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는 당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혹 인생을 다시 사실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다르게 살아 보고 싶으십니까?

 

만약 나의 인생이 다시 한번 대학 생활로 돌아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무슨 전공을 하겠습니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만족하신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다시 한번 더 살아 보고 이곳저곳 좀 더 충실하게 살고 싶다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 보고 싶다든지 말입니다. 저는 1958년 화학공학을 전공하겠다고 전남대학교 공과대학에 들어 왔습니다. 그 당시 화학공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잘 알지 못하고 그냥 들어 온 것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선생님께서 대략 공과대학의 진로에 대해 간결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만 아마도 누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어도 남의 경험담과 권유만으로 진로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밖의 주위를 둘러보면 그 당시 화학공학을 공부하면 나주 비료공장에도 들어 갈수 있겠고 울산의 화학공장 또는 정유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 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의 어느 화학생산 공장에서도 나의 꿈을 펼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믿고 공부했습니다. 내가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생각은 일찍이 저의 선친께서 결정 해 주셨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선친께서는 저를 공학박사라 부르셨습니다. 제가 손 재주가 좀 있어서 무엇을 꼼꼼히 잘 만든다고 해서 부르신 것인데 이것이 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집안내의 주위를 둘러보면 세 형님들의 전공 분야가 영문학, 의학, 법학이어서 공학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은 채 나의 진로가 결정된 것입니다. 일학년에 들어 가 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수학, 물리, 화학 외 교양과목으로 영·국문학, 철학, 경제, 법학, 종교 등을 배우는데 왜 처음부터 공학을 가르치지 않고 공학과 거리가 먼 과목만 배워야 하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이 중요한 과목들을 소홀히 했고 많은 귀한 진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틈나는 대로 이 분야의 책들을 구입해 읽어 봅니다. 이것을 평생교육이라고도 합니다. 공과 대학 대학원 과목의 ‘공정제어’를 수강하는 학생 중에 경제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1970년대 오일파동으로 많은 회사들이 큰 고통을 겪었고 그 당시 미시간주의 실업률이 20%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무엇이 실직율을 높이는 변수인지 규명하고 다시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공정제어의 원리를 적용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 스토리는 한 분야의 원리가 다른 분야에 적용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효과를 암시합니다. 저는 박사학위가 끝나갈 즈음 대학 교수가 될 것을 생각하고 교육학과의 과목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 예로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Benjamin Bloom (1913-1999)의 Mastery Learning에서 Taxonomy를 배우게 되었고 이 이론이 나의 대학교육 지침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는 프랑스-이태리계 사회학자며 경제학자인 Vilfredo Pareto (1848-1923)는 국내 부(wealth)의 분포를 연구 중 국가 전체의 부의 70~80%가 인구의 20~30%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은 생산 공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문제와 그 원인들을 분석해보면 70~80%의 문제는 20~30%의 원인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입니다. 혹 우리가 앓고 있는 병과 그 병이 발병케 하는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여기에도 Pareto의 논리가 적용이 될까요?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을 분석해 보면 여기에도 적용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철학은 나에게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격자를 형성하는데 일조했고 심리학은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내 동포와 외국인들을 내 형제와 이웃처럼 이해하고 아낄 수 있는 귀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법학은 친근감이 드는 따뜻한 사회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바람막이라 보았고 경제는 내 일생을 통해 돈 관리의 중요성을 배우게 했습니다.

 

다시 대학을 다니게 된다면 이처럼 인문과 사회학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떨어지는 단풍잎이나 벚꽃을 보며 시를 읊을 수 있다면 나의 인생이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교양과목으로서의 국·영문학도 잘 배워 국·영문학자들의 연구 논문도 읽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초를 쌓고 싶습니다. 음악의 기초 이론과 악기를 최소한 하나를 다룰 수 있게 노력도 하고 싶습니다. 주말이면 스케치북을 끼고 산천을 찾아 수채화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종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공은 무엇으로 할까요? 전공으로는 역시 화학공학을 다시 할 것입니다. 이 분야는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고 좌절도 주었으나 많은 보람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화학공학은 우리 조국이 필요한 과학기술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믿습니다. 나의 전공이 내가 짓는 인생의 기둥이라면 교양과목들은 지붕이라 부를 수 있고 종교는 이렇게 지은 집이 흔들리지 않게 설 수 있는 단단한 기초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전남대학교가 학생들에게 주는 이러한 학문의 넓이와 깊이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 견주어도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기회는 이미 우리 근처에 있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공 분야와 훌륭한 교수진은 여러분의 요구를 충족해 줄 것 입니다. 일학년 때부터 사학년 까지 알차게 채워진 모든 과목들은 하나하나 잘 배울 가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