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적 사회생활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분명치 않아서 곤란을 겪을 때가 더러 있다. 이러한 곤란은 소송절차에서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차용증서 없이 돈을 빌려 주었는데 차용사실을 딱 잡아떼면 어쩌나’ ‘영수증 없이 돈을 갚았는데 어쩌나’ 하는 고민에 대하여 답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교 법과대학은 근래 법률상담소를 활성화하였고 상담건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역시 같은 유형의 상담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생활상의 곤란이나 상담을 맞닥뜨렸을 때 일반인의 염려와는 달리 나는 그런 곤란을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상담자들에게도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 진실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힘을 믿어도 된다. 진실은 쉽게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등기나 등록으로 관리되는 재산을 타인의 이름으로 등기·등록해 두는 것을 명의신탁이라고 하는데, 명의를 빌려준 사람 즉 명의수탁자가 명의를 빌린 사람 즉 명의신탁자의 반환청구를 거부하면서 명의신탁사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요재산을 명의신탁할 관계이면 명의신탁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이처럼 문서 작성이 없기 때문에 진실게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어떠한 사건, 사실, 사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고, 언제나 다른 사실, 사건, 사물과의 관련 속에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법! 명의신탁이라는 사실도, ㉠재산을 취득하게 된 과정과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명의신탁을 하게 된 동기나 목적이 있게 마련이며, ㉢재산의 관리와 수익은 명의수탁자가 아니라 명의신탁자의 몫이 되는 것이 상례이고 그렇지 않은 예외적인 때에는 그만한 연유를 가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명의신탁사실과 연관되는 다른 사실을 낱낱이 분석하여 확인해 가면, 대개는 사실확인이 절반에 이르기도 전에 벌써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무너지거나 불합리한 고집을 되풀이하는 한심한 모습을 드러내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요즈음 대통령선거 때문에 많은 사건과 사실 보도가 적지 않게 무관심 속에 지나가는 중에서, 나는 최근 어느 전직 대통령이 자신이 숨겨둔 비자금을 동생에게 맡겨 놓았는데 동생이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면서 진실을 가려달라고 진정서를 관계당국에 제출하여 조사가 개시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 속으로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형제이기도 하려니와 재산의 성격 때문에라도 재산보관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 사정을 이용하여 동생이 잇속을 챙기려고 탐욕을 부리는가, 아니면 대통령까지 지낸 형이 어떤 말못할 사정이 있어 동생을 해코지하려는가를 가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도 하였다. 이런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노련한 검사가 아니라 평범한 대학생일지라도 앞서의 3가지 기준사항을 중심으로 사실을 확인해 가면 어렵지 않게 진실에 접근하리라 믿는다.
현재 세인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서, 막강 파워를 가진 어느 중앙행정관청의 장이 수하에 있는 어느 지방행정관청의 장으로부터 거액을 상납 받았다는 의혹이 수사중에 있다는 보도도 있다. 그에 의하면 그 중앙행정관청의 장은 ‘인사상 이익을 준 적이 없는데 거액을 상납할 이유가 있겠느냐’라고 초기에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뇌물 상납의 동기는 받은 이익에 대한 대가’일 뿐인가? 당사자 사이에 은밀히 현금으로 주고받은 돈이라면 결국 진실은 가려질 수 없는가? 돈에 이름을 써서 주거나,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이 없다면 진실을 가리지 못하는가?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의 말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하늘과 귀신이 증언해 주지 않는 한, 진실과 거짓은 가릴 수 없는가?
하늘과 귀신이 증언해 주지 않는다고 하여 당사자뿐만 아니라 하늘과 귀신까지 진실을 안다는 옛말이(自知 我知 天知 神知)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진실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실과의 관련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고 그 흔적은 다른 사실 속에 새겨져 있다. 우리가 만나는 진실게임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상당히 어렵고 긴 과정을 요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고도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드물게는 있다. 이러한 난제(hard case) 속에 묻힌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최대의 어려움은 증거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힘에 대한 확신의 부족에 있다. 진실의 힘에 대하여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끈기 있게 확인해간다면, 진실이라는 신(神)의 손길에 이끌려 진실 곁에 이르게 되리라. 진실을 확신하는 사람은, 낙관의 마음으로 포기 없이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한, 아홉 번 우는 일을 겪더라도 마지막 열 번 째에는 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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