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고 노동자가 시청앞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해 3월, 광주시청 청소용역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해고 사건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해고된 노동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길 위에서 원직복직을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지난 1년 그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야 할 길은 없는지 알아봤다. /엮은이


108배, 그리고 끝없는 행진
  “우리는 일하고 싶다. 원직복직!”
  지난 3일, 바삐 걸음을 옮겨 도착한 광주시청사 정문 100m앞에는 이미 한 어머니의 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한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늘도 지난 1년 동안 새까맣게 타버린 어머니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희뿌연 먼지로 흐리기만 하다. 오늘은 광주시청의 청소용역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해고로 인한 투쟁 1년을 4일 앞둔 날로, 앞으로 시청비정규직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총력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다. 기자회견문 낭독이 끝나고 일곱 분의 어머니들이 108배를 하기 위해 열을 맞춰 섰다. “1배요, 2배요, 3배요……108배요” 어머니들의 목소리는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 뱉어내는 무의미한 외침처럼 들려온다. 108배를 드리는 어머니들의 등 뒤에 서계시던 또 다른 어머니은 결국 남몰래 눈물을 훔치신다. 그 눈물 속엔 지난 1년 동안의 고생과 설움이 담겨있음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광주시청 비정규직분회장 최경구 씨는 “인권도시라 불리는 광주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원통하기만 하다”고 이야기한다. 108배를 마친 무거운 무릎을 붙들고 어머니들은 다시 열을 맞춰 행진을 시작한다. 나는 어머니들이 분노와 설움을 뱉었던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지난 일 년, 그들은 어떤 길을 걸어온 것일까?


단식, 1인 시위…고소·고발, 벌금
 2007년 3월 8일 광주 시청 청소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단해고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이 날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50~60대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시청 측에서는 계약이 만료된 것이 이유라고 하지만 실질적 이유는 노조가입이라는 말이 조심스레 들려왔다. 2004년 결성된 노조는 욕설과 협박, 하루 11시간이 넘는 장시간노동, 60만원의 최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인권을 보호 받고자 청소용역 노동자들 중심으로 결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권리를 지키고자 결성한 노조를 시청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 그 날 이후 이들의 투쟁은 시작됐다. 다시 매일 아침 출근 하던 시청으로 발을 들일 수 있다면, 여성이자 비정규직으로서의 인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차가운 길바닥에서의 노숙도 괜찮았다. 속살을 드러내 보여야했던 속옷투쟁, 무릎이 다 해질 것 같았던 7보 1배의 고통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8차례의 고발과 고소, 허울뿐인 복직약속,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공무집행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률(이하·집시법) 위반 등의 사유인 1천1백5십만 원의 벌금뿐이었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놀이패 ‘신명’의 공연 ‘도깨비 난장’이 광주 시청 비정규직 해고문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5·18기념문화센터로부터 대관허가 취소 통보를 받았다. 최근 시청 앞에서 벌이고 있는 릴레이 1인 시위마저도 시청직원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며 끌려나오는 등 지난 1년 동안의 투쟁은 그들에게 녹록치 않았다. 어머님들이 1년 내내 ‘박광태 시장’을 부르며 원했던 건 많지 않았다. 비정규직으로서 인권보호와 원직복직뿐…….


광주에 ‘세계여성의 날’은 없다
  지난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8일에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여성근로환경 개선과 여성 지위향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 된 날로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세계여성의 날. 그리고 광주시청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원직복직을 외치며 거리에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 온지 1년이 되는 날. 세계여성의 날이 100년의 세월을 넘어오는 동안 광주에서의 여성인권은 전진이 아닌 후퇴의 길을 걸어왔다. 광주시청에서의 비정규직, 여성, 50~60대라는 것은 인권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어가고 있는 당신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 왔는가? 전국공공노조 조합원장 전 욱 씨는 “사실 대학생들 90%는 졸업 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달게 될 것”이라며 “현재 이런 투쟁에 대한 대학생들의 침묵은 비정규직을 대물림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비정규직이란 비단 한 귀로 듣고 흘리고 한 눈으로 보고 지나쳐도 될 것이 아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어머니들의 투쟁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가까운 미래에 나, 그리고 내 자식들이 권리를 지켜가며 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들의 행진은 오늘도 계속 된다. ‘박광태 시장’이라는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져 어머니들이 시청으로 발을 들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그 행진은 멈출 것이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