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삼월 첫 주. 개강이구나. 그 동안 추위가 덜 풀렸는데도 선배들이 이런 저런 프로그램으로 돌린 통에 좀 힘들었을 거야. 이제 사대 앞 목련이 흰 꽃잎을 탐스럽게 열고 강당 옆 홍매화는 귀한 자태를 드러내면서 교내는 완연히 따사로워진단다. 뒤따라 개나리와 벚꽃과 철쭉이 여기 저기서 피면 캠퍼스는 화사하고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이런 꽃들보다 더 관심 가는 것은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조심스러운 행동의 새내기를 보는 일이란다. 고등학교 교실에만 있어선지 햇볕에 덜 탄 얼굴 빛, 새 옷과 새 구두나 새 가방, 개성이 덜한 머리 모양, 어색한 몸놀림..... 신입생들은 어디에선가 티가 나기 때문에 눈으로만 봐도 구분할 수 있단다. 너희가 지나는 모양을 봉지 옆 벤치에 앉아 느리게 바라보면서 나의 대학 신입생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벌써) 30년 전이구나. 나도 충장로에서 새 구두를 사 신고 대학 첫날을 기대에 부풀어 등교했단다. 그러나 첫 수업은 실망이었어. <내가 다시 대학 신입생이라면>이라는 제목의 강의는 식상하고 뜬구름 같았어.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하나를 배워도 확실히 알고, 일 년에 백 권의 책을 읽고, 친구를 폭넓게 사귀고, 여행을 자주 하며, 열정적인 연애에 빠지고..... 등이었어. 대학에 막 들어와 적응하기도 버거운 터에 꽤 욕심 많은 주문이었지.
  그리고 난 입학한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나의 키에 대해 콤플렉스(열등감)를 가지게 되었어. 다른 학생들보다 키가 너무 컸거든. 더군다나 나는 빼빼했기에, 친구나 선배들은 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른 간짓대가 흔들거린다’고 놀려대곤 했어. 여학생들은 내가 옆에만 가도 자신이 너무 작게 보인다고 자리를 피하곤 했어. 대인관계에 익숙지 못한 새내기 시절 나는 작게 작게 상처 받았지. 그래서인지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과 공부에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 단지 도서관에 가서 공부는 안 하고 소설책 읽는 재미로 시간을 때웠어. 이런 생활을 보내는 신입생이 조금 있을 거야.
  그래도 나에겐 동아리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되었지.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과 솔직한 대화를 통해 콤플렉스를 잠시 잊거나 조금씩 극복하게 되었어. 서로 콤플렉스 털어놓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가 별 대단한 것도 아니며 비단 혼자만의 것도 아니라고 깨닫게 되지. 그래서 나는 새내기에게 동아리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해보라고 권한다. 대학 시절에 경험하여 평생의 자산이 되는 것 중의 하나란다.
  아무튼 첫 수업에 들은 ‘권하는 일’을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졸업했어. 이제 생각하면 무척 안타까워. 새파랗게 젊은 시절을 소심함과 콤플렉스 따위로 흘러 보낸 것이 정말 아쉽구나. 너는 제발 그러지 말아라. 용기 없이 머뭇거리기에는 청춘이 금방 지나가 버린단다.
  내가 오늘 새내기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30년 전에 첫 수업에서 들은 그 식상하고 뜬구름 같았던 말과 다르지 않다. “하나를 배워도 확실히 알고, 일 년에 백 권의 책을 읽고, 친구를 폭넓게 사귀고, 여행을 자주 하며, 열정적인 연애에 빠지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눈과 마음을 키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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