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온지 4일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아침식사 식사 때마다 매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지 물었다.
“친구는 많이 사귀었고?”
“어제 재밌는 애하고 짝꿍이 됐어요. 수학을 좋아해요.”
“교회 다니는 애들은 없고?”
“잘 모르겠어요. 이곳에 교회는 이번이 처음 세워지는 거라면서요.”
“여긴 너무 시골이라 예배에 몇이나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 오시면 집들이 겸해서 너희 반 애들 초대하자.”
“아직요. 좀 더 친해지고 나면요. 이제 계속 여기에 살 거잖아요. 천천히 해도 돼요.”
어머니는 내 마지막 말에 안심하며 말했다.
“그래야지.”

일러스트 : 삽화 이정현(미술·3)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가 자전거를 탔다. 이사 온 뒤 급하게 구한 중고 자전거였지만 오른쪽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말고는 어딜 봐도 새 것 같았다. 이곳은 도로 옆으로 논과 하우스들이 보이는 시골이다. 근처에 하나뿐인 학교는 전교생을 합쳐도 백이 넘지 않는 작은 규모였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여서 굳이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탄다고 해도 배차 간격이 일정치 않아 불편했다. 그런 곳에서 자전거만큼 효율적인 교통수단도 없을 것이다. 탁 트인 도로를 아침마다 달리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전학 온 첫날 자리배정을 할 때 담임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나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 그는 내가 나를 스스로 소개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소개 시간을 마쳤다. 담임은 나에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라고만 말하고 하고 당혹스럽게도 그냥 나가버렸다. 무심한 선생님이었다. 그가 별 신경을 쓰지 않은 탓으로 ‘좋지 않은 소문을 묻히고 들어온 전학생’인 나는 맨 뒷자리에 가서 짝꿍도 없이 혼자 앉아야했다. 수학시간이 되자 다시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수업을 한참 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눈썹을 약간 들어 올리면서 괜찮은지 물었다. 네? 라고 되묻자 그는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느냐, 라고 다시 물었다. 나는 안경을 만지며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칠판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빈 걸상이라도 옆에 두면 좋으련만 그것도 없이 내 옆자리는 아주 텅 비어있었다. 처음엔 내가 이전에 있던 학교에서 했던 일 때문에 선생님이 저러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그런 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이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나에 대한 나쁜 소문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억양으로 말하고 시골아이 답지 않은 깔끔한 차림으로 다녀 그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음날부터 차림을 그들처럼 바꾸고 그들의 억양을 따라했다. 물론 억양을 금세 따라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나의 틀린 억양이 어색해서 그들은 종종 웃었고, 오히려 어색한 억양 덕에 날 어려워하던 아이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부반장을 맡고 있는 선이라는 여자애가 내 등을 치며 말을 걸었다.
“학교로 넘어오는 길에 짓고 있는 거 네 집이지?”
“교회가 내 집은 아니지. - 그 옆에 살아.”
“아빠가 목사야? 멋있구나.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 거 있어? 피아노 칠 줄 알아? 알면 좀 가르쳐 줄래? 어디에서 왔다고? 말하는 거 보니까 거기 사투리 안 쓰네?”
“게임 좋아해.”
“컴퓨터 게임? 손가락이 길어서 악기를 다루나 보다 했는데 그냥 게임 좋아하는 구나.”
“그런 게임 말고.”
“됐어. 어쨌든 피아노는 못 치는 거지?”
갑자기 등을 치며 말을 거는 바람에 안경이 약간 삐뚤어져 조금 언짢았지만 가능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애들이 모여 있는 앞쪽에서 웃음소리가 커지자, 선이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귀를 쫑긋거리다가 갑자기 가버렸다. 왈가닥이라고 하면 심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까부는 여자 애였다. 우선 목소리가 컸고 쉬는 시간마다 복도와 교실 안을 뛰어다니며 웃음소리로 한 층을 다 채우고 다녔다. 그 애가 가자 누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폼이 엉거주춤해서 화장실을 가려는 중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그의 평소 걸음이었다. 그의 이름이 특이해서 출석을 부를 때 그의 이름을 기억해뒀었다.

“네 전…전…화번호가 뭐지?”
“너 이름이 약수지. 전 전화번호?
“뭐… 뭔지나 대…대…답해봐.”
그제야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을 알았고. 또한 전의 전화번호가 아니라 지금의 번호를 궁금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약수는 말을 더듬는 순간에는 자기 자신이 답답한지 숨을 두 번씩 들어 마셨고 눈을 한 박자 늦게 깜박였다. 그렇게 약수는 내 전화번호를 느닷없이 받아갔다. 약수가 번호를 받자마자 남자애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누군가 물어보라고 시킨 것 같았다.

교회의 완공이 가까워지자 아버지는 서울에서 돌아왔고 오랜만에 식구가 다 같이 모여 먹는 아침 식사를 하게 됐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차분히 듣고 계셨다. 어머니는 뒤에 차트라도 펼쳐진 것처럼 잘 정리해서 자세하게 말해주었지만 그중 나에 관한 건 모두 사실과 달랐다. 물론 그건 내가 거짓으로 꾸몄기 때문이지 어머니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전에 살던 곳에 남아있는 법적인 문제를 손보느라 늦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밤에 돌아오던 도중에 도로에서 위험한 장난을 하는 아이들 때문에 사고가 날 뻔 했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손을 모아 간단한 기도를 하셨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여보, 어제 전화가 왔는데 받으면 아무 말도 없이 끊네요.”
어머니가 전화를 보며 불안한 듯 말했다. 아버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물었다.
“네 친구가 거는 장난전화 아니니? 왜 그 여자애 말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전학 온 학교에 있는 왈가닥 선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고 해두었다. 방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할 때 그 일도 같이 말해준 것이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이전에 다시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름만 바꿔서 말하면 됐기 때문에 이런 거짓말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난 열심히 밥을 먹으며 아버지에게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나의 연애를 흥미로워했지만 애초에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더 해줄 말은 없었다. 내가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은 수줍어하는 탓으로 보였을 것이다.
“시골이라 역시 아이들이 순진한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여보?”
“그거야 당신이 더 잘 알지 난 어제야 여기 내려왔잖아.”
“그 애는 전화 걸면서 얼마나 떨렸을까. 다음에 받으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볼까 봐요.”
“허허, 그러면 놀라서 전화를 끓어버릴 걸.”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물었던 그 질문을 나에게 하면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긴장했다. 이런 질문에는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 “모두들 순진하고 착해요.” 라고 하는 게 무난하다. 다행히 어머니는 계속 아버지와 웃으며 대화할 뿐 내게 그 질문은 던지지는 않았다. 사실은 “모두들 순진하고 착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어제 학교에서 격은 일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별로 유쾌한 이야기는 못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곳으로 전학을 오기 위해 이사 짐을 싸던 날 나를 무릎 꿇리고 자신도 마주 무릎 꿇은 채 매우 긴 기도를 하셨다. 그 기도는 내가 다시는 위험한 장난을 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악한 무리로부터 보호 하시옵고….” 라는 부분에서 힘을 주어 말했다. 아버지는 끝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 “사악”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 앞에서 또다시 그런 장난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만약 내가 어제 격은 일을 말한다면 부모님은 “사악한 이곳”을 걱정하실 것이고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이사를 준비 할 것이다. 결국 나는 어제 일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고 다만 속으로 생각한다. 이곳이 특히 끔직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전에 살던 곳과 다를 게 없다는 건 확실하다.

2.

어제 오후 체육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간단한 체조를 하게 했다. 그리고는 여자 애들은 피구, 남자 애들은 축구를 하라고 하며 창고 열쇠를 선생님 앞에 서있던 나에게 던졌다.
“교무실에 있을 테니까. 끝나면 가져와.”
체육 선생님은 한 숨 잘 모양인지 하품을 하며 양호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열쇠를 들고 공을 꺼내려 가는 데 운동장 안 쪽 그늘에 앉아있던 선이가 따라왔다. 내가 그녀를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녀가 말했다.
“피구공은 내가 가져갈 꺼 야. 그런데 너 창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응. 수돗가 옆에 있는 거지?”
“어떻게 아네?”
“창고 위치 알려주려고 온 거구나.”
“피구 공 가져가려고 왔다니까.”
선이는 부끄러워서 괜히 화를 냈다. 기태를 포함한 남자 애 세 명이 우리를 따라오는 걸 안 것은 운동장을 벗어나고 얼마 후였다. 난 불안한 느낌이 들어 그들을 돌아보았다.
“창고는 수돗가 옆에 있는 거지? 안내 해 줄 필요는 없는데.”
그들은 내 말에 개의치 않고 계속 따라 왔다. 창고 문을 열자 그녀가 들어가 피구 공을 찾아들고 나왔다. 그 순간 휘파람을 불며 기태 일행이 문을 막아섰다. 보스 격인 기태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야구 배트를 위협적으로 걷어찼다. 배트가 시멘트 바닥을 구르면서 금속성 소리를 냈다.
“네가 약수랑 친구야? 약수는 우리랑 친구야. 너는 애들 틈에 끼어서 약수를 슬슬 피해 다니는 계집애 중 하나고. 근데 약수를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선생님한테 일러 바쳐? 친구끼리 장난 하며 노는 건데. 생각해봐 우리 말고 누가 병신 같은 약수와 놀겠어? 약수는 우리랑 있는 게 즐겁다고 했단 말이다. 뭘 안다고 참견이야!”
“한 사람 벽에 몰아넣고 돌아가면서 발로 차는 게 친구끼리 하는 장난이야?”
“으-응.”
기태는 목을 늘여서 왈가닥에게 심드렁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린 그게 친구끼리 하는 장난이야. 친구끼리 하는 장난. 약수는 맞는 걸 즐기고 우린 때리는 걸 즐기고. 우린 많이 친해.”

나도 그들이 말하는 사건을 봤다. 발차기를 연습한다는 명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태가 처음이었고 곧 대부분의 남자애들이 몰려와 줄까지 서서 한번이상 약수를 발로 찼다. 약수의 태도는 그의 더듬는 말 만큼이나 답답했다. 오직 이 다음 공격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만을 신경 쓰는 것 갈았다. 갑자기 시작된 폭력에 대해 도망가거나 자신을 변호해 줄 누군가를 찾는 기색도 없었다. 소리 내서 아파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시작된 일이었으므로 대부분은 심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밀어내듯 살짝만 때렸다. 단지 이 장난에 참가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형식적인 행위 같았다. 정말 약수를 심하게 때린 건 기태와 그를 특히 따르는 두 명 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 중 누구도 아니었다. 하지만 뒷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그 광경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했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초조하게 앉아있던 나는 일어서서 뭔가 이들을 제지 할 말을 찾았지만 생각나는 건 고작 수업시작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약수를 먼저 차고 내 옆자리에 기대어있던 기태가 “곧 수업이야.” 라고 말하려는 내 어깨를 짚었다.
“약수가 있는 자리에 네가 서있지 않은 건 말이야.”
나는 힘이 한순간 빠지는 걸 느끼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네가 아직 우리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야.”


3.

“꼰대가 얼마나 두들겼는지 보라고.”
기태는 뒤로돌아 혁대를 거칠게 풀고 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장난 좀 쳤다고 이렇게 맞아야 해?”
바지를 대충 올리고 돌아선 기태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얼굴색이 방금 본 허벅지의 피멍처럼 검붉어지고 있었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허공에 세게 한번 휘둘러 보였다. 바람소리가 귀 옆을 지나갔다. 기태 옆에 있던 녀석이 맞을 뻔 하고 “씨발, 깜짝이야.” 하며 뒤로 물러섰다. 선이는 내 뒤로 숨었지만 나라고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넌 비켜”
“싫어.”
“풋 -.”
기태는 보란 듯이 비웃었다. 안돼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는 순간 갈라져서 우습게 들렸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네가 우리 친구가 될 기회를 주지. 남자인 내가 여자애를 때릴 수는 없고. 저 년을 혼내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네가 저 년 가슴을 만져. 그럼 둘 다 봐줄게.”
기태의 뒤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났다. 내 뒤에 바짝 붙어있던 선이는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기태는 배트 끝을 잡고 질질 끌며 서서히 다가왔다. 나는 기태의 뜻대로 농락당할 이유가 없었다. 약수처럼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녀를 데리고 도망갈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라면 몰라도 둘이서 빠져나가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계속 방법을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기태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었다.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기태가 배트를 휘두를 기세로 높게 들어 올렸다. 그 때 내가 그녀에게 손을 뻗은 건 그 배트를 막아주기 위해서 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 손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을 것이고 배트는 내 팔을 부러트렸을 것이다. 그러나 손이 어깨에 닿기도 전에 나에게 날아온 건 선이의 손바닥이었다. 그녀는 경멸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얼빠진 얼굴로 뺨을 가리고 서있으려니까 나처럼 얼이 빠져있던 기태 일행이 배를 감싸 쥐며 웃기 시작했다.
“기대도 안했는데 너 재밌다. 너 원래 쟤 좋아하고 있었던 건 아니야?”
기태가 창고 바닥에 배트를 던지자 그것을 신호로 그 일행들은 운동장으로 돌아갔다. 선이도 곧 뛰쳐나가버렸다.

선이는 말이 없어져서 더 이상 왈가닥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 후로 기태일행에게 따로 불려갔을 수도 있지만 이미 창고에서의 일로 받은 충격이 심한 듯 했다. 그런 그녀에게 오해를 설명한다는 건 쓸모없는 짓이 분명했다. 그녀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했다. 몇 번인가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모두 무시됐다.
“넌 몇 시에 자냐.”
기태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그를 경계하며 대답 없이 쳐다봤다. 그는 예전과 달리 부드러운 태도였다. 그의 웃음에서 상냥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저번 일은 미안하게 됐다. 장난이었어. 머릿속에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나서, 너에게 장난을 쳐 본거야. 어떻게 행동할 지 궁금했거든. 네가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줄은 몰랐어. 네가 손으로 배트를 막으려고 했다는 거 나는 알아. 용감해.”
용감이라니. 나는 계속 놀림 받는 기분이었다.
“내 친구들에 비해 그렇다는 거야. 덩치만 컸지 이놈들은 결단이란 걸 모르거든,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너는 아는 것 같다. 하다못해 장난을 할 때도 그게 필요하지. 거는 게 많을수록 스릴이 더 하거든. 우린 자전거를 타. 밤에 깜깜한 도로 위에서. 그냥 타기만 하는 건 아니지 와 보면 알 꺼 야. 너도 오늘 와라. 어제도 전화를 했었는데 네가 안 받더라.”

기태 일행과 어울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사람이 깨지 않게 전화선을 그 시간마다 빼놓아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누가 내 뒤를 추격하고 있는 걸 한참이나 눈치 채지 못했다. 그건 약수였다. 우리는 자전거 속도를 늦추었지만 멈추지는 않은 채 대화했다.
“어쩌다가 듣게 됐어. 애들한테 퍼진 소문만 듣고 널 오해했었는데.”
방금 전 교실에서 기태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에게 말했지만 우리 근처에 약수도 있었다. 기태도 약수가 곁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 약수가 듣는 것에는 개의치 않아했다. 약수는 아마도 기태가 초대한 자전거 모임이 뭔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기태가 자전거를 타고 밤마다 뭘 하는 거니.”
“난 약수가 아니야. 이름은 따로 있어. 약수는 그냥 별명 같은 거야. 출석을 확인할 때도 그렇게 부르지만 선생님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래. 뜻은 나도 확실하게는 모르는데 예전에 아빠가 다 같이 죽자고 가족 모두 농약을 먹게 했었어. 다행히 죽지 않고 병원에 실려 갔어. 퇴원하고 학교에 오니까 기태가 날 그렇게 부르면서 괴롭히기 시작했어. 원래는 말을 잘 더듬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내가 평범하게 말하면 기태가 재미없다고 때렸어. 기태가 밤에 자전거를 타고 뭘 하는 지 물었지? 간단하게 말해서 무작정 차에 달려들어. 가지 않는 게 좋아. 그건 그들끼리의 의식 같은 거야. 미친 짓이야. 그걸 말해주려고 왔어.”
그는 여전히 말을 조금은 더듬고 있었지만 저번처럼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침착하게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애들 미워하진 않아. 솔직히 저번처럼 별 이유도 없이 맞으면 억울하고 아프긴 하지만 누구나 그런 게 있어. 나도 심심할 땐 지나가는 개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그게 맞으면 좋아해. 너희 집 천장에도 쥐가 뛰어다니니. 보니까 옥상도 있고 새집이던데 없겠지. 우리 집에는 밤마다 쥐가 천장을 뛰어다녀. 그러다가 쥐들이 멈추거든, 그때 잘 들으면 기둥 갉는 소리가 들려. 아빠가 말해줬는데, 쥐는 이빨을 갈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그러는 거래. 그러니까 쥐 이빨 같은 거야. 누구나 쥐의 이빨을 가지고 있어. 기둥이든 뭐든 시끄럽게 갈지 않으면 그 이빨은 계속 자라서 자기 턱을 뚫고나와. 기태로 자기 이빨을 그렇게 조금씩 갈아주지 않으면 스스로 위험해 지니까 어쩔 수 없는 걸 거야. 나를 때리면서 자기 이빨을 갉는 거지. 그렇다고 일부러 맞아 준다는 뜻은 아니야. 나도 맞는 건 싫어. 정신없이 맞다가 보니까 이해하게 된 거지. 나도 그렇고 잘은 모르겠지만 너도 이빨이 자라고 있겠지. 뭐를 갉는지가 다를 뿐. 너 사고가 있었다며. 선생님이 너 전학 오기 전에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어.”
“그건 그냥 장난이었어.”
“무슨 일인 줄은 잘 모르지만. 무서운 애인가보다 하고 기태도 좀 긴장했었어. 나도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기태만 아니라면 날 그렇게 괴롭힐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네가 와서 기태를 이기면 나도 편해질 것 같았어. 그런데 막상 전학 온 너는 너무 곱상했어. 얼마안가서는 웃기는 억양으로 여기 말투를 따라하려고 했고. 그 때 난 포기했어. 졸업할 때까지 그냥 맞고 살기로. 내가 원해서 먹은 건 아니지만 약을 먹으려고 죽으려고 했다는 것 때문에 받는 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견디기로 했어. 너 아빠가 목사님이지. 교회 열면 나도 데려가줘. 나 그때 병원 갔다가 오고 나서 하나님 믿기로 했어.”
우리는 갈림길에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약수에게 많은 말을 들었지만 내 머릿속은 다시 기태 일행이 하는 위험한 게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빨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위험한 게임이란 말이지.’
나는 기태가 그날 밤 거는 전화를 받기로 했다.


4.

부모님이 깨기 전에 받으려고 미리 거실에 나와서 기다렸다. 12시가 되자 약속한 대로 전화가 왔고 나는 벨이 한번 울리기 전에 수화기를 들었다.
“빨리 받네. 기다리고 있었냐?”
“어디로 가면 돼.”
“학교 앞. 자전거타고와. 부모님 모르게.”
나는 준비해둔 플래시를 들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플래시로 길을 밝히며 도로를 달렸다. 아침 도로를 달리는 것과는 다른 쾌감이 느껴졌다. 나는 곧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며 흥분했고 짧고 높은 소리로 웃고 있었다. 듬성듬성 켜 있던 가로등마저 멀어지고 이젠 플래시 불빛이 아니면 앞을 구별 할 수 없는 어둠 속을 달려고 있었다. 바람 소리가 귀를 가득 매워서 체인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곳에는 기태를 포함해서 모두 5명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는 걸 보자 일행들이 자전거를 타고 기태를 선두로 하여 학교 뒤 도로로 빠져나갔다. 앞서 달리던 자전거 중에 하나가 속도를 줄이며 옆으로 다가왔다. 내 옆으로 바짝 붙은 녀석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밌을 거야.”

학교 뒤 도로에는 가로등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플래시를 가져오지 않았다. 나도 켰던 플래시를 끄고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산모퉁이에서 꺾이는 도로 부분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모여서 담배를 피웠다. 기태는 담배를 두 대를 연달아 피우더니 이쪽을 가리켰다.
“오늘은 네가 먼저 해.”
어두워서 나를 가리킨 줄로 알았으나 기태가 지목한 것은 나에게 아까 재밌을 거라며 슬쩍 말을 걸던 녀석이었다. 기태는 이번엔 날 보며 말했다.
“잘 봐, 너도 곧 해야 하니까.”
이 한적한 밤의 시골도로에는 5분이나 10분, 더 늦을 때는 20분마다 한번씩 지나는 차를 겨우 볼 수 있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녀석은 차가 나타나자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차는 소형 트럭이었다. 녀석은 차를 향해 정면으로 페달을 밟았다. 차가 경적을 울리며 녀석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녀석의 자전거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자전거가 피하기를 기다리던 차는 경적 소리를 멈추고 찢어질 듯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방향을 틀었다. 거의 동시에 녀석의 자전거도 브레이크를 잡았다. 녀석은 차와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 핸들을 틀고 힘껏 패달을 밟아 달아나며 소리쳤다.
“튀어!”
차는 반 바퀴를 돌아 이차선 도로의 중앙에 멈췄다. 놀랐는지 운전자에게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차는 U턴해서 우리를 쫓아왔다. 운전하는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들과 나는 자전거만 들어갈 수 있는 산길로 도망갔다. 안전한 곳에 이르자 누군가 먼저 웃었고, 모두가 따라 웃었다. 나도 웃는다. 내 웃음소리에 놀란 녀석들이 날 쳐다본다.
“이상하게 웃네, 쥐새끼 같다.”
기태가 내 웃음소리를 따라 해보며 말했다. 막 변성기가 시작 되서 많이 쉬어있는 기태의 목소리는 아까 도망치면서 환호성을 지르느라 더 쉬어있었다.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내게 말했다.
“안 쫄았네. 너도 재밌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 게임 좋아해. 이전의 학교에서도 그래서 쫓겨났고.”

- 중요한 건 내가 너희들을 이해한다는 거야. 약수마저도 너희를 이해하고 있지. 그런데 정작 너희들은 스스로를 깨달지 못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몰라. 이빨이 자꾸만 자라고 있는 데 말이야.

“그래? 어떤 게임을 했는데?”
“너희와 비슷해. 조금 위험한 게임.”
“우리하고 비슷하다고?”
기태가 한쪽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저기 기태야 차가 돌아가는데?”
“그래 전학생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다음 차를 기다리자. 누가 다음에 할 건데.”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해.”
“너 이번 주에 한번도 안하지 않았어?”
“병신아. 네가 엄마한테 걸려서 못나온 날, 나 두 번이나 뛰었어.”
“그래도 너보단 내가 많이 했어. 누가 누구더러 병신이래.”
그들이 차례를 서로에게 미루며 다투는 동안 기태는 담배를 피우고 다음차가 올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소리죽여 웃다가 그들 앞에 나서서 말했다.
“기태 네가 직접 해.”
“뭐?”
기태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나랑 둘이서.”
나의 제안에 기태는 인상을 쓰며 피우던 담배를 버렸다. 나는 기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게임방식을 설명했다.
- 우선 우리는 동시에 차로 달려들 것이다. 그리고 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가까이 올 때까지 달린다. 정면에서 차가 브레이크를 잡으며 방향을 왼쪽이 아니면 오른쪽으로 튼다. 우리도 각각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간다. 차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던 사람이 진다.
“미친 새끼야. 그렇게 하면 죽잖아.”
뒤에서 누가 참견했지만 나는 기태만을 보고 말했다.
“너무 위험한가? 이건 그냥 확률게임이야. 우리가 방향을 틀 방향은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고 위험할 것 같으면 도망치면 돼. 자기가 정한 방향에 차가 오면 피하면 그만이야 게임에서 질뿐이지. 죽을 걸 알면서도 차와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까지는 없어. 그냥 지면되니까. 너희가 하던 게임과 뭐가 달라.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한다는 것.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재수 없게 차가 핸들을 꺾으면 도망치고, 졌다고 인정하는 것뿐이야.”
“전에 살던 데서 그렇게 놀았냐? 시골이라고 배짱이 작을 꺼라 생각 하는가본데. 좋아 하자. 방향을 선택해.”
난 오른쪽을 선택하고 그는 왼쪽은 선택했다. 모두들 정적 속에서 다음차를 기다렸고, 오래 지나지 않아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시작.”
나는 주저 없이 출발했고 기태도 나를 쫓았다.

- 설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득이 아닌 설득이 있다. 마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슬쩍 뒤에서 칼을 건네주는 것. 그를 찌를 지 찌르지 않을 지 선택했다고 해서 그게 자기 판단이라고 믿는 건 오산이다.
- 그 차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계산에 염두 해 두고 있었는지 이후의 내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나에게 대답한다. 그 게임은 사실 확률 게임이 아니었다고. 내가 제안을 했을 때,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가 승낙 했을 때는 이미 게임은 끝났다.
- 나는 몇 번이고 져도 멀쩡하지만, 나에게 한번 진 상대는 다시는 게임을 하지 못한다.

빠르게 달리는 나에게 지지 않게 위해 기태도 빠르게 추격해온다. 기태는 내가 자기에게 너무 붙어서 달리고 있다고 느낀다. 차가 경적을 울린다. 기태는 긴장하며 콧소리가 섞인 괴성을 지른다. 나는 기태에게 쥐새끼라고 말한다. 괴성을 지르던 기태가 날 쳐다본다. 차가 바로 앞까지 달려온다. 차가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기태는 당황한다. 왼쪽으로 위험하게 빠져서 게임을 이길지. 내가 달리고 있는 오른쪽으로 빠져나와서 안전하게 피할지. 그 선택을 놓고 주저하는 동안 이미 차는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왼쪽으로 피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오른쪽 차선으로 오는 것뿐이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그를 쳐다본다.
“우리는 쥐새끼야.”
기태는 이제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핸들을 틀어 내가 있는 오른쪽으로 오려한다. 속도를 맞추어 달리며 나는 자전거로 그를 가로막는다. 그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나도 속도를 늦춘다. 나는 왼발을 페달에서 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게 기태의 자전거 뒷바퀴를 찬다. 기태의 자전거가 넘어진다. 기태의 얼굴이 헤드라이트로 밝아진다. 그가 겁에 질린 얼굴이 잠시 눈에 들어온다. 그의 얼굴을 밟은 차가 순간 위로 튀어 오른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그 모든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힘껏 패달을 밟는 바지에는 기태의 피가 묻어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찍찍”하며 웃었다.


다음날 기태의 사고 소식이 알려질 것이다. 그러나 같이 자전거를 탔던 모든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내 왼발이 한 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또한 불려가서 조사를 받겠지만, 기태가 나에게 지기 싫어 핸들을 꺾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장난이 지나쳤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버지는 사고소식을 듣자마자 어떻게 된 건지 짐작하고 나를 꿇어앉혀 참회의 기도를 시킬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서둘러 이사를 준비할 것이다. 완공된 교회는 여기에 남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할 것이다. 그리고 약수는 주일마다 이 교회를 찾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십자가에 이빨을 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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