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 강의 초
야생동물에게 배운다

나무, 새, 짐승 등의 자연은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실제로 우리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는 데에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연보호는 생태계의 보전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으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생태계에는 식물과 동물이 함께 포함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태계에 속하는 식물과 동물을 다같이 보전하려는 노력이 자연보호인데, 그 중에서도 야생동물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 있는 홍도와 흑산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릴 만큼 많은 철새들의 환승역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려 300여종의 여름과 겨울 철새들이 관찰되어 새들의 만남의 장임이 분명하게 밝혀졌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비무장지대 (DMZ) 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의 통행이 제한된 결과 그 안에는500여종의 식물과 100여종의 곤충 그리고 20여종의 어류가 잘 보존되어있어서 최근에는 DMZ를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997년에 출범한 DMZ포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미국은 물론 러시아, 중국, 일본의 학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과 남북대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DMZ가 평화를 상징하는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할 날도 먼 훗날의 얘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은 다른 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자동차가 많아진 나머지 차에 치어 죽는 야생동물의 수가 일간지에 보도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통계를 보면 1998년 이후 고라니, 너구리 등 모두 여덟 가지의 동물 6,338마리가 자동차 사고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의내과학을 전공한 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학생들에게 야생동물질병학을 아울러 가르쳤습니다. 수의학은 전통적으로 농용동물 (다른 말로는 식품생산동물) 의 질병을 다루어왔는데, 선진국에서는 삶의 질이 높아짐에 따라 동물원이 늘어나고 동물원에 근무하는 수의사들이 취급하는 동물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교과과정에 야생동물질병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 추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입니다.
야생동물질병학에서 다루는 동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사람에게 잡혀와 동물원에서 사는 동물원동물이고, 다른 하나는 황야에서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야생동물입니다. 두 가지 동물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의 차이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 중 두드러진 것은 발생하는 질병과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원동물에서 발생하는 질병은 애완동물을 포함한 가축이나 사람에서 옮기는 것들이 많은 반면 야생동물에서 발생하는 질병은 모여 사는 습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동물원에서는 자연환경을 그대로 만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수용되는 동물들이 야생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는 이들 동물들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위주로 강의하면서도 그들의 행태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질병의 경우 그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많이 알려져 있어서 가축에 적용하는 진단방법을 적용하면 진단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동물의 행태에 관해서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학자들이 한 가지씩 밝혀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람은 아주 많은 것을 자연에서 배우며 살아갑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온 야생동물의 행태 중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는 했습니다. 이제 저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랄 수 있는 정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난날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몇 가지 동물들의 행태와, 동물과 관련된 사람의 행동이 특히 정년을 맞이한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보르네오에서는 원숭이를 이렇게 잡는다고 합니다. 코코넛 열매를 따서 구멍을 내되 그 크기를 원숭이가 손을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무엇을 움켜쥐고는 꺼낼 수 없을 정도로 합니다. 구멍 낸 열매를 나뭇가지나 말뚝에 매어놓고 그 속에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을 넣습니다. 냄새를 맡고 다가온 원숭이가 코코넛 속에 손을 넣고 향기 나는 것을 움켜쥡니다. 그러면 이내 덫에 걸리고 맙니다. 사냥꾼이 다가오면 놀라 질색하지만 도망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저는 무엇이 원숭이를 덫에 걸리게 만들었는가 생각해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덫을 만든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원숭이가 움켜쥔 것을 버리기만 하면 덫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기에, 덫에 걸리게 만든 건 바로 원숭이의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줄곧 무엇엔가 집착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한때 또는 무상한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바둑에는 사석작전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자신을 버려야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집착을 버리면 적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자신뿐이라고 합니다. 내 능력 밖의 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빨리 알아차리고,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고 때로는 뜻밖의 기쁨도 맛볼 수 있습니다.

2007년은 돼지의 해입니다. 돼지라고 하면 우리는 곧 '지저분하고 미련하며 욕심 많은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런 생각은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돼지는 지저분한 동물이 아닙니다. 여러 마리를 좁은 공간에 억지로 집어넣어 기르기 때문이지 사는 공간만 넓으면 자는 자리, 먹는 자리, 배설하는 자리를 꼭 구별하는 동물입니다. 다음으로 돼지는 미련한 동물이 아닙니다. 훈련만 제대로 받으면 개만큼 지각능력이 발달합니다. 끝으로 돼지는 욕심 많은 동물이 아닙니다. 여러 마리가 함께 사는 바람에 경쟁심이 생겨서 먹이를 보면 허겁지겁 달려드는 것이지 일단 배를 채우고 나면 더는 먹지 않습니다.
게다가 돼지의 몸 속 장기나 면역체계는 인간의 것과 가장 비슷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자들이 돼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돼지의 수정란이나 정자에 사람의 유전자를 넣는 방법으로 장기이식용 돼지를 생산하는 연구결과를 속속 발표합니다. 머지않아 그렇게 생산된 돼지의 장기를 달고 사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돼지는 신화에서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제사의식에서는 희생물로, 그리고 집안에서는 수호신이나 재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돼지꿈을 꾸면 사람들은 복권을 삽니다. 반면 속담에서는 흔히 탐욕스럽고 우둔한 동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사람도 때로는 돼지 못지않게 우둔한 행동을 합니다. 한 예를 들면 후한서 (後漢書) 의 주부전 (朱浮傳) 에 요동시 (遼東豕) 라는 말이 나옵니다. 요동은 중국의 요동지역이고, 시는 돼지라는 뜻이니 요동의 돼지라는 말입니다.
요동에 돼지를 기르는 농부가 있었는데 그가 기르는 돼지는 모두 검은 돼지였으며, 그가 사는 곳의 돼지도 모두 검은 색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검은 돼지가 흰색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것을 아주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긴 그 농부는 흰 돼지를 천자에게 바치면 벼슬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소중하게 안고 길을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농부는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으며, 배 안에서도 그는 돼지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는 농부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농부는 귀한 돼지를 천자에게 바치러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가 껄껄대고 웃었습니다. 농부는 사람들이 왜 웃는지를 몰랐습니다. 농부가 배에서 내린 곳은 강동 땅이었습니다. 이윽고 어느 마을로 들어가 보니 거기서 기르는 돼지는 뜻밖에도 모두 흰색이었습니다. 그제야 배에 탔던 사람들이 웃은 이유를 알아차린 농부는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요동시라는 말은 견문이 좁아서 세상일을 모르고 저 혼자 득의양양함을 비유하거나 식견이 좁아서 제가 잘난 체하지만 남이 보기에는 별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입니다. 우리는 가끔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만 옳다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을 봅니다. 1960년대에 월남에서 개량된 난쟁이 돼지는 유럽이나 북미의 여러 나라로 퍼져 개나 고양이 대신 애완동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영리해서 사람의 말을 많이 알아듣고, 온순하며 조용해서 사람과 함께 산보도 다니는 돼지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돼지에 관한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미주에서만 볼 수 있는 벌새 Hummingbirds 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곤충과 새의 중간쯤에 있는 동물로, 다 자란 무게가 5 ~ 6 그램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입니다. 심장의 무게가 체중의 20%에 달하고, 1초에 평균 80번이나 날개를 퍼덕이는 이 새는 곤충이나 넥타를 먹고 사는데, 길고 가는 부리로 하루에 체중의 한 배 반이나 되는 넥타를 빨아먹습니다. 벌새는 상하 ㆍ 전후 ㆍ 좌우로 날 수 있으며, 공중에서 그대로 멈출 수도 있습니다. 약 330종의 벌새가 존재하며 그 중 16종은 멕시코의 북부에서 관찰되는데, 시속 95킬로미터로 날아 멕시코에서 알래스카까지 4,0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종도 있습니다.
야생에서의 수명이 5 ~ 6년인 벌새는 심장박동수가 1분에 평균 500번이지만 기온이 낮거나 먹이가 부족할 때는 그 수를 평균 30번으로 줄입니다. 밤에는 제 둥지나 동굴에서 잠을 자며, 잠이 들면 곧바로 동면하는 동물이 보이는 것과 같은 무반응 상태에 빠짐으로써 신진대사를 줄여 새벽까지 기아상태를 모면합니다. 아침햇볕에 몸이 따뜻해지면 그 힘으로 곧바로 먹이사냥에 들어갑니다. 미국에서는 벌새를 보고 즐기기 위하여 백설탕을 물에 녹여 그들이 먹을 수 있게 특별히 고안된 먹이통에 담아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습니다.
벌새는 우리에게 휴식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사람이 쉴 때는 몸과 마음을 함께 쉬어주어야 하는데, 요즘 많은 사람들은 휴가를 일터에서 몸만 떠나는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휴가를 떠나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휴식을 취하면 자기의 피로회복에 가장 좋은지 알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잠을 많이 자는 것으로 피로를 회복하고, 다른 사람은 오락을 즐기는 방법으로 피로를 회복합니다. 재미있는 소설 속에 빠져들기 ㆍ 조깅 ㆍ 걷기 ㆍ 수영 ㆍ 정원 가꾸기 등이 피로회복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바쁜 하루 중에 잠시 짬을 내어 휴식을 취하는 것은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일입니다. 하루 한 번 5 ~ 10분간 조용히 앉아서, 주위에서 나는 소리나 자신의 정서상태에 정신을 집중하고 목 ㆍ 어깨 ㆍ 팔 ㆍ 가슴에 긴장감이 있는지 확인해보노라면 심장박동수가 줄어들고 혈압이 내려갑니다.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들을 주변에 두고 큰 소리로 웃거나, 유머를 모아 두고 읽으며 웃는 것도 좋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는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을 들으면 도움이 됩니다. 편안하게 즐겼던 휴가의 한 장면을 연상해도 좋고, 고요한 숲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해도 좋습니다. 밖으로 나가 아무 생각 없이한 10분간 걷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식호흡으로 숨을 깊이 쉬어 호흡수를 1분에 여섯 번으로 줄이면 어깨가 펴지고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잘 낸다는 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습성을 이용해서 일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고 합니다. 사람 두세 명이 술독에 정종을 담아 밧줄과 함께 들고 원숭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갑니다. 나무위로 도망쳐 올라가서 사람을 주시하는 원숭이들을 모른 척 놔두고 술을 서로 권하며 마시는 시늉을 합니다. 그런 다음 밧줄로 서로를 칭칭 동여매는 놀이를 하다가 술과 밧줄을 그 자리에 두고 물러납니다. 멀리서 지켜보면 녀석들이 곧장 나무에서 내려와 술을 마시고 취한 다음 서로를 동여매는 놀이를 합니다. 이때 사람이 달려가 동여매진 녀석을 끌고 오면 됩니다.
원숭이들의 이런 행태는 남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신문, 라디오, TV에 나오는 것들을 분별없이 모두 옳은 것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신문에서 읽은 것이나 소위 박사들, 과학자들, 정치가들, 라디오 ㆍ TV에 나오는 유명인사들, 전문가들, 그리고 권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모두 그대로 믿어버리는 바람에 발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믿음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의문을 가져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요가에서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려받은 모든 악한 것들이 사고를 명료하게 함으로써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의 명료성을 천부적으로 타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하여 배워야 하며, 경험이라는 고통을 통하여 스스로 배우거나 일부는 경험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가르침과 토론에 의해서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지식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남이 하는 말을 여과하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레밍 Lemmings 이라는 생쥐와 비슷한 작은 설치류가 살고 있습니다. 몸길이 8 ~ 15 cm에 꼬리 길이는 1.5 cm 이며, 무게는 30 ~ 110 g으로 주로 툰드라, 삼림지대, 늪지대 등 습한 곳에서 이끼나 풀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입니다. 족제비, 여우, 올빼미, 늑대 등의 먹이 감이지만 5주마다 약 8마리의 새끼를 낳는 강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연이 그 수가 3 ~ 4년을 주기로 크게 불어납니다. 수가 불어나면 먹이가 부족하게 되어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나그네쥐'라고도 부릅니다.
레밍은 한 방향으로 집단을 이루어 이동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떼를 지어 살던 중 어느 날 앞에 있는 녀석들이 뛰기 시작하면 뒤에 있던 녀석들도 덩달아 뛰게 됩니다. 맹렬하게 추격해오는 뒤 놈들의 기세가 두려워 앞의 쥐들은 더 힘껏 달리게 되고, 이에 뒤질세라 뒤의 쥐들 역시 온 힘을 다해서 뜁니다. 이 황당한 질주는 절벽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끝을 맺게 됩니다.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왜 이겨야 하는지를 망각하고 죽음의 질주를 하는 레밍의 행태는 극심한 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의 행태는 삶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채 그저 살다가 가는 대부분의 우리 인간의 삶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삶이란 태어나서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것 이상일 터인데 우리는 삶에 의미 따위는 두지 않고 살고 있으며,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답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자와 같은 성인도 제자 계로가 죽음에 대해 묻자 (논어, 선진), "아직 삶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했으니 범인들이 삶의 의미를 천착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삶은 내 안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현재의 충만함에 진정한 삶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충실해야 하며,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예를 든 몇 가지 동물들의 행태와 동물과 관련된 사람의 행동은 지난날의 저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누구였던가? 라는 물음에 무상한 것들에 집착하여 스스로 고통 받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만 옳다고 우기기도 했으며, 일상에 짓눌리는 심신을 쉬게 할 줄도 몰랐고, 남들이 하는 일이나 따라 하느라고 정신없이 살면서, 삶의 의미 같은 것에는 관심도 갖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밖에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정년이라는 말에는 늙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태어난 사람은 늙게 마련인데,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면 경망스런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다고 늙음을 한탄하며 슬퍼하면 속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경망스럽지도 속되지도 않으려면 늙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늙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말입니다. 정년 후의 저의 삶은 다른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속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다듬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길(수의학․수의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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