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
설렘도, 기대도 많았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수첩에 빼곡히 적어나갔다.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할 공부, 가고 싶은 곳 등⋯⋯.
하지만 방학이 시작되자, 내 수첩은 무용지물이 되어 갔다. 하지만 영어공부보다 여행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어낸 방학 이었다. 더 이상 책 속에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말이다.
나는 이번 여름방학 때 동아시아 대학생 평화⋅인권 캠프에 참가했다. 4박 5일간의 캠프를 위해, 선배들은 겨울부터 준비해 왔고 나는 5월부터 스터디에 참가했다. 처음에 스터디를 할 때는 졸리기도 했고, 과연 내가 이 캠프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나의 대학생활 첫 방학, 과연 내가 포기한 것들의 가치만큼 이 캠프를 통해 얻어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캠프 첫 날 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지금은 그런 모든 생각들이 기우(杞憂)였다고 생각한다.
4박 5일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이번 캠프의 주제는 5⋅18이었다. 어쩌면 한 학기 내내 내 생활은 5⋅18을 곁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5⋅18관련 교양강의를 들었고, 방학 때 스터디도 5⋅18내용이었고, 캠프의 주제도 5⋅18이었으니 말이다.

1. 필드워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필드워크 날 우리는 5⋅18국립묘지에 갔었다. 그때 사진실에서 본 글귀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캠프가 끝난 뒤에도 내 머릿속을 맴돌던 그 글귀⋯⋯.
국립묘지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셨던 분께서는 5⋅18을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역사이고, 얼마나 죽었는지 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미완의 사건”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인권유린의 현실과, 법과 언론의 왜곡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도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언론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권유린의 사례 등은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반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있어 5⋅18은 민주화, 군사독재, 시민군 등의 단어들을 연상시켰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뒤 내게 5⋅18은 인권유린이라는 단어를 추가시켜 주었다. 기본권마저 무시당하고 묵살당한 그들의 삶은 글자그대로 ‘인권유린’이었고, 우리 주변 곳곳에선 지금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5⋅18 자유공원은 1980년 당시의 상무대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왜곡된 법정, 왜곡된 언론의 모습, 그리고 영창 안을 보았다. 나는 인권유린에 이어 그 당시의 언론과 법정의 모습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영창안의 생활모습도 듣게 되었다. 교과서적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해도 내 마음을 실질적으로 울리는 것은 현장의 모습, 살아있는 증언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법과 언론은 조금의 거짓도 없이 정직할까? 우리는 왜곡된 법과 언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무비판적으로, 수동적으로 언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번 캠프를 통해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E. 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E. H.카의 그 말을 교과서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과거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고, 과거의 반성 없는 현재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 라는 유언을 남겼다.” -국립묘지에서 어떤 분의 묘비명 中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 라는 유언은 나를 또다시 부끄럽게 했다. 나는 지금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를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외치는 그의 유언 속에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에 그토록 간절함이 있는지 말이다. 내 주변에는 벌써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면 좋겠냐는 질문에 취업을 위해서 미리미리 어학공부나 자격증 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하라고 했던 선배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 캠프를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나에게 돌아온 반응은 “지루할 것 같다, 차라리 방학동안 토익 공부나 해라.”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씁쓸하고 슬펐다. 우리의 현실이 각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뭔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인권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방학동안의 나의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방학! 자격증시험이나, 어학시험에 몰두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이 캠프는 살아있는 공부였고, 내 자신만을 위한 방학과 공부가 아니라 내 주변의 역사와 사건들을 알아가는,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것을 취소하고 서울 근교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토익 책을 들고 취직 공부를 하는 그런 대학생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아니, 그건 싫었다.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싫은지는 분명했다.(딸)
유인물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나보다 나이 두엇 정도 젊은 그들은 감옥으로 갔고, 모든 미래를 어둠으로 내던져야 했다.“(5⦁18당시를 회고하며 어머니)
-「즐거운 나의 집」공지영

2.심포지엄
“당신이 우주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 당신은 당신의 마을을 알아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톨스토이”

처음 참가였고, 우리학교가 주최 학교라서 나는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기 보다는 시키는대로 수동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소극적이 되었던 것 같다.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변명아래 말이다. 하지만 심포지엄 시간을 통해 나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답이 먼저이고 질문이 그 다음이 아니라, 질문이 있어야 대답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심포지엄 내용에 관해 궁금한 것 들을 적어놓고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묻기 시작했다.
심포지엄 시간을 통해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지역, 나의 조상들의 역사인 그리고 지금까지 제주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4⋅3사건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고, 일본의 민주화과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서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일본의 민주화과정을 주제로 한 발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일본학생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물어보면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와 문화의 외교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캠프에 참가한 일본 학생들을 통해 일본의 민주화와 학생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들 또한 우리를 통해 5⋅18의 역사를 듣고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님의 강의도 빼놓을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캠프에 참가한 학생 중에 네팔과 케냐에 봉사활동을 갔다 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들을 통해 나는 빨리 교과서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교과서의 틀에서 교과서의 지식만 습득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교과서의 지식을 아는데서만 그쳤던 것이다. 용기가 없어 내가 배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교과서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되고 싶다. 교과서적 틀 안에서 무언 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운 지식들을 세상 속에 펼쳐 놓고 싶다.

이번 캠프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시간들이 아니었다.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고, 현재에도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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