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물의 사회가 돼버린 현재, 새해 키워드는 ‘연대’



싸움꾼. 홍세화는 스스로를 ‘싸움꾼’이라 부른다. 사람들도 그에게 싸움꾼이란 별명을 붙인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상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 학벌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버린 사회에서 ‘학벌 없는 사회’를 외친다는 것.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연대’를 이야기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 걸까. 그는 인터뷰 끝자락에 ‘허무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게 삶이니까…’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남겼다.
2007년이 저물던 지난해 12월 21일 한겨레신문 본사에서 홍세화 위원을 만났다.

‘경제 동물의 사회’가 돼버린 한국사회를 이야기하다
성공 시대. 그 중에서도 경제적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한국 사회. 그는 “IMF 이후 한국 사회의 화두는 ‘부자 되세요’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우리 사회에서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로 된다”고.

홍세화 경제적 동물의 사회이기 때문에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지 않게 됐고, 그래서 인문학이 실종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존재에 대한 고민, 관계를 성숙시키는 것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연대의식은 사라지고 경쟁의식만 남아있다. 이번 대선 당선자는 경제적 측면에서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 결과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총학생회의 구태의연함을 안타까워하다
최근 총학생회가 이명박 후보 당선 저지를 위한 단식 투쟁과 현수막 제작 등을 한 바 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해 어떤 학생은 총학생회의 의견이 전체 학생의 의견인 양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 총학생회가 사회 문제나 통일 문제에만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홍세화는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따라가는 총학생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판에 전남대 총학생회가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러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방식이나 방법이 구태하다”고 이야기 한다.

홍세화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는 시간은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돼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학생회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학생 대중과 너무 유리돼 있지 않나 싶다. 또 학생 운동을 하는 방법과 방식에 있어 문화적으로 쇄신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학생다운 ‘발랄함’과 ‘새로움’을 가지길 바란다.
21세기의 새로운 대학 문화를 스스로 창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무겁고, 어둡고 구태의연하다. 또 무엇보다 학습을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통일 문제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88만원 세대와 대학 평준화를 비롯한 교육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 구태의연한 것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다. 함께 책 읽고, 학습하고 동아리 활성화 시키면 충분히 새로운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대한 성찰과 운동을 할 수 있다.

학벌 사회와 지적 인종주의를 비판하다
어떻게 보면 그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학벌 사회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 한국 사회에서 ‘학벌 없는 사회’를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 사람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고 ‘뜬구름 잡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학벌 없는 사회’는 현실이자 꿈이다. 실제 대학이 평준화된 프랑스에 살면서 진정한 평등을 느꼈다.
어쩌면 당연한 외침일 수도 있는데 지적 인종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허망한 꿈이 돼버렸다. 무엇보다 그는 학벌 사회로 고통 받는 당사자들인 대학생들이 ‘학벌 없는 사회, 대학 평준화’를 외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슬프다.

홍세화‘나는 지방대생이니까’하며 열등의식을 가지면서도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대학 보다는 낫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중적인 학벌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무서운 이야기다. 자신의 위치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몇 등급’과 같이 자기의 위치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저 친구는 어느 대학교 학생이야’라는 식으로 타자의 신분까지 규정한다. 이것은 거의 신분제와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규정됐다면 이제는 대학에 가면서부터 신분이 규정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용납할 수 있는가’라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제기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을 제기해야 하는 주체가 대학생들인데 제기하지 않는다. 너무 답답하다. 대학에서 요구되는 정신이 인문 정신과 비판 정신이고 이 정신들이 함께 맞닿아서 싸워 나가야 할 문제가 ‘대학 서열화, 대학 평준화’ 문제인데 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기규정을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왜 이 문제를 당사자인 대학생들이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가 대신 바꿔주기를 기대하는가. 왜 주체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가. 주체적인 의식, 비판적 안목 자체가 없이 대학에 오기 때문이고, 대학에서조차 그러한 것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유럽의 청년들은 사적으로는 대단히 소박한데 사회에 대해서는 날카롭다. 우리는 정반대다. 사적으로는 영악하고 예민한데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지배하기가 쉬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보수를 받고 편하게 살아가고, 안 좋은 대학을 나오면 88만원도 못 받는 이런 현상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모르니까 지배당하는 것이다. 학벌사회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싸워나가야 한다. 지방 국립대 학생들이 왜 안 들고 일어나나. 유럽에는 ‘대학 평준화’라는 말 자체가 없다. 유럽의 대학은 평준화돼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 있는 대학은 모두 파리1대학, 파리2대학, 이런 식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왜 유럽에 있는 대학은 평준화가 돼 있는지. 대학 평준화로 바꿀 때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지성의 마지막 당부,“책 좀 읽어요”
‘책 읽으라’는 말. 이제 듣는 사람에게도, 말하는 사람에게도 지겨울 만도 할 텐데 그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책 좀 읽으세요, 책!” 지겨우리만큼 강조했지만 지켜지지 않기 때문인 것일까. “전 세계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일주일에 2권씩 읽어도 1년에 백 권 밖에 못 읽는다. 평생 동안 천 권도 못 읽는다”고 말하는 그의 좁은 기획위원실에는 책꽂이도 부족해 바닥을 책꽂이 삼아 책이 막무가내로 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방에서는 책의 향기가 풍겼다.

홍세화 사람에 대한 학문이 인문학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면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고, 사람에 대해 공부하려거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대화의 화제가 연애, 연예인뿐이다. TV만 보지 말고 책 좀 읽자. 나도 ‘일주일에 두 권은 읽어야지’ 다짐한다. 젊은이들은 잠 안자고도 책 볼 수 있는 젊음이 있지 않은가.

새해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나는 이대로, 계속 싸움꾼이지”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책 좀 읽어요”라고 강조했다. 그가 싸울 기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또 다른 싸움꾼들이 나와 싸워주길…
글 = 김수지 기자 myversion02@hanmail.net
사진 = 장옥희 기자 sushoo@hanmail.net

홍세화는

쪾1947년 서울 출생
쪾1969년 서울대 외교학과 입학
쪾1972년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
쪾1977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쪾1977~79년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
쪾1979년 무역회사 해외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 망명생활하다 2002년 귀국
쪾현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쪾저서로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빨간 신호등’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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