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온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80년 5월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다. 5·18을 주제로 한 ‘화려한 휴가’의 주 촬영지가 광주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그렇다면 영화 속 이요원이 맡은 박신애 역도 우리 대학 출신 안성례 동문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영화 속 실제 촬영지와 인물들을 만나봤다./엮은이

S#075. 도청상황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양복쟁이 수습대책위원들. 그 앞에 격노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서 있는 흥수(안성기 분). 무기반납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이이던 그때, ‘꽝~’하고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민우(김상경 분). 민우, 가차없이 총을 천정에다 갈긴다.

(빠바빠바빠바 빵! 천정에 달려있던 샹들리에, 등, 유리창이 와장창 총탄에 맞아 떨어지고 깨지며 먼지를 날린다.)

일제히 탁자 아래로 숨는 수습위원들.

민우: 나……당신들처럼 대단한 사람 아니고 그냥 광주 시민, 그냥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들은 지금! 우리 손에 총을 쥐어 주고선 우릴 폭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총을 내놓으면 먼저 죽은 사람들은 영원히 폭도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폭도가 아니란 걸 밝히는 길은!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것뿐입니다. (양복쟁이들을 보며) 아시겠습니까?!

 나는 위의 S#75에 양복쟁이 수습대책위원으로 카메오, 깜짝출연했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우리는 구 도청에서 하루를 거의 다 소진했었다. 그러나 영화에 이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논란거리’여서 편집과정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다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틀간 첨단 세트장에도 출근했었다. 시민군을 규합한 흥수가 무장한 시민군 몇을 이끌고 도청으로 들어설 때 김 신부와 함께 이들을 맞이하는 장면과 도청 국기게양대에 민우가 조기를 계양하자 김 신부가 “그렇지. 도시 전체가 초상집이니 조기를 올려야 옳은 일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S#68). 여기서 나는 조기를 올려다보는 신부 뒤에서 양복쟁이 수습위원으로서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있는 모습으로 잠깐 비친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도 영화에 몰두하다 보면 못 볼 만큼 아주 잠깐 나온다.

▲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수습위원으로 까메오 출연했던 김영기 교수가 촬영장에서 영화배우 안성기 씨와 포즈를 취했다.

위의 ‘논란거리’가 된 내용을 촬영하면서 나는 ‘양복쟁이’ 수습위원들을 왜 이렇게 ‘비겁하게’ 묘사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민우가 회의석상에 뛰어 들어와 총을 갈기고 핏발선 눈으로 “……아시겠습니까?!”를 외칠 때마다 수습위원들은 벌벌 떨면서 책상 밑에 숨은 연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다. 나도 한 때는 우리 학교 5·18 연구소의 국제부장을 맡아 국제학술대회를 치렀고, ‘5·18을 학술적으로 국제 담론화하자’는 취지로 논문을 써서 국제학술지에 싣기도 하여 나름대로 안다는 축에 끼는데... 그때 이렇게 비겁한 사람들이 있었나……? 쉽게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모든 일을 선악으로 구분해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영화의 기본문법이려니……

그러나 나의 의문은 전남대학교(제발 ‘전남대’라고 쓰지 말자. 곡성 옥과의 모 학교와 헷갈린다.) 「5·18연구소」가 지난 5월에 주최한 학술대회장에서 어느 정도 풀어졌다. 당시 시민군 김상집(현 참여자치21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최후의 일 인,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하자’던 학생 지도자들이 모두 도망치고 나타나지 않자, 공수들의 총탄세례와 대검, 곤봉에 쓰러져가는 생명들을 목도하면서 시민들이 얼마나 큰 분노를 노출했는지 우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목숨을 건 시민들의 처절한 항쟁을 뒤로하고 도망친 점에 대해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광주를 대표하고 있는 현실을 동의할 수 없다.”

원통하게 폭도에다 빨갱이란 누명을 쓰고 쓰러져간 영령들을 위로하고, 목숨을 건 시민군들의 안전을 보장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막무가내로 ‘총기 회수’를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던 수습대책위원들이 지금은 오월항쟁의 대표를 자처하며 ‘민주·인권·평화’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결사항쟁’의 시민군과 ‘총기 먼저 회수하자’는 당시의 갈등을 이들은 민주인권평화라는 애매하고도 보편적인 의제로 두루뭉술하게 포섭하여 스스로를 변명하며 처절한 항쟁정신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노르만 핀겔슈타인의 ‘홀로코스트 산업’(신현승 역, 한겨레, 2004)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유대인 기구들이나 식자들이 나치의 대량학살을 왜곡하고 착취하면서 희생자들의 고통은 일종의 ‘사업꺼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 ‘장사꾼’들은 학살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챙기고, 나아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범죄적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라! 시오니즘의 이름으로 중동에서 자행되고 있는 야만적인 폭력과 학살을! 이것은 지구상에 또 다른 학살은 절대 없어져야 하고, 다른 이들의 억울한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자는 희생자들의 염원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 대학 5·18연구소는 최근에 ‘민주·인권·평화센터’로 확대 개편 되었다. 불협화음도 들린다.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냉정하게 반성해보자. 혹시 우리 대학은, 우리는, 우리들 중 누구는 5·18과의 인연을 계기로 5·18을 이득을 챙기는 도구로 활용하지는 않았는가? 숭고한 5·18 민중항쟁의 역사가 ‘꾼’들의 이전투구 ‘꺼리’로 착취되는 동안 논란거리를 우회한 ‘화려한 휴가’의 영화적 미덕은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역사의 진실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치 민우와 신애(이요원 분)의 결혼식 같은 스틸사진에서 모두들 웃지만 살아남은 신애만 눈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우울하고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과 고뇌이리라. 감독의 의도가 압축된 장면이다. 역사의 포효 앞에 수습대책원들이 쥐처럼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고 고개를 쳐박듯이 ‘꾼’들은 잠깐 동안은 진실을 왜곡하고 착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다시 고개를 쳐들고 나와 탐욕의 눈으로 ‘꺼리’를 찾겠지만, 정작 역사의 의미는 모르리라.

혹시 이런 ‘꾼’들 중 하나가 내게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른다. ‘그 때 넌 뭐 했는디? 암 것도 모른 것들이……’ ‘군 제대하고 시골 집이서 날마다 퍼질러 잤는디. 왜? 어느 날 잠에서 깨나 봉깨 요상시런 소문이 들리드라고... 시망스런 친구들이랑 광주를 가볼랑깨 못 가것드라고. 광주로 가는 뻐스가 읍어서…….’ 아, ‘꾼’들에게도 이런 어설픈 변명을 해야 하는 부재자의 슬픔이여! 우리 지역에서 이런 소리 안 듣고 살려면 모 모 고등학교를 나오거나, 데모하다 짤리거나, 지명수배 정도는 당해야 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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