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부터 전국의 대학이 있는 곳에서 거의 대부분 ‘최우수대학 선정’이라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으며 지금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전남대학교도 정문에 들어서면 자랑스럽게 ‘최우수대학 선정’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리곤 하였다. 어떤 때에는 홍콩의 어느 기관에서 평가한 국제적인 순위가 적힌 대형 현수막도 걸린 적이 있었다.
압도적이면서도 의젓하게 우수대학 순위를 광고하는 현수막을 보고 학생들이 매우 큰 자긍심과 애교심을 갖게 되었었기를 기대한다. 근래에 들어서 우수대학 순으로 줄 세우기가 더욱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목표성과는 대개 전국순위만으로 알려지며, 어떤 경우는 국제순위도 나타난다. 대학 밖의 사람들에게 순위는 대학의 수준을 알고자 할 때에 가장 간단하고 믿음직한 정보일 것이며. 대학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순위 매기기는 상대적인 비교평가로서 목적과 내용과 과정보다는 실적 중심적인 평가이며, 평가대상들끼리는 상호배타적이다. 순위는 평가기준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므로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정보를 주지 않게 되며, 순위를 평가하는 기준에 맞춘 실적 만들기를 부추기게 한다. 대학으로 하여금 평가기관의 평가기준에 복종하게 하는 셈이다.
평가기관은 대체로 언론매체가 많다. 많은 독자나 시청자를 가진 언론매체의 평가일수록 평가자의 권위가 크게 되며 대학도 평가결과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들은 이렇게 대학 순위 매기기가 대학의 개혁과 발전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대학의 판정기준은 이미 국제적인 대학순위가 되었다. 이러한 순위를 상위로 끌어 올리는 것을 대학발전 목표로 선언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대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순위 매기기가 절대적인 수준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으며 순위의 차이가 반드시 절대적인 수준차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대학의 신입생 모집은 다양한 평가기준에 따라 채점된 학생의 입학성적에 의하여 순위를 매기는 작업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4백점 만점의 경우에서도 입학성적에서 소수점 2자리의 값이 순위에 크게 영향을 미쳐 많은 응시생의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편, 입학성적에서 상위 학생과 하위학생의 성적차가 매우 큰 경우인데도 석차는 매우 적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항상 순위가 모집인원 수 이내의 석차이면 합격이 된다.
대학의 순위 매기기는 현 시대에서 대학의 대학경쟁력이라든가 살아남기 등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대학은 이러한 위기감을 내세우며 각종 평가기관의 평가기준을 분석하여 개혁이라는 모양 갖추기와 평가기준 달성하기를 시도한다.
때로는 목적과 내용보다는 평가숫자 높이기 작업을 시도하는가 하면 실제 실적보다도 평가기준을 확대 적용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평가기관은 몇 가지 획득한 가능한 자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학이 제출한 보고서를 이용한다.
대학의 순위 매기기는 대학의 목표도 달라지게 하였다. 세계대학 순위와 국내대학의 순위를 목표로 정하고 그 달성을 위하여 어떤 사업을 기획한다. 목적과 시행의 목표가 평가기준에 따른 실적달성이므로 대학의 이념과 교시는 표지 장식을 위한 배경으로 된 셈이다.
대학이 스스로 자유롭게 의지를 갖지 않고 외부 평가기준에 대학의 의지를 맡기는 것이다.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아니하고 남의 평판에 나를 맡기는 꼴이다. 당나귀와 함께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우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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