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5일 오전 충남 태안 의항리 개목항. 현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코를 찌르는 타르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흘린 구슬땀의 결과로 악취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서해를 뒤덮은 1만5천톤의 기름이 뿜어내는 타르냄새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현장은 예상대로 참혹했다. 암벽과 바위, 주위 곳곳이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채 하나같이 타르색을 띄고 있고 새들도 악취를 견디지 못해 이미 서해를 떠난 듯 했다. 덕지덕지 곳곳에 달라붙어있던 기름이 파도가 칠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쓸려 다닌다. 예년 같으면 겨울바다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볐을 해수욕장 근처 펜션과 상가에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늘만 보인다. 몇몇 사람들의 실수로 하루아침에 생계의 터전을 잃은 암울한 심정이 전해져 가슴이 아려온다.
세찬 바닷바람이 사람들을 때린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현장을 찾은 전국 각지의 약 2천 여 개미군단 자원봉사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방제작업을 위해 서두르고 있다. 현장을 생생히 보도하기 위해 각 방송사들의 취재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현장을 수습하고 지휘하는 관리인은 정신없이 자원봉사자들에게 물품을 나눠 주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고무장갑, 방제복, 고무장화 등을 하나하나 챙겨 입고 양동이와 흡착포, 천조각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방제작업을 펼친다. 소형어선 20여척이 필사적으로 타르 덩어리를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거세게 밀려드는 타르 덩어리와 기름띠에 힘겨워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바위 틈에서 마치 굴을 따는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타르 덩어리를 주워낸다. 누구 하나 시킨 사람은 없지만 힘들다는 소리 한 번 없이 잘도 해낸다.
점심시간이 이르자 밥차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주머니들이 웃는 얼굴로 “일하느라 고생하셨어요”라는 말을 건네며 사람들에게 밥을 내민다. 사람들은 따뜻한 국밥을 손으로 받쳐들고 먹으면서야 겨우 허리를 편다. 식사 이외에도 각종 간식과 따뜻한 차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보이고 이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뿌듯해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머리 위로는 현장상황을 보도하기 위한 헬리콥터가 지나다니고 여전히 자원봉사자들은 기름을 빼기에 여념이 없다. 조그마한 돌을 하나 들어올려 보니 그 밑에 있던 기름을 뒤집어 쓴 게 한 마리가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인간들이 일으킨 재난에 죄 없는 생물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방제작업을 한 곳이 미약하나마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오늘 하루 개미군단 일꾼이 된 우리 대학 한나 양(석사과정·영어교육)은 “어제 인터넷서핑을 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태안 홈페이지를 찾아 문의 드려서 겨우 오늘 자원봉사에 참가하게 됐다”며 “끝이 안 보이는 방제활동에 오늘 하루 내 활동이 비록 미약해 보이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고 말한다.
또한 현장에서 광주 팀을 지휘한 광주전남녹색연합 박필순씨는 “예전부터 환경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참가하게 됐다”며 “우리와 같은 인간이 저지른 일이니 참회하는 마음으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매주 태안을 찾을 계획이다”고 말한다. “오늘 집에 가서 뉴스를 보면 마음이 따뜻할 것 같다”며 “현장에는 젊은 인력이 많이 필요하니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많이 참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점차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하나둘씩 오늘의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오늘 하루 제거해 낸 양동이에 담긴 기름의 양을 보고 모두 입을 쩍 벌린다. 이렇게 조금씩 힘을 모으면 언젠간 푸른 서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글·사진=김민주 수습기자 minddak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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