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4년, 마지막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끝에 학교에서 실시하는 대학생봉사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냈다. 처음 대학생사회봉사협의회(이하 대사협)에 지원서를 내고 마음 졸였던 때를 기억한다. 내가 갈 곳은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앙코르와트로 이름난 곳이다. 난 이미 몇 번의 해외 경험이 있었던 터라 어디서 무슨 일을 시켜도 잘 해낼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이내 교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대학생사회봉사협의회 캄보디아 봉사단원들

우리 리빙필드(팀명)가 했던 일은 크게 4가지였다. 소각장 짓기, 보건위생, 무료급식(우리는 이것을 ‘밥퍼’라고 부른다.)그리고 교육봉사였다. 그 중에서 나는 무료급식을 맡았다. 33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뜨거운 밥김과 함께 밥을 퍼주는 일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힘들었던 며칠을 보낸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4학년 여름방학,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에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을 텐데, 더럽고 냄새나는 이 땅을 선택한 내 자신에게 회의감이 사무쳤다.
10분정도 떨어진 숙소에서 상쾌한 아침공기를 맞으며 차를 타고 센터에 도착한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물이 부족해서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없는 척박한 캄보디아. 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덕분에 며칠 동안 입으로 숨을 쉬어야만 했다. 빨지 못한 새까만 옷을 걸치고 손톱에는 때가,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리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와 ‘봉스라이(언니)~’를 외치며 안길 때는 그야말로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봉사를 하러 오긴 했으니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막상 닥친 현실 앞에서 마음과 행동에서 오는 괴리감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지치게 했다.
하지만 17일이 지나고 난 지금, 훌쩍 성장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는 센터에서도 코로 숨을 쉰다. 아이들처럼 내 손톱에도 때가 끼어도 환하게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다.
무료급식을 하며 내안의 나를 발견했다. 계란말이는 3번 마는 것이 정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으로 만든 계란말이를 보며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 안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한 평생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 벽돌 나르기, 수박 통째로 깎아보기, 계란말이 반으로 접어 지지기 등은 모든 것이 경험과 훈련이 되었다.

▲ 대학생사회봉사협의회 캄보디아 봉사단원중 밥퍼 팀원들

또한 나는 이번 모집 때 영상특기자로 선발되어 촬영으로, 편집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 리빙필드 단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27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다른 지역, 다른 학교, 다른 삶의 배경을 가졌다. 이렇게 모두 다른 색을 가졌지만 어울릴 때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어떤이는 풍선아트를 또 어떤이는 사진찍기를 하며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음에 행복했다.
성장의 크기를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제와 오늘의 나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말 땡볕에서 소각장을 짓느라 수고가 많았던 소각장팀, 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을 맞으며 밥을 펐던 밥퍼팀, 아이들 귀에 물 들어갈까 조심으로 봉사했던 보건팀까지 모두 하나같이 너무 수고 많았고, 그들의 섬김이 하나도 헛되지 않음을 나누고 싶다.

킬링필드(killing field)를 아는가?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학살로 크메르 루주 정권 때 공산혁명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가 정권을 잡기 위해 손에 굳은살이 없고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소위 말하는 지식층을 몰살시켰다. 지식인층이 없어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이 버거운 이 나라. 우리팀명의 이름답게 우리의 작은 노력과 수고가 더 이상 죽음의 땅이 아닌 리빙필드(living field)로 변화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더 풍성한 삶을 누리고 싶은 당신께 해외봉사를 권한다. 나만을 외치는 삶을 버리고 남을 위해 내 삶의 일부를 나눌 때, 오히려 더 큰 것으로 채워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가슴이 시키는 또 다른 일을 하러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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