이끌어가는 솜씨가 나름대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낡아 새롭고 산뜻한 맛이 떨어졌다. 더 아픈 곳을 지적하자면 ‘타이트하고’라는 낱말을 쓴 것은 큰 흠이라 할 수 있었다. 외국어든 외래어를 쓸 때에는 까닭이 반드시 있어야 함에도 그 까닭을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흠에도 글이 흔들림이 적어 ‘가작’으로 뽑았다.
  끝으로 당선 된 분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낙선한 분들의 많은 작품들도 이에 못지않았음을 밝혀 둔다. 빈 말이 아니라 당선작 외에 7-8편은 수준이 높았다. 조금만 손을 낸다면 모두들 훌륭한 문필가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노 철 교수 (국교·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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