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역사문화기행(남도기행)’ 이라 하면 지난 학기 풍족했던 1박 2일이 한눈에 펼쳐진다. 보성 녹차 밭의 푸름과 담양 가사문학관의 풍성한 자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눈과 입을 즐겁게 했던 여러 먹을거리들이 차례로 떠오르는 것이다. 지난 학기 추억 속 남도기행은 수많은 과제들과 수업에 치여 하루하루 지쳐갔던 시기에 적절한 쉴 틈을 주었던 선물과도 같은 시간으로 남아 있다. 그와 동시에 남도기행은 그동안 몰랐던 남도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볼 수 있게 했던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이런 기억을 안고 있던 터라, 2학기 남도기행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사실 지난 학기의 경우에는 남도기행에 별 생각 없이 가게 된 것이었다.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할까.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이곳에서 지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왠지 모르게 각별해지는 면이 있었다.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더 느끼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살면서 언제 이곳을 다시 찾을까 생각하면 지금 이곳에 있는 동안에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한껏 누려야 한다는 절실함이 생기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기행에선 가지 않았던 영암, 해남, 강진 일대를 돌아보는 이번 기행에도 기대를 한 아름 안고 길을 떠났다.

 “남도문화역사기행”에서 먹을 것에 대한 인상을 가장 강력하게 꼽는 것이 어쩌면 지엽적인 부분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남도기행의 꽃은 ‘먹을거리’였다. 사실 전라도에 교류학생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그쪽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살이 통통하게 올라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왔을 때 접해야 했던 음식은 기숙사 음식이었고, 생각과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건 2학기인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전라도 태생에 기숙사 4년째인 방언니도 “기숙사 음식은 4년째라도 적응이 안 돼”라고 말할 정도이다. 더구나 이곳 친구들에게 “광주에서 맛있는 데, 유명한 데 좀 데려가 달라”고 해도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며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가게 된 남도역사문화기행은 정말이지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굉장히 다양한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어서 1박 2일 내내 너무 즐거웠다.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이 너무 오랜만이라 하나하나 먹으면서 어찌나 감동했던지.
들뜨게 먹는 와중에도 역시 문화와 음식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지난학기 남도음식문화박물관에도 다녀온 경험이나 그에 대해 연구하시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던 경험 덕이었다. 이 지방엔 산과 들, 밭이 많아 음식 재료가 많기에 양념을 구할 방도가 많다고 했다. 따라서 맛이 강해지고 간이 풍성해져 풍미를 더한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 나눠 먹는 습관이 많이 남아 있어서 잔치에서처럼 풍부한 상차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에 가면 맛도 맛이지만 찬이 많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이 다 정이 많은, 서로 음식을 나눠먹는 문화 속에서 피어난 식습관이라는 설명을 들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들렀던 식당에서도 끝도 없이 많은 찬과 여러 재료들의 정갈한 배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심리적 만족감 등은 한이 없었다. 남도를 대표하는 곳에서, 남도를 대표하는 음식을 먹으며 남도를 한껏 느낄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뜻 깊었다.

고향이 바다가 있는 곳이라 그런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해남의 너른 바다 위에 햇살이 부서지는 풍경을 보니 집에 대한 그리움이 강력해져서 괜히 싸한 느낌에 젖기도 했다. 바람도 선선하고 가을 분위기가 완연해서 안 그래도 가을맞이 떠나고 싶었던 나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 속에 그 시간을 가둬서 나중에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두고두고 펴보고 떠올려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남도기행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강진의 고려청자박물관에서 작은 도자기를 각자가 꾸민 시간이다. 처음엔 그저 재밌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모두가 갑자기 집중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공간은 ‘고요’ 그 자체가 됐다. 저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데 여념 없었던 것이다. 나는 “혜진, 빛을 발하라”라는 문구와 함께 주변을 꾸몄다. 그렇게 정성 어린 마음을 담아 완성을 하고 나올 때 괜스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 도자기가 구워져서 나올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짧은 시간인데도 이것저것 보고, 먹고, 체험하고, 나눌 수 있어서 값진 시간이었다.

길가에 피어 있던 코스모스,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던 나뭇잎들, 형형색색 아름다운 산. 이 모든 가을 분위기에 마음도 덩달아 동해 들뜬 1박 2일을 보냈다. 사람들과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시간이 점차 깊어지는 느낌이 들 때 즈음, 우릴 실은 버스는 다시 광주를 향했다. 잠시 일상을 떠나 자연과 부대낄 시간을 가지고 나니 다시 일상을 힘차게 채울만한 힘이 솟았다. 얼마 안 있으면 나는 이곳을 떠나게 될 테지만, 이곳을 떠올릴만한 소소한 추억들을 여기저기 남기고 간다는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인생이란 어쩌면 이처럼 반짝이는 추억들에 기대어 숨 쉴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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