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마침내 분단 57년 만에 경의선과 동해선의 열차시험운행이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18일부터 광주에서는 5·18민주화운동 27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기념행사들이 열렸다. 열차시험운행을 두고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은 북측과는 달리, 남측의 정부와 매스컴들은 환영과 기대감속에 여러 가지 감격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4월 통일꿈나무 식목 행사차 개성공단을 다녀왔던 감회가 남달리 새롭게 각인되었다. 개성공단 개발사업은 1998년 6월,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재벌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추진된 사업이다. 남북한은 개성공단을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인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결합하여 세계적인 경제특구로 개발할 예정에 있었다. 현대 아산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2003년 6월에 시작된 1단계 공사(약 330만평 규모)는 2007년 완공을 향해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24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남측은 800명이 개성공단에 상주해 있고 500명은 매일 출퇴근하고 있으며, 북측은 개성시의 노동인구 13,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개성공단은 향후 총 2,500만평이 개발되고, 2,000개 업체가 입주하여 총 35만 명의 고용효과를 낼 예정이다. 지리적으로도 판문점에서 겨우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개성은 인천까지의 거리가 30㎞에 불과해서, 향후 6차선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개성공단의 생산품이 인천공항까지 운송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겨우 35분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개성은 고려 500년 도읍지로 옛 이름은 송악이다. 예로부터 송악산(488m)의 형국이 회임한 부인네가 머리를 풀고 편히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이고 그 앞쪽으로 자남산(子男山)까지 있고 보니, 아마도 오래전부터 민족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남북 경협의 잉태 과정을 거쳐 바야흐로 옥동자를 순산했음인가. 하지만 옥동자를 무사히 순산했다고 해서 남북이 모두 할 일을 다한 것은 아니다. 천지신명께 기도하여 50여년 만에 어렵게 얻은 귀한 자식이 성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남북은 어진 부모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개성공단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시되는 현안은 바로 지난달 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FTA협상 개시를 선언한 지 14개월 만인 지난 4월 2일 양국 정부는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4월 24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발표한 <한미FTA협상 종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총 88개 쟁점의 분석 결과 미국안은 총 77%(미국안 60개, 조건부 4개)가 반영된 반면, 한국안은 8%(한국안 4개, 조건부 3개)에 불과하였고, 한국안과 미국안이 모두 반영된 경우는 총 14%(12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개 쟁점은 결정되지 않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 내 연방정부의 제반 법률과 주정부의 법률에 따라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밀실, 졸속, 퍼주기 협상으로 비난받아 온 한국정부는 최소한 개성공단이 반드시 역외가공지역(OPZ)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한국과 미국은 협정 발효 1년 뒤에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설치하되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노동ㆍ환경기준 충족 등의 요건을 따져 일정 지역을 OPZ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별도 부속서를 채택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이 실제 OPZ에 해당될 수 있을 지 여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교역법상 많은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여러 가지 장애요인들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4일 개성공단 식목 행사 때 송악산에 심었던 전남 광양의 매화나무에서 청록빛 매실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희소식’은 개성공단의 앞날을 밝게 하는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