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보다 더 뜨거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정이었다. 열정과 꿈을 품은 우리 대학 학생 750명이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다녀왔다. 국토 대장정, 국제워크캠프, 세계교육기행, 해외현장실습…. 좌충우돌 그들의 여행담을 들어보자. /엮은이

 중국 옌타이 현장 실습

“이제 어떤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

12일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고 행복했던 중국 옌타이에서의 추억과 배움을 이 짧은 글에 담으려니 무슨 이야기부터 써야할지 망설여진다.

 우리는 중국에 출발하기 전 부푼 마음으로 중국어 강의를 일주일 동안 받았고, 12일 간의 현장실습을 하기위해 중국 옌타이로 향했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기본으로 3개 국어쯤은 그냥 하는 중국 대학원생들, 중국 로펌 변호사로 일하고 계시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하시는 꿈 많은 마리 선생님, 새벽부터 일어나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자리가 부족해 운동장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공부하고 있는 중국 학생들, 한국인 보다 한국어를 더 잘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한국어과 효정언니를 보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기억 남는 이야기는 중국인이 죽을 때까지 못해본다는 3가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첫 번째는 땅이 너무 넓어 다 가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 두 번째는 음식의 종류가 너무 많아 모두 먹어보지 못한다는 것, 세 번째는 지역 방언들이 많아 언어를 모두 습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 곳을 가는데도 4~5시간이면 충분히 갈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하루쯤은 기본이라고 한다. 우리는 옌타이에서 다음 날 태산 등반을 위해 이동을 해야 했는데, 이동하는 시간이 6시간이나 걸려 모두 피곤해했다. 하지만 항상 익숙해져 있는지 가이드는 6시간동안 지친 기색 없이 그의 지식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 끼마다 다른 모양, 다른 맛의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는데 중국음식의 다양성과 맛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국 옌타이대학교 법대 학술교류 세미나 참가, 옌타이의 법원과 검찰, 중국 로펌 방문, 한국 기업은행 지점장님의 특강, 포도주박물관 방문, 공자님의 고향인 곡부 방문, 골프 클럽하우스 방문, 태산, 지난의 표돌천 공원 등 많은 곳들을 방문했다.

이번 현장실습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배움에 있어서나 어떤 일에 도전할 때 지침을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기회가 있다면 참가하고 싶고, 다른 학생들 역시 이런 현장실습에 관심을 가지고 참가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9명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많은 곳들을 가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이철환 교수님과 정영진 교수님, 현장실습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 학교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변혜정 (행정·3)

도쿄 국제 워크 캠프
“더 넓어진 시야, 달라진 나를 발견하다”

나는 이번 여름방학에 국제워크캠프를 통해서 일본 CIEEJ에서 주최하는 Meisei Summer School Project(MSSP)에 참가했다. 도쿄 히노시에 위치한 메세이대학교에서 주최한 MSSP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까지 영어에 흥미를 잃어버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젝트이다. 원래 메세이대 학생들만 참여했지만 2년 전부터는 국제자원봉사자들도 참가할 수 있게 됐다. 

나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온 캠퍼들, 총 11명과 함께한 이번 캠프는 7월 21일부터 8월 5일까지 활동하였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워크숍을 들으며 수업준비를 했다. 수업은 둘째 주부터 시작됐다. 나는 오스트리아 참가자 요안나와 함께 영어를 가르쳤다. 9~10살 아이들이었는데 너무 귀여웠다. 우리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 위주의 수업 보다는 활동에 중점을 두고 각종 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영어에 흥미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을 소개 할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월드컵 때 우리가 썼던 붉은악마 머리띠와 지도, 태극기, 신문, 음식 사진, 일본에서 유명한 연예인사진을 가져갔었다. 수업 준비를 잘해왔다고 같은 팀 친구들이 좋아했다.

특히 한류열풍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바로 연예인이었다. 보아는 정말 젊은 일본 친구들이 거의 다 좋아했다. 매일 저녁에는 2명씩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들었는데 나는 김치찌개와 불고기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어 기뻤다. 그런데 유럽의 친구들은 너무 맵다고 잘 먹지 못했지만 불고기는 맛있다고 잘 먹었다.

마지막 날 폐회식에서 9살짜리 마나라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영어로 편지를 써서 주었다. 3문장의 짧은 글이었지만 정말 감동받았다. 이번 캠프는 홀로 떠나는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나는 이 캠프를 통해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나 또한 영어를 배우고, 일어도 배우면서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진 나를 느꼈다. 특히 영어 회화의 중요성을 느꼈다. 내겐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할 좀 더 분명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16일 동안 원활한 진행으로 우리들을 정성껏 도와주고 배려해 준 일본 캠퍼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대화 뿐 만이 아니라 표정과 마음으로 그 진심들이 다 느껴졌기에 가슴 따뜻한 시간들이었다. 워크캠프는 스무 살인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조희경 (국어국문·2)

세계 교육기행, 터키를 가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영원한 나의 로망”
 

터키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분명히 전날 밤, 마지막 일정이었던 도시 셀축에서 다시 이스탄불로 가는 심야버스를 탔었는데 한참을 자다 눈을 떠보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밤이었는데 어느새 어스름하게 밝아지는 새벽이었고, 달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시동조차 꺼진 채 멈춰 있고, 꽉꽉 사람들이 가득했던 버스 안은 우리만 남겨둔 채 텅텅 비어있었다. 순간 이상하고 불안한 기분. 이제 마지막 날인데.. 멍한 마음에 창 밖을 한참이나 쳐다보는데 갑자기 바다가 보였다. 우리를 싣고 있는 이 버스는 지금 바다 위에 있는 것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친구들을 깨워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불안하던 마음은 바다를 바라보며 차이(터키 전통 차)를 마시는,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보니 안심이 됐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냐 물어보니 보스포러스란다. 그 오랜 터키의 역사를 함께 안고 있다는, 아시아와 유럽을 함께 끼고 있다는. 그 보스포러스 해협이었다. 그런데 그때 바다 저 끝에서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터키에 있던 2주동안 그렇게 보고싶었던, 하지만 단 한번도 못 봤던 일출을 뜻하지 않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뿐만 아니라 터키에 있는 내내 터키는 우리에게 그렇게 깜짝 선물의 연속이었고 선물 그 자체였다.

   나는 학교에서 지원하는 세계교육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방학 터키를 다녀왔다. 터키에 가기로 확정 된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물어봤다. 왜 하필 터키로 가냐고, 말도 안 통할텐데, 지금쯤 아주 더울텐데 하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그럴때마다 난 몇 달째 들고만 다니는 터키어 회화책을 보여주면서 걱정없다고 잘할 수 있다고 터키는 예전부터 나의 로망이었다고 그깟 더위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과는 말이 안 통해 표정으로, 바디 랭귀지로만 겨우 어렵게 의사소통했고 지중해에 있는 도시들에선 마치 태양이 공기중에 떠다니는 것처럼 숨막히는 더위였고, 어딜가나 쉽지 않았다. 가끔은 식당이나 택시에서 바가지도 왕창 썼고. 반면에 형제의 나라 코레에서 왔다고 손을 잡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애플티 한잔 마시고 가라고 손짓해주기도 하고, 함께 사진찍자며 순식간에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단 한군데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곳이 없었고, 단 한순간도 터키에 간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터키는 이렇게 뜨겁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우며 재밌는 곳이었다. 몹시.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유럽을 한 바퀴 돌아야지 했던 생각은 다시 한번 더 터키를 와야지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까만머리에 노란 피부를 가진 동양인 여자애에게 거리낌 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Merhaba! 라고 웃으며 인사해주던 터키 사람들을 난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박수연 (문헌정보·3)

총학생회 주최 제 1기 국토대장정
“그 길,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국토대장정을 다녀온지 꼭 한달이다. 그동안 바쁜 일상을 보내며 지난 추억을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난 18일 우리학교 통일대축전 때 우리의 모습들이 짧은 영상으로 나오자 그때의 기억들이 뭉글뭉글 피었다.

‘통일이 되면 도라산부터 백두산까지 다 못한 국토대장정을 꼭 다시 모여 함께 하고 싶다’는 자막을 보며 ‘음, 편집 잘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내 가슴속엔 더 생생한 영상이 있질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 졌다.

내가 다녀온 국토대장정은 우리학교 학생회에서 올해 처음 준비한 것이었다. 다른 국토대장정도 그럴까? 걸으며 우리 땅의 자연도 느끼고, 물집도 잡혀보고 여러 경험들이 있지만 우리는 걷는 것 만이 아닌 모든 것을 우리가 해야했다. 오늘 잘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출발하기도 했고 밥이 제대로 되질 않아 3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기도 했으며 ‘5분만 더 가면 된다. 힘내자!’ 연신 소리쳤으나 길을 잘못 들어 결국 해가 다 지고서야 숙소에 도착하기도 했다.

첫날 기억이 난다. 더운 날씨 속에서 첫 걸음이라 조금은 긴장된 분위기. 따라다니는 방송국 카메라에 어색한 표정들을 짓던 그때, 비를 맞으며 깜깜해서야 도착한 숙소에서 자정을 넘겨 겨우 잠이 드는데, 아닌 밤중에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빗물. 새벽까지 물과 씨름을 하던 그 첫출발이 아니었더라면 ‘다음에 이 멤버 그대로 또 갈까?’ 하며 아쉬워하던 마지막 밤도, 그대들이 자랑스럽다는 프랑 한귀퉁이도, 자신의 이름을 보며 감흥에 젖었던 임진각에서의 기억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 어색해 하며 자기 아는 사람하고만 꼭 붙어 걷던 하루하루가 모여서 발도장 티에 적힌 ‘대장정 끝나도 또 만나요’ 하는 수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친구들, 아니 비록 서로 다른 이유로 국토대장정을 참여했지만 해남에서부터 임진각까지 함께 동고동락한 같은 길을 걸어간 동지들이다. 정말로 같은 곳 바라보며 살아갈 커플들도 생기고 고소공포증에 차마 눈을 못뜨는 친구를 위해 양옆에서 손 꼭 잡고 함께 노래를 불러주던 친구들도 있고…….

‘가방도 없으니 이걸 책가방으로 써야겠다’며 배낭을 들어보이자 ‘아서라’ 하던 그 모든 사람들이 생각난다. 앞 만보고 뛰어가길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또 언제 서로의 일상이 맞부딪힐지 모르겠다. 가끔씩 있던 뒤풀이도 이젠 끝났고 지난 일요일 통일대축전 같은 행사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래도 남은 짧은 대학생활 동안 몇 번 스쳐지나가지 않겠는가? 가끔씩 입었던 옷들과 뭐라고 하든 난 책가방으로 쓸 배낭을 보며 여기 못 쓴 추억들을 생각해 본다.
김종호(경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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