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 대운하 예정지를 100일 동안 걷기로 한 생명평화순례단. 기독교에 김민해 목사, 불교에 수경 스님, 천주교에 문정현 신부 등 각계 종교 인사들로 구성된 생명평화순례단은 지난 12일, 김포 애기봉에서 출발해 강물을 따라 걷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대운하 저지를 위해 걷고 있는 순례단과 전대 신문 기자 2명이 23일 하루 동안 함께 했다. /엮은이

▲ 세번의 수술로 다리가 불편한 수경스님이 지팡이를 짚고 개울을 건너고 있다.

생명을 일깨우는 발걸음

추위와 맞서며 “운하 막자”비장한 결의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12일째인 2월 23일. 도보순례 시작점은 경기도 양평의 양근대교. 출발하기로 한 시간인 8시 반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양근대교로 모인다. 참가자들에게 지급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고 새겨진 천을 몸에 착용하고 나니 정말 생명의 강을 사수하는 사람이 된 듯 한 기분이다.
도보순례에 참여한 사람들이 전부 자기소개를 한다. 오늘 도보순례에는 서울에서 온 사람도 있고, 캠핑카를 몰고 다니며 전국을 여행하던 사람들도 잠시 여행을 멈추고 함께 참여한 사람도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곳에 살고 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가슴에 품은 뜻은 같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소개를 마치고 간단한 운동을 통해 몸을 푼다. 출발에 앞서 “이 발걸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여주시고, 세상의 생명과 함께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하는 김규봉 신부님의 짧은 기도와 함께 힘차게 출발한다. 어제의 따뜻했던 날씨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매서운 바람만 세차게 불어대 털모자로 무장을 해도 얼굴 끝에 닿는 바람이 시리기만 하다. 어렸을 때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한 줄로 서서 걸었던 것처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깃발 뒤에 줄을 이뤄 한걸음씩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걷는 길옆으로 차가 지나가면 차를 향해 손도 흔들어 준다. 그러면 차 속 사람들도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마치 우리에게 ‘힘내세요! 우리도 당신편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만 홀로 걷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해서 찬바람은 무겁지만 발걸음만은 가볍다.

  40분쯤 걸으면 10분씩 쉬었다. 순례단 성직자분들이 연세가 있으셔서 오래 걸으면 무릎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때 보니 어느덧 순례단 동행자가 반절이나 더 늘어났다. 양평 근처인 여주에서 오신 수녀님들과 카톨릭 환경연대에서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다. 같은 뜻을 지닌 사람이 늘어나니 왠지 모르게 힘이 더 세진 기분이 든다. 한참을 걷다가 도로변에서 휴식 중이던 대한불교 조계종 전 총무원장이신 월주스님께서 순례단을 격려 방문하셨다. 종교계의 큰 어른이신 월주 스님은 순례단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순례단과 운하에 대한 관련한 견해를 밝히시며 잠시 우리와 길을 함께 걷는다. 월주스님은 “이번 순례는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운하에 대해서 “운하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가장 큰 문제이다”고 지적하신다. 또한 “이번에 추진되는 운하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니 새 정부가 추진을 중단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후 “운하를 파야만 경제가 살아나는가? 환경훼손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경제성장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순례단 일행의 훈훈한 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점심시간을 뒤로하고 향후 운하가 추진될 경우 준설과 하상 굴착이 대규모로 추진되어야 하는 남한강의 제방을 따라 이동했다. 여주군 금사면 전북리에서 여주군 강천면 섬강 합류점 구간은 상수원에서 근접한 지역 중에서 상대적으로 넓은 강변의 모래톱과 다양한 식생을 유지하는 지역이다. 산지에서 농지 및 하천으로 연결되는 생태계가 양호하게 보호되고 있으며, 다양한 소와 여울·모래톱이 발달한 자연습지다.

  이곳이 중요한 겨울 철새 도래지이며 어류보전을 위한 지역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반짝이던 것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남한강. 차가운 날씨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대운하가 건설되려면 저 남한강의 강바닥은 수심 1미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대량으로 파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눈앞에 찬란한 저 강은 사라지게 된다. 답답한 마음에 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푸른 강과 대조되는 눈부시게 하얀 새들이 무리지어 한가로이 떠있다. 오리인줄 알았던 하얀 새들은 다름 아닌 고니. 인간의 욕심으로 물든 더러운 세상에서 저 하얀 고니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그저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다. 자연은, 저 강은 이명박 대통령의 것도 아니고 우리 세대의 것이 아니다.

  선조들이 지켜왔고 앞으로 후손들을 위해 우리가 지켜줘야 할 것들인데 말이다. 저마다 넋을 놓고 속상한 마음에 강을 보고 있었는데 순례단의 단장이신 이필완 목사도 “이재오 의원이 자전거로 투어를 했다고 하는데, 걷지 않으면 못 볼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에 암반 굴착을 해서까지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자전거가 아니라 직접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신다. “저 예쁜 것을 우째서 훼손하려는겨” 한 아주머니의 안타까운 탄성도 들려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다해 걷는 것이므로 도착지를 향해 다시 조용히 걷는다.

  오늘 하루 총 18km를 걸은 후에야 순례의 도착지인 석불암 근처에 도착했다. 추위에 맞싸우며 함께 고생한 순례 일행은 다시 둥그렇게 원을 만든다. 그리고 하루 동안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해 걸음을 같이한 도보순례 인원 70명에게 수고했다는 뜻으로 서로 큰절을 한다.

  저마다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터전을 인간의 욕심으로 허물어서도, 우리나라의 국토 건강을 훼손시키는 것도 절대 안 된다. 이 땅의 젖줄,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나무들의 숲과 모든 조화로운 자연이 만들어준 선물, 생명이 흐르는 강은 어느 누구의 것도, 대통령의 것도 아닌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훗날 우리가 지켜낸 생명의 강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12일째 여주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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