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자는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처럼 특히 시대를 증언해왔던 언론의 경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읽을 줄 아는 자세’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 전대신문 창간기념 53주년을 맞이해 지금까지 발행된 전대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봤다.

/엮은이

70년대

억압과 탄압의 역사로 얼룩
 

박정희 군사정권으로 대표되는 70년대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 및 교수와 군인이 대치하던 시기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4·19혁명 정신을 계승하지 못함에 대한 자성과 다시 ‘민주화’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에 대한 문예, 교수 기고가 왕성했음이 이를 증명한다. 대학사회 내에서의 구성원들의 독재정권 저항운동과 탄압의 격렬함은 기사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1971년 10월 15일 휴교 명령에 관한 기사를 보면 경찰들이 우리 대학 도서관까지 침입해 학생들을 연행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학생들이 시위 끝에 연행돼 가려는 것을 막으려던 교수가 경찰에 끌려가는 사건도 있다. 전대신문은 4·19정신 계승을 위한 70년대 운동을 학내 모든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저항운동으로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노력했다.


80년대
‘민주화 열망의 고조와 확장기’
 

80년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군사정권에 대항해 민주화의 열망이 고조되던 시대이다. 전대신문은 5·18민중항쟁의 비극적인 참상을 고발하고 학생들이 운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
군사정권하의 언론 탄압으로 인해 5·18민중항쟁 당시 외부 언론에는 보도되지 못했던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는 기사와 민주화 장례식 등의 퍼포먼스 보도를 통해 전두환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 표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5·18민중항쟁 이후에도 노동 분야까지 민주화 요구를 확장해 촉구했고 계속해서 5월 정신을 잊지 않고 시위를 했다. 87년 6월 항쟁 성공 이후 6월 항쟁의 평가를 내리고 지면을 통해 앞으로의 민주화의 전개발전방향에 대한 학생들과 교수를 포함한 학내구성원들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시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자 했다.


90년대
탈 이데올로기의 거센 바람
 

1990년부터 2000년까지는 우리 대학이 새롭게 태어나 성장했던 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군사정부에 항거하고 투쟁하던 학생운동에서 현실적인 문제인 취업과 대학 안 여론으로 점차 기조가 전환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1990년에 지금의 ‘홍도’라 불리는 제2도서관이 개관을 했다. 이 도서관으로 인해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공헌을 하게 됐고 ‘백도’라 불리는 제1도서관의 자유열람실의 증가로 더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91년에는 박승희 열사가 군사정권을 규탄하며 분신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항거분신으로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박승희 열사 이후로 많은 학생들이 군사정권에 대항했다. 그러다 학내로 진입하는 전경을 막으려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눈까지 실명한 학생도 있었다. 이때가 90년대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때였다.

 

 94년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의과대학이 개교하고, 95년에는 우수대학으로 선정되는 등 대학이 총체적으로 경쟁력 향상과 교육의 질 개선 등을 위해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회·정치권에 항거하는 성향이 짙었던 학생들이 대학 내 문제로 관심을 돌리게 됐다. 저조한 투표율과 사퇴문제로 떠들썩했던 총학생회 선거,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 해결되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등록금 문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학부 통폐합 등 대학의 개편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현재
구조조정 물결 … 여수대와 통폐합

93년 문민정부 출범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 까지 정치·경제·사회의 민주화로 발전과정 속에서 대학사회 또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서 학생운동에 대한 학내구성원들의 관심은 점차 사라지고 취업, 대중문화, 봉사활동, 교육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증가라는 사회현상을 반영해 취업과 관련된 해외인턴, 이색 직업, 공모전, 봉사활동 등이 관심의 주류를 이뤘다. 학생운동에 대한 무관심은 총학생회 후보출마의 단독화현상과, 저조한 투표 참여율, 번번이 무산되다가 7년 만에 성사된 개강총회 등의 기록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편 2000년부터 조금씩 대두되어왔던 교육부분에 대한 구조조정의 논의가 해마다 진행되어 국립대 통폐합, 법인화, 등록금 인상 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육 분야의 신자유주의 논리적용에 대한 끊임없는 반대를 지속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산대와 밀양대를 시작으로 우리대학도 2006년 여수대와의 통폐합이 이뤄졌으며, 현재 1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우리 대학은 법인화 문제와 정원감축으로 인한 등록금 인상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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