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수시절 우리를 가르치신 교수님들이 정년을 맞이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내 정년은 그저 먼 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정년퇴임교수가 고별인사를 하는 중에 더러 목메는 모습을 보면서는 한 평생을 학교생활에 바친 후 정든 교정을 떠나는 심정이 저렇게 표출되는구나 했습니다. 그때는 정년퇴임하는 교수가 많지 않아서 혹시 실례를 범하지 않을까 인사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웠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던 저도 때가 되어 2007년 2월말에 정년퇴직했습니다. 아무래도 교정을 떠날 때 허전한 심정을 달래기 어렵지 싶어 한 해 동안 퇴근할 때마다 책 한 권씩을 집으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5월 10일에 광주를 떠나 여기 미국 뉴멕시코 주의 엘부쿠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십 년도 더 되는 세월을 보낸 학교를 떠나는 것도 적잖은 변화였지만 67년이나 살던 곳을 훌훌 털고 떠나는 것은 저에게는 여간 큰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들면 그에 맞게 살기 편한 아파트로 옮기는데 저는 거꾸로 40여 년 동안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늦게 주택으로 들어 살려다 보니 그 준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것도 모든 게 설기만한 타국에 자리를 트는 일이라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아예 한 가지씩 새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실수를 하더라도 참아내야 했습니다. 광주에서 이삿짐을 꾸리면서부터 여기서의 적응까지 실로 긴 시간을 보내는 데는 그런 새로운 자세가 아니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의 적응은 딸 내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일단 사는 것이 일상이 된 후로 저는 더할 수 없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편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 아니라도 세상은 돌아가게 마련이어서 서두를 필요도 조바심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하고 싶은 일이나 찾아 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사서 건성으로 읽다가 만 책들을 다시 손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편안하게 해준 가장 큰 요인은 주변환경이었습니다. 임어당은 인간이 자신이 있어야 할 적소(適所)에 있어야 함은 분명한데, 자연의 분위기를 골라 자기 기분과 조화시켜 살기만하면 그곳이 바로 적소라고 말했습니다. 저 자신이 이곳을 골라잡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나무ㆍ꽃ㆍ구름ㆍ바람ㆍ산ㆍ 새ㆍ풀ㆍ인간 등이 부질없는 욕망을 버리게 하고, 허식의 틀을 벗어나게 해줍니다. 스스로를 빈 대나무처럼 느끼게 합니다.
 

  생활의 간소화도 저를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소비를 줄이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쓰던 가구들을 그대로 옮겨다가 집안을 장식하고, 서재에 현대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컴퓨터를 들여놓은 다음 인터넷을 깔았습니다. 고향의 친지들은 물론 호주나 일본 등 외국에 사는 오랜 벗들과 전자메일을 교환할 수 있어서 좋고, 몇 가지 공과금의 납부며 은행거래를 집에 앉아 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합니다.
 

  걷기는 인간을 완전무결한 자연 속으로 깊이 끌어들여서 자연의 오묘함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준다고 합니다. 가까이에 3,000미터가 넘는 샌디아 산을 끼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가지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으며, 저도 때때로 그들 중의 하나가 됩니다.
 

  저의 정년 후 1년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처음 반년은 좀 힘들었으나 나머지 반년은 만족감을 느끼면서 그야말로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살았습니다. 철학자들이며 도덕가들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수천 가지 형태로 표현한 ‘기쁨은 재물의 풍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체험하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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