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춤 임의진은 10년간 강진 남녘교회 목사로 지내면서 ‘괴짜 목사’로 불렸다. 마을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그들의 삶과 함께 했다. 지금은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담양 흙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수필도 쓰고 음악을 하며 지낸다. 스스로의 아호를 ‘어깨춤’이라 지은 임의진은 춤추는 삶을 산다. 그에게는 아호가 하나 더 있는데 일명 ‘떠돌이별’이다. 수많은 별자리 중에 자신이 들어갈 별자리는 없어서이다. 그런 그는 한 길만 고집하는 외곬수도 싫어하고 한쪽으로 함몰된 사상도 경멸한다. 다만 사람은 삶을 살아가며 배움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진보할 뿐이라고 전한다. 그는 남이 박수쳐주는 삶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 최고라고 말한다.

/엮은이


“‘목사’ 보다 그냥 ‘임 씨’라 불리는 게 더 좋아”

임의진. 그를 알면 알수록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린다. 처음엔 그저 ‘특별한 목사겠구나’ 했지만 알면 알수록 그가 음악가인지 화가인지 여행가인지 헷갈린다. 그렇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되 모든 것이다. 그는 음악가이기도 하고 시인이기도 하고 수필가, 화가, 여행가, 대학 강사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떠돌이별’이라 부르는 그는 가장 자기답게 살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한다. 그는 “아름다움은 ‘자기다운 것이 한 아름인 것’을 뜻한다”며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찾고 아름답게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결코 멈출 수 없고, 음악, 미술을 하고 시를 쓰는 모든 활동은 예술가 본연의 모습이다”고 항변한다. 요즘은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글이 자신을 조여 준다면, 그림은 가슴 속의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어준다고.
 

그런 그에게서 작가이면서 화가인 헤르만 헤세, 사제이자 작곡가인 비발디, 철학자이면서 화가이고 시인이기도 했으며 소설가인 칼릴 지브란의 아우라가 풍긴다.

 
“고독하지만 구수한 시골생활의 즐거움”

그에게는 예술가의 모습뿐만 아니라 농부의 모습도 있다. 전라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지금도 시골 생활을 하고 있다. 10년간 강진에서 남녘교회 목사로 있을 때는 직접 아궁이에 불 때워 가며 2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자연과 함께 한 삶이 풍요롭기도 하지만 때론 지독히도 외로웠다. 그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허무하기도 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그것이 삶의 매력”이라고 한다.

 

인간이 끊임없이 목적과 목표를 만드는 것도 불안한 마음을 지탱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임의진은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서도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그치지 않았다. 그 속에서 그는 ‘나눔’과 ‘비움’을 배웠다. 그래서 통장에 잔고가 많은 것을 싫어한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밥 한 끼 사줄 돈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또 그는 “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생각을 대변이나 하듯이 그의 부엌에는 ‘적게 먹고 작게 싸자’는 글귀가 적혀있다. 지금도 담양에 흙집을 지어놓고 사는 그는 별 일이 없으면 그가 아끼는 개들과 자연, 음악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농사도 짓는다. 100% 무공해, 무관심 농법이다. 절반은 두더지, 들쥐가 먹고 뱀도 그의 밭에 와서 놀다 간다. 그래도 그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는 밭에 해바라기 씨도 심어놓았다며 하나 둘 피어날 해바라기를 생각하며 해맑게 웃는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베이스캠프일 뿐”

그의 집안은 3대째 목사다. 시골 교회를 하는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형과 함께 자랐다. 그곳에서 그는 ‘병신 동생’ 취급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그의 유년 시절은 상처투성이면서도 그가 지금 더 열심히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청년 시절에는 사회 변혁적인 운동도 하고,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 그의 20대에 ‘여행’을 빼면 조각난 퍼즐과도 같다. 그는 20대 때 6대주를 모두 여행했다. 돈이 많아서 여행 다닌 것은 아니다. 차비가 없으면 걸어 다니기도 하고, 한 번은 비행기를 놓쳐버린 적도 있다.

 

그는 “여행을 가면 자판기에 등을 대고 자는 등 거지처럼 지내지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이니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되고 행복하다”며 “가난하지만 자기네들의 삶과 문화를 지켜나가는 남미,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가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한다. 그는 무엇보다 “여행은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며 “어떤 사람이나 생각, 사상에 대해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수용할 수 있는 큰 가슴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단조롭거나 편협하지 않은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

 

또 그는 “세계인이 하나의 운명이고 지구가 하나의 별이라는 뜻에서 ‘지구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한다. 그는 사람들이 욕을 해도 양담배를 피운다. 콜롬비아 농가도 우리네 농부처럼 거친 손을 가지고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기 때문이다.
 

‘세계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민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만의 정신을 간직하되 ‘옛 것이 다 한국적이다’라는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천상 ‘떠돌이별’인 그는 지금 그가 살고 있는 담양 ‘회선재(回仙齎)’도 베이스캠프일 뿐이라고 말한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있는 그이지만 머무르는 곳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 풀 한포기,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솔바람 한 올 한 올도 놓치지 않는다. 지금도 그는 여행 중이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중. 그래서인지 그의 인생은 ‘80일간의 세계일주’ 후속편인 ‘80년간의 세계일주’를 써나가는 것 같다.

 

“젊은이라면 건방질 줄도 알아야죠”

그는 근본적으로 휴머니스트다. “‘사람다움’을 찾아가면 사회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며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서로를 만날 때 가볍게 만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그는 “서로를 깊이 만나 영혼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겸손한 것인데, “젊은이라면 건방지고 달라 들고 끊임없이 문제제기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먹고 살 걱정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젊을 때는 젊음을 뜨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한다. ‘황제가 되지 못할 바에는 집시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한편 ‘떠돌이별’ 임의진 씨는 “대학생 때 좋은 책 많이 읽고, 좋은 음악 많이 듣고, 좋은 사람 많이 사귀라”고 당부한다. 특히 그는 “인문학과 멀어지면 사회가 병든다”며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고 인문학과 친해지라”고 강조한다. 또 그는 “또래 친구들만 사귀지 말고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사귀어 보고, 지혜로운 사람, 예언자를 사귀어 보라”고.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는 모두 순례자”라며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혼자 여행하는 시간도 갖길 바란다”고 전한다. 불혹의 나이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고 밤을 새워 글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떠돌이별’ 임의진은 오늘도 총총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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